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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의심하지 말고 찾아 나서라“이제부터 네가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마태복음 21:18-2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3.23 16:04
▲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 평안 누리기를 원한다는 요청만 하면 됩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 평안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묵상하고 삶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으며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지금도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는 사역에 동참할 일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한 고통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들도 자신을 구원해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이 요청에 사랑의 동기로 마음을 다해 삶으로 응답한다면, 응답하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감격을 경험함과 동시에 피조물들의 구원도 이루어 갈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이런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하며 계신가요? 오늘 본문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은혜를 누리기 위해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배가 고프신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달려 있어야 할 열매를 찾으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8 새벽에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9 마침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그 나무로 가셨으나,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처음으로 하신 행동은 ‘성전정화’였습니다. 기도하는 집이자 사랑과 생명이 흘러야 할 집인 성전이 부패하고, 더럽혀졌기 때문에 성전을 깨끗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행동을 하시기 전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고 있는 이들에게 경고 및 예고를 하고 계십니다.

무화과나무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이시라면 “열매를 맺지 못했구나, 햇빛을 못 받았나? 영양분을 제 때 공급받지 못했나? 나무에 어디 상처 난 곳이라도 있나?” 하시면서 나무를 사랑으로 대하실 만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말려버리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서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과 함께 앞으로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세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당장 닥칠 고난 속에서 그리고 자신이 없는 세상 속에 살아야 할 제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위태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썩어 있고, 자신의 제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어쩌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려버리신 행동은 썩어 있는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제자들에게까지 하신 충격요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20b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당장 말라버렸을까?” 여전히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왜 말려 버리셨는지를 깨달아야 하는데, 말리게 한 능력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제자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습니다. 내 삶에 임할 기적만을 수동적으로 바라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능동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거나 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22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말씀에 따른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며 살고 있다면, 이 말씀이 왜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내가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혼 구원, 사회적 구원, 사랑과 관용, 용서의 실천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큰 소망의 말씀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순절에 성도님들께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는데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반성과 회개, 감사의 마음이 순차적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성하게 된 부분은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사역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불가능한 것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조건과 상황을 보면서 ‘이 이상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2년이란 시간을 살면서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사람은 없고 점점 연령대만 높아져 가는 마을,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지 않는 마을, 우리 교회는 마을 분들이라면 다들 한 번씩 다녀봤기에 아마 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들, 여러 사정으로 교회를 떠나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성도님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예배만 겨우 드릴 수 있는 상황들이었습니다.

제 앞에 계시는 성도님들의 사랑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스스로 정체되어 버리고,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말로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라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은 결코 정체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푯대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나아간 것처럼, 어떤 방해물이 있더라도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바로 이상중 목사였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달란트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스로 이 달란트를 땅에다 묻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마태복음 25:26-29)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오늘 본문의 열매가 없기에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는 말씀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정체되지 말고, 끊임없이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스스로 정해 놓았던 한계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정체된 제 삶을 뚫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실천에 옮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이렇게 선택하고 나니 제 마음에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다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할 때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다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성도님들이 스스로 한계 짓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음속으로는 어떤 결론을 지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스스로 이 정도밖에 안되겠다고 한계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십니까?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말씀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십니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면, 그 기도가 이루어지리라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저와 성도님들은 지금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믿음이 없음을 나타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과거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오늘 무엇을 실천하셨습니까? 내일은 무엇을 실천하실 계획이십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달란트를 땅에다 묻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찬양으로 부를 때는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시냇물은 기다린다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안타까워하며 부르짖는다고 해서 시냇물이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찾아 나설 때 시냇물을 찾게 됩니다. 헤맬 때도 있지만 헤매는 것은 단순히 버려지는 고통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 모든 노력을 통해 우리는 반드시 시냇물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순간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루어진 것을 찾기 위해 나서기만 하면 됩니다.

시냇물을 이미 찾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헤매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한다면, 이미 믿음이 회복된 사람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무엇이든 시도해야 합니다. 기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신뢰 속에서 실천한다면 반드시 믿음은 회복됩니다.

열매를 찾으러 오실 때에 “이제부터 네가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는 말씀 대신에 “착하고 충선 된 나의 사랑하는 자녀, 친구, 종아!”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 이제부터 가슴 뛰는 삶을 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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