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귀를 타신 왕이라는 역설은 예수님의 본질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Getty Image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모든 단위에서 갈수록 복잡해고 있습니다.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습니다. 복잡해지는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리는 짧아지고 그만큼 세상은 좁아집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특히 부정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이 미치는 속도는 빨라지고 그 결과는 자칫 치명적이 되기 쉽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예가 지금 전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로는 하기 어려운줄 알면서도 덜 복잡하고 덜 빠른 삶을 원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현실에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고 계십니다. 그 나귀는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입니다. 그런 나귀가 성인을 그 위에 앉힌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를 맞는 사람들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환호하는데, 일반적으로 왕에게 기대되는 것은 나귀보다 말이나 전차일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광경은 어느 모로 보나 자연스런 풍경은 아닙니다. 어린 나귀는 속도나 힘이나 위용이나 어느 점에서나 말이나 전차에 비교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느리고 힘없는 그것을 선택하신 주님입니다. 아주 의도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뜻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느린 삶을 살려는 운동이 시작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것을 뜻으로 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운동은 잘 확산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의도로 그리 하셨을까요?

예수의 행동은 수백년전 스가랴가 예언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단지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리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당시는 포로기 이후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시절입니다. 예언자 스가랴는 나귀 타고 오시는 왕의 모습으로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한편으로 고발합니다. 당대 최강의 국가인 페르시아에서는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많이 더 넓게’ 같은 것이 시대정신이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작은 나라와 민중들에게는 한마디로 고통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스가랴는 그것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나귀 타고 오시는 왕은 공의와 겸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왕이 온다면, 그는 그것으로 세상이 자랑하는 전차와 말, 활과 칼을 이길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왕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전쟁무기들을 폐지시키고 모든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실 것입니다. 느리고 작고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승리하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기적을 하나님은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그 어둠의 시대에 이와 같은 비전을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선택하신 이유를 스가랴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시는 주님을 향해 환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요한복음서는 주님이 나사로를 살린 것을 사람들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인간의 모든 노력과 성취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이 모든 생명체의 구별조차 없앤다고 탄식했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다른 생물들보다 낫다는 인간의 자의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죽음으로부터 주님이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으니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이를 나귀 사건과 연관시킨 것은 요한복음뿐입니다.

그 사건을 경험한 이들은 주님을 향해 호산나 곧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에 근거해서 그들은 시대를 거스르는 비폭력적이고 탈권위적인 새 시대를 아울러 기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는 예수를 잡으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 그를 보고 낙심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의와 겸손, 생명과 평화에 대한 열망이 그들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나사로 사건을 계기로 그 열망이 겉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주님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시기라도 하듯 당대 권력의 중심이었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성전 정화 사건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으로 뭇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 사건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체포되심으로 그들의 희망도 잡히고 말았습니다. 세상 권력과 술수의 승리로 비쳐졌습니다. 희망 속의 환호 소리는 절망과 분노의 아우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나귀에서 끌어내리고 십자가에 올렸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를 어떻게 감내하셨을까요? 종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인 위의 본문은 고난당하는 종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귀에 대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니다. 그는 거역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성난 군중이 있지만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를 향해 주먹이 날아들기도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습니다. 등에 채찍질이 더해져도 등을 그들에게 맡깁니다. 모욕적인 행동을 당해도 그는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당당하고 담담합니다. 어떤 폭력이나 모욕도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없습니다.

무엇이 그가 이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야훼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는 그가 해왔던 모든 일에 야훼가 함께 계셨고 그의 길을 인도하셨으며 그의 일을 인정하셨음을 압니다. 그에게 가해지는 사람들의 어떤 행위나 어떤 야유에도 그는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편인 까닭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를 의롭다고 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권력자들과 군중들 앞에서 폭행과 모욕을 당한다고 해도, 이것이 그의 평정심을 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비춰 고난당하시는 예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겉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잡히시기 전날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 그의 도움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아들의 고통을 침묵 속에 삼키셨습니다.

그 시간 주님은 홀로이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외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고난의 시간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당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사랑과 연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인내와 사랑이 아니고는 평화의 내일을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불의를 심판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종려주일은 부활에 이르는 길의 시작입니다. 거기에는 고난과 죽음이 있습니다. 이룰 넘지 않으면 부활과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를 위한 고난과 죽음을 홀로 감당하신 주님 곁에 우리가 있기를 빕니다. 종려주일의 함성이 부활의 함성으로 바뀌기를 빕니다. 성난 군중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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