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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욕망으로 뒤덮인 이름“당신은 누구십니까?”(요한복음 8:25-3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3.30 16:45
▲ Pietro Lorenzetti, 「Jesus enters Jerusalem and the crowds welcome him」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사람들은 평안을 얻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성공을 바라거나, 많은 돈을 소유하기를 바라거나, 더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노력 끝에 이런 바램들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평안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참된 평안은 몸의 바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7의 말씀입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평안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주어졌습니다. 이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할 때,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은 결코 정체된 삶을 살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간 것처럼, 우리 역시도 하나님이 허락하실 삶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앞길을 막는 모든 방해물을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꿈꾸는 만큼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부르며 환영한 데서 붙여진 이름의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살고 사역하셨던 지방은 사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종려나무는 물을 많이 먹는 식물이기에 사막 같은 곳에서 종려나무를 보게 되면 그 지역은 물이 많은 곳, 풍요로운 곳으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종려나무의 열매는 달아서 꿀과 같다고도 표현을 하는데요.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종려나무는 ‘승리, 번영, 기쁨’을 상징합니다.

예수가 보여준 기적, 권위 있는 말씀 등의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환대했습니다. 이 세상을 전복시킬 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실연시켜 줄 왕으로 맞이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어야만 했기에, 예수님의 입을 통해 정말 왕인지, 확인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분입니까?”, “오실 그 이가 당신이십니까?”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도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5절입니다.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은 ‘온 삶을 통해’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 “당신이 누구십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누가복음 7:22-23)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셨지만 사람들은 늘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요한복음 8:37b), “어찌하여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요한복음 8:43)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은 자신들의 잘못된 욕망을 자신에게 투영하며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있는 이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환영했던 이들이 돌변해서 침을 뱉고, 돌을 던지며, 모욕을 하게 되지만 예수님은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신앙생활하며 어려움을 겪게 되면 잘못된 기대를 걸었던 만큼이나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하나님 따위 없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실 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누가복음 23:34a)의 말씀처럼 기도하셨습니다. 죄 많은 이들, 배신자들, 어리석은 이들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지금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 대하여 말하고 또 심판할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며,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대로 세상에 말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오로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이들만이 득실거릴 곳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셨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피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27절과 28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곧 나’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까닭,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처형당하시는 모든 순간들을 감내하시는 이유가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고백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관되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 8:55b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두 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죽기까지 사랑하는 삶”이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이들, 자신의 제자들조차 여전히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이런 기적과 사랑을 보여주시는지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사랑을 위해 사는 삶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29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전히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세속적인 욕망에 가득 차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가 보여주는 삶과 선포하고 있는 삶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고난의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며 감정을 쥐어짜내려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위해 기꺼이 고난 받는 삶을 살 때 가능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의 소식은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소망이요 기쁨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어떤 고난도 겪지 않고 있다면 부활이 어떻게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쉬고, 밥 먹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도대체 부활이 어떻게 진정으로 소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 브라질 아마존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기에 이 시간 성도님들과 편지의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과 날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는 그 높으신 이름을 찬송하며 아마존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선교를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선교의 대상이다.”라고 말한 글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선교의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 봅니다. 선교는 국외와 한 곳에 국한 된 것이 아닌, 우리의 삶의 자리가 선교의 자리이며 복음 전도자의 소명을 품은 거룩한 사람들임을 고백해 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의 소식을 다시 접하면서 참 감사한 마음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시는 모습을 느껴봅니다. 중국에서의 5년과 아마존에서의 3년의 선교 사역의 시간은 때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일하시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시간임을 되새겨봅니다.

아마존에 관해 아직도 저는 많이 부족하기에 오늘도 아마존 강가를 다니면서 오늘 나에게,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소명, 사명의 뜻을 새롭게 새겨봅니다. 부족한 종의 사역을 기억해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의 마음을 전해 주시니, 이 또한 큰 힘이 되니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 아이들을 보셨는지요? 저희 아이들 삼형제는 2018년부터 2년 동안 아마존 정글학교에서 어려운 환경과 시기를 보내고 지금은 고성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이로 보면 벌써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갈 시기이지만 이 또한 아이들에게 특별하게 배려해 주신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알기에,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가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지금 세계 곳곳에 어렵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함께 중보하며, 격려하며, 서로 피차 위로 하라고 하시던 말씀을 깊이 기억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기도해 주시는 그 마음이 현지 선교 사역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도 부족하지만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초도제일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브라질은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10만명을 넘고, 사망자가 3천명 가까이에 이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한국도 어려우시겠지만 아마존을 위해서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하며 사랑합니다. 아마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
이진석·정은숙 드립니다.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선교사님 편지의 첫 문장부터가 은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선하심과 날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는 그 높으신 이름을 찬송하며 아마존에서 안부전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이요, 간섭하심이라고 선교사님 부부는 고백합니다.

편지를 다 읽고서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의 찬양이 절로 고백되어졌습니다.

1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3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도 여전히 예수님을 오해하며 질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다 알려주셨고, 보여주셨음에도 우리의 그릇된 욕망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뜻과는 다른 삶을 우리가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쫓으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일을 찾아 기쁨으로 고난을 감수하며 사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우리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종려주일, 고난주간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사랑하는 삶을 보내심으로 다가오는 부활주일이 참으로 기쁨이 되며, 소망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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