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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서 영성으로길희성 교수의 “길 찾기”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1.03.28 15:33
▲ 길희성 교수는 재직하던 서강대에서 은퇴 후 사재를 털어 만든 심도학사를 만들고 영성에 대해 깊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발간되기 시작한 전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심도학사를 방문했다. ⓒ에큐메니안

종교학에서 한국 최고의 학자로 여겨지는 길희성 교수는 10년 전 서강대에서 은퇴한 이후 강화도 고려산 자락에 <심도학사-공부와 명상의 집>을 설립했다. 심도는 강화의 옛 이름-沁都-이면서 인간 본연의 순수한 영성을 회복하는 길-尋道-을 생각하고 찾는다는 의미로 사재를 투자해서 만들었다. 이곳에서 길 교수는 종교 간 울타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성을 추구하는 일에 노년을 바치고 있다. 교수와 함께 공부와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그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도서출판 동연에서 길희성 교수의 전집을 발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여 권으로 기획되었는데, 지난 2021년 1월 <종교 10강-종교에 대해 많이 묻는 질문들>, 2월 <종교에서 영성으로-탈종교 시대의 열린 종교 이야기>가 발간되었고 4월에는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탈종교 시대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전집이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탈종교의 시대에서 종교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 미래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23일 강화도 심도학사에서 길희성 교수를 만났다. 오후 2시에 약속을 하였는데 초행이라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길도우미의 안내를 따라갔지만, 장소에 도착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길도우미는 정확하게 그 장소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근처까지 안내하더니 “목적지 근처입니다. 지도를 참조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안내를 종료해 버렸다. 결국, 주변을 몇 번 왔다 갔다 한 후에 심도학사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길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찾음”(심,尋)으로 만나는 것임을 배우면서, 도를 생각하고 찾는 배움터 심도학사(尋道學舍)에 도착하였다. 이미 연락을 받은 길 교수는 집 밖으로 나와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 시대를 진단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길희성 교수(이하 길): 한마디로 탈종교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종교는 제도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탈종교 시대는 더 이상 현재의 종교 모습으로 인간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에 한정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요즘 기독교가 위기에 처한 것은 목회자 혹은 신자들의 도덕적 수준의 저하로 인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메시지 자체입니다. 탈종교 시대에서 기독교 메시지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지도자들의 타락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패러다임 자체의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시지에 있어서 탈바꿈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를 맞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탈종교 시대는 지금의 종교의 모습을 탈피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메시지 자체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최근 도서출판 동연에서 출간되고 있는 전집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까?

길: 어느 날, 도서출판 동연 김영호 대표가 심도학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 김 대표가 저에게 전집 출간 제의를 했습니다. 실은, 잘 모르는 출판사의 대표였는데 김 대표의 진정성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동연출판사에 대하여 좀 알아보니 의외로 좋은 서적들을 많이 발간한, 믿을 만한 출판사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집을 낼만큼 나의 저작의 양이 충분한가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림잡아 약 20권 정도의 분량이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역량이지만, 점차 나이를 먹어가는 시점에서 후학들을 위한 의미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동연 김 대표의 전집 발간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 전집과 관련해서 최근 발간된 <종교에서 영성으로-탈종교 시대의 열린 종교 이야기>는 어떤 책인지요. 그리고 종교와 영성이라는 단어는 같은 말이 아닌가요?

길: <종교에서 영성으로>는 2018년도에 이미 발간된 책입니다. 첫판을 수정 보완한 개정판을 올해 동연에서 낸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는 위치를 진단하고 그 한계를 인정합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종교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탈종교 시대와 종교부정의 시대로 명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시대에서 또 다른 종교의 역할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종교 간 그리고 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서는 제3의 길, ‘초종교적 영성’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순수한 영성인 영적 휴머니즘을 회복하고 심화할 때 가능하며, 종교의 유무를 떠나 개인의 진정한 ‘참나’를 찾을 수 있는 열린 종교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저마다 다르고 보이는 풍경도 다르지만, 결국엔 하나의 정상에서 만나듯 종교도 그러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 혹은 믿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길을 가는 것”이며, 인류 공생과 평화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길희성 교수의 말을 듣다 보니 교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교수님의 평생을 통한 진리 추구의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동연이 출간한 <종교에서 영성으로>는 제도 종교를 넘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덜어 주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한없이 넓고 깊은 영성의 세계로, 우리를 더욱 깊은 삶으로 인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제도와 편협한 가치관을 벗어나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시대의 어른으로 그동안의 학문과 삶을 통해 길어 올린 영성과 깊은 통찰이 따뜻하고 쉽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 기독교의 문제는 목회자 혹은 신자들의 문제를 넘어 메시지 자체에 있다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길: 제도적인 종교로서 기독교는 이미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기독교의 위기는 지도자와 교인들의 부도덕한 행위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메시지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기독교의 메시지는 인간의 이성을 파헤쳐 놓았습니다. 은총은 이성을 완성하지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자주의적 근본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파괴해 놓았습니다. 질문하는 신앙을 배제하고 ‘묻지 마’ 신앙을 강요합니다. 은총이 이성을 파괴해 놓은 꼴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메시지의 첫 번째 문제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메시지의 절대성과 유일성의 주장인데, 유일신론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관의 문제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포월적 신관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포월(包越)이란, “품어 안고 넘는다”라는 의미인데 “포함하면서 초월한다”라는 뜻을 줄여서 표현한 단어입니다.

창조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창조신을 어머니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세상을 만든 어머니의 의미로 God as maker-mother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신은 공학적이며 기능적인 창조의 신으로 이해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창조신은 God as birthing-mother입니다. 공학적 의미를 넘어서는 생물학적 창조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조신은 인간과 온 우주 세계와의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는 신입니다.

▲ 길희성 교수는 탈종교 시대를 맞이하게 된 기독교의 문제를 기독교 내부에서 찾았다. ⓒ에큐메니안

▲ <종교에서 영성으로>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종교는 망해도 영성은 존재한다고 것인지요.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길: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적 존재입니다. 인간은 영성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종교가 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영성은 존재 자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탈종교 시대에서 종교가 아직 살길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에서 영성으로의 과감한 전환입니다. 영성은 종교의 핵입니다. 영성은 존재 자체 다시 말하면 ‘참나’와 관계가 있습니다. 영성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외면당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탈종교 시대의 종교는 영원한 핵인 순수한 영성을 재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성은 교리나 제도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근대 세속적 휴머니즘이 인간을 억압해 온 종교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준 공헌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공허한 외침으로 전락해가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세속적 휴머니즘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제 현대인들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적 휴머니즘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의 핵심입니다. 종교에서 영성으로의 전환을 위해 중간 단계로서 종교의 망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길희성 교수와 대담은 끝이 없었다. 오후 2시 무렵 시작된 대담은 어느새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거침없는 그의 말은 오늘 한국 기독교 상황을 바라보면 답답하던 기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데 충분했다. 대담이 끝나고 길희성 교수는 심도학사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앞이 훤하게 트인 사무실과 공부실, 명상실 등을 보면서 이곳에서 진정한 영성이 꽃 피울 수 있기를 기도했다. 이곳, 심도학사가 진정한 종교, 영성의 의미, 참나를 찾는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고 수련을 쌓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출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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