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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잠들었다준비된 사람(마태복음 25:11-1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3.28 15:25
▲ Fresco from High Decani Monastery, Kosovo, Serbia (14세기경) ⓒGetty Image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고, 우리를 위해 받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부활하심을 기다리는 한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던 비유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데, 열 처녀의 비유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어왔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재림의 지연은 그들의 신앙에 혼란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교회는 어떠한 신앙적 가르침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 가르침이 담겨있는 말씀이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는 앞선 24장에 나타난 재난의 징조와 인자가 오실 때에 대한 가르침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비유에는 열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열 명이라는 인원 설정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 10에 착안해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여성들이 ‘처녀(파르테노스, παρθένος)’라고 적혀있기 때문에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 10명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들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측 들러리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의 결혼 잔치는 저녁에 시작되어 일주일간 계속된다고 합니다. 결혼 잔치가 시작될 때, 신랑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갑니다. 신랑과 친구들이 저녁에 도착하면 신부의 여성 친구들이 이들을 맞아 신부에게 인도했다고 합니다. 비유에 나타난 열 처녀는 이런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습니다.

2절의 말씀에는 이들 중 절반인 다섯은 슬기롭고, 다섯은 미련하다고 말합니다. ‘슬기롭다(프로니모스, φρόνιμος)’는 단어와 ‘미련하다(모로스, μωρός)’는 단어가 서로 반의어이기 때문에 슬기롭다는 말은 똑똑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신중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는 슬기롭다는 의미보다는 신중하다는 뜻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두 여성 집단의 지성 수준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이들은 신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그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미련한 이들은 기름은 준비하지 않고 등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등’은 헬라어로 람파스(λαμπάς)인데, 이는 램프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고, 횃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거 베들레헴 지역에서는 야간 결혼 잔치 때 처녀들이 횃불을 켜놓고 불이 꺼질 때까지 춤을 추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횃불이 타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이고 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먹이면 더 오래 불을 밝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신랑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신랑의 도착이 지연되자 열 명의 처녀들은 모두 졸기 시작합니다. 미련한 이들만 잠을 잔 것이 아니라 열 명 모두 잠이 듭니다.

그때 신랑의 친구인지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인지 누군가가 신랑의 도착을 알립니다. 7절을 보면 열 명의 처녀들은 일어나서 등을 준비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들러리 여성들은 신랑이 도착할 때 횃불에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에 나타난 여성들은 신랑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횃불에 불을 붙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3-5절 말씀에 그녀들이 횃불에 불을 붙였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여성들은 기름이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살펴보았는데, 7절에 나타난 ‘준비하다’라는 말은 헬라어 코스메오(κοσμέω)인데, ‘정돈하다’, ‘손질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녀들이 횃불을 손질했다는 이야기는 횃불에 막 불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미 불이 붙어있는 상태임을 알려줍니다. 아마 그녀들은 신랑이 도착하기로 했던 시간에 이미 불을 붙여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미련한 이들이 슬기로운 이들에게 자신들의 횃불이 꺼져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름을 조금 나눠달라고 부탁합니다.

9절을 보면 조금 매정해 보이기도 하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슬기로운 여성들은 자신들의 기름을 나눠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름 파는 사람에게 가서 기름을 사오라고 말합니다. 한밤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이 매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결혼 잔치는 마을 잔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깨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름을 사러 갔다 오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련한 여성들이 기름을 사러 갔다 온 사이에 신랑은 이미 도착해서 집 안으로 들어간 상황이었고, 이 여성들은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10절부터 12절에는 실제 결혼 잔치가 아닌 최후 심판의 때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당시 결혼 잔치는 일주일간 계속되었기 때문에 집의 문이 닫히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심판의 때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이들은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들은 집 안에 들어간 신랑을 향해 소리치지만, 신랑은 매몰차게 그녀들을 거부합니다.

마지막 13절은 ‘깨어 있으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미 열 명의 여성이 모두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깨어 있음은 잠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신중하게 나중 일을 준비하라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깨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신앙인을 강조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열 명의 여성은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또 이들은 모두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신랑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횃불에 불을 붙여버린 것입니다.

슬기로운 여성들과 미련한 여성들의 차이는 딱 한 가지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입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은 재림의 지연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완벽한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신앙인이 되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때로 실수도 하고, 잠이 들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실수를 만회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묻습니다.

이 준비가 무엇인지는 앞선 24장 48-51절 말씀을 살펴보면 명확해집니다. 주인이 잠시 집을 떠나면서 종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겼을 때, 악한 종은 주인이 늦게 오리라 생각하면서 동료를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신다고 말합니다. 주인이 오기 직전에 선한 모습을 보이면 되리라고 생각하며 악한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주중의 삶 속에서 어떤 짓을 하며 살더라도 주일에 교회 와서 회개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명을 토요일에 거둬가신다면, 그분은 회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회개하면 된다는 생각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은 생각입니다만, 죽기 직전에 회개하면 된다는 생각도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부르실지, 그날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삶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슬기로운 여성들이 기름을 준비해 놓은 것과 같은 삶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이런 준비를 갖추며 살아간다면, 때로 우리가 신앙적으로 잠에 빠질지라도, 때로 미리 횃불을 켜는 실수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교회의 침체는 어쩌면 교회가 잠에 빠져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주변의 상황에 의해 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가 이전에 어떤 준비를 해왔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삶을 살아오며 미련한 이들처럼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더 이상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노력해왔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왔다면, 이 잠에서 깬 순간 우리의 교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때로 본의 아니게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서이든 주변 환경의 영향에 의해서든 멈추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현실에서의 멈춤은 기나긴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미리 준비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멈춤은 잠깐의 휴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슬기로운 다섯 여성은 잠시 눈을 붙였기 때문에 잔치를 더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로 모든 삶이 멈추기 전까지 삶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그런 이야기들이 또 나올 겁니다. 그런데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하는 멈춤은 절대로 그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그냥 계속 쉬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멈춤은 삶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간을 통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미 예전부터 어떤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이들을 따라한다고 해서 모두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미리 삶을 준비해 놓은 가운데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멈추게 되는 일은 때로 우리에게 쉼이 될 수 있고,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슬기로운 다섯 여성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항상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기에 졸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 원치 않게 멈추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이들처럼 미리 준비해 놓으셨기에 실수를 넘어서서, 멈춤을 넘어서서 다시 일어나 잔치에 참여하게 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적으로는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시고, 삶에서는 항상 나중을 준비하며 살아가실 때, 여러분에게는 잔치의 기쁨이 허락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즐거움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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