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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⑼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1.03.16 16:06

< 1 >

하나님은 사실 이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스스로 밝힌 ‘나는 곧 나다’(출 3,14), 혹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름이 아니지요. 이 말은 이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존재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른바 ‘제1원인’도 아니고,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대상도 아니며, 인간이 규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는 말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할 때에만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자신을 계시하실지도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이르는 길은 있어도,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는 말은 무엇보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이라는 주장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같은 종교 안에 있는 신자들끼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는 신자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이나, 이웃 종교인들을 저주하거나, 무종교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시고(마 5,45),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으시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분’이시며(롬 10,12),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딤전 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나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나와 생각과 신념이 다르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난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2 >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은 도덕적 의무를 수반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흔히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를 유대교는 심판의 종교이고 그리스도교는 은혜의 종교, 유대교는 율법을 강조하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사랑을 강조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교 율법주의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7).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은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서 자신과 자신의 길을 계시하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린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십계명이 ‘무엇을 하라’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규칙들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십계명을 윤리적 행위를 위한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윤리와 존재는 구분될 수 없습니다. 존재와 행위는 쌍방향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십계명을 준수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라던 그 이상의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 ‘여호와’ 혹은 ‘야훼’는 정말 하나님의 이름일까? ⓒGetty Image

< 3 >

마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하거나 사실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데도 ‘괜찮다! 괜찮다!’고 외치면서 자기 잇속만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은 예언자들과 제사장들(렘 6,13-14),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이는 사람들,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딤후 4,3-4)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바울은 말은 부드러우나 내용이 없는 거짓 설교자들을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거짓말 이면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아닌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놓여 있는데도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보다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런 기회주의적 눈치 보기는 상대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태도라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지요.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도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언사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말한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죄를 지은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아니 하나님보다 더 높은 존재인 것처럼 함부로 말하는 설교자나, 그런 설교자를 칭송하는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정치를 ‘거짓말의 테크닉’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듯이, 정치인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거짓말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런 종류의 말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거짓말하는 정치인이나 거짓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나 다 같은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 4 >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들을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유를 팔아서 얼마를 떼어놓고 사도들에게 바쳤는데, 하나님을 속인 죄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졌습니다(행 5,1-11). 베드로가 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의 탐욕이나 물질주의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유는 당연히 두 부부의 것이었고, 거기에서 얼마를 떼어 놓고 바치든지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책망 받은 것은 교회지도자들을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주장은 정확한 지적이었습니다. 교회를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을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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