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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없는 일과 선택할 수 있는 일“하나님께로 돌아오라!”(호세아 14:1-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3.09 14:29
▲ 찢어지고 나누어져 있던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이미 우리 안에 주어졌습니다. 주어진 이 평안을 날마다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몇 주 전부터 계속해서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와 관련된 일들입니다. 범죄나 특별한 일,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늘 겪고 있는, 겪어야 하는 모든 평범한 일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일은 평범한 일들이지만 근심과 걱정, 불안 등의 감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늘 겪어야 하는 감정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겪어야만 하는 일들입니다. 잠시 동안은 벗어날 수 있어도 다시 이런 감정과 환경 속에 처하게 됩니다.

찬양 중에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 하였네~”라는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일’은 계속해서 발생되는 일이기에 해결되거나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해결 될 수 있는 것처럼, 만족할 수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혼란에 빠지고 근심과 걱정 가운데 사람의 일에 매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와 관련해 나에게 어떻게 하면 유리하게 될 수 있을까, 이익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기에 근심과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고, 만족함도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일’에 매이다보니 정작 바라봐야 할 삶의 진정한 목표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의 일’이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 일이며, 계속해서 경험해야 만하는 일임을 깨닫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삶의 방향성이 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호세아를 통해 오늘 본문과 같이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나눔으로써 저와 성도님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을 다시 또는 새롭게 찾을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설교의 제목이면서 1절의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의함으로 엎드려졌습니다. 어떤 불의함을 저질렀는지가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사람의 일’에 매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시야는 좁아집니다. 내 뜻대로, 내가 생각한대로 과정이나 결과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게 ‘정답’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손해 볼 수도 있고,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건강이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데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좋을 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의지했고,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고, 지금 당장 도움이 될만한 우상을 선택해서 경배했습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지도 않고, 말씀을 통해 답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나의 요구가 반드시 관철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의하다면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나 싶습니다. 불의함으로 엎드러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엎드러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 불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다시 말씀을 들고 돌아오라고 요청합니다. “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린다.’는 표현은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삶의 열매를 들고 돌아오는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함을 뜻합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사람의 일’에만 매여 있다면 회개 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2:3-6의 말씀은 회개한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그 사람 속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속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참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압니다. 6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과 같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올 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상중 목사에게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 잊지 못 할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2021년 폭설이 내리던 1월18일 서울역 앞에서 노숙 인에게 자신의 옷, 장갑, 돈 오 만원을 주고 간 이름 모를 분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미얀마의 민중 시위대를 군부 공권력의 폭력으로부터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선 수녀님입니다.

아마 성도님들도 여러 뉴스 등을 통해 이 두 분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일’에 매이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나의 옷과, 장갑, 돈을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 목숨을 내놓고 다른 생명들을 보호하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고, 생명을 살려야하는 ‘하나님의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의 파장은 굉장히 컸습니다. 많은 사람들 안에 존재하지만 잠자고 있던 사랑의 마음을 깨우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특별한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군인들의 길을 홀로 막아선 수녀님을 보고 많은 이들이 저 분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분이라고 저 분 안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나선 수녀님도 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사랑의 완성을 체험했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아, 저 분은 정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구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키시는 분이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말씀을 들고 주님께로 오라는 호세아의 요청은 바로 이런 모습이 삶에서 드러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과 같이 살라는,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라는 요청입니다.

이런 회개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4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회개가 이루어지면 “기쁘게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슬’과 ‘그늘’을 이용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향을 피우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회복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런 은혜를 맛 본 이들은 8절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우리도 언젠가 스스로 만든 우상에 대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고백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이익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통해 열매를 맺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삶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훈련을 통해 ‘사람의 일’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근육을 계속해서 단련할 때 가능합니다. ‘사람의 일’은 우리를 계속 근심과 걱정의 길로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지난 월요일 몇 년 만에 지역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새마을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길이 얼어버리면 너무 미끄러워져서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동네 주민 중 누구라도 눈을 쓸러 나오시면 내가 나가리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유는 얼마 전 눈이 내려서 혼자 새마을로 올라오는 길을 쓸고, 염화칼슘을 뿌리면서 수고를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폭설이 내린 다음날 새벽에 자동차 헛바퀴 도는 소리와 자동차가 올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제설 장비를 챙겨 두 시간 정도 새마을 입구 오르막길과 집 주변 그리고 교회 주변의 눈을 치우고 염화칼슘을 뿌렸습니다.

마침 유상길 성도님이 나오셔서 함께 눈을 쓸 수 있었는데요. 함께 쓸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일’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뭐하러 눈을 치워? 눈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잖아. 누가 치울 때까지 어차피 너 돌아다닐 일도 없잖아? 감기 걸릴 수도 있고, 근육통이 생길 수도 있는데 뭐하러 눈을 치워. 치우지 마!’

또 다른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냥 치워, 치우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줘. 누가 보기라도 하면 소문 좋게 날 거 아니야? 힘들어도 그게 너한테 이득이지.’

눈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나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목소리와 두 번째 목소리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유리한지, 편한지, 이익을 볼 수 있는 지만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일’은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눈을 치우기 전에 또 다른 작은 목소리가 깊은 데서 들려왔습니다. ‘네가 눈을 치워. 선한 마음으로 사랑의 동기로 해. 힘들어도 이 일을 하는 동안 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경험하게 될 거야.’ 나의 편함과 편리, 이익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상중 목사는 어떤 목소리에 반응했을까요? 부끄럽게도 두 번째 목소리에 반응했습니다. ‘그냥 치워, 치우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줘. 누가 보기라도 하면 소문 좋게 날 거 아니야? 힘들어도 그게 너한테 이득이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7:21-24에서 자신 안에서 계속되는 내면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저는 이 날 눈을 치우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실패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는 것이 범죄가 아닙니다. 틀린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잘못된 삶의 방향입니다. 우리는 더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오늘 본문의 끝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이게 좋은 것이고, 이게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이라며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지만, 우리는 어리석을 뿐입니다. 하나님께로 말씀을 들고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로 말씀을 들고 다시 돌아선다면 오늘 본문의 아름다운 표현들처럼, 기쁘게 받아주시며 하나님의 방식대로 삶을 회복해 주시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삶, 하나님의 일을 살아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의 일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시고 행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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