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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와 다른 교회들: 루터교회, 감리교회개혁교회, 무엇이 다른가? ⑸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04.03 14:48
▲ 루터와 칼빈 그리고 웨슬레

개신교 종교개혁 전통에 속한 교회들과 여러 종파들은 학문적으로는 세 가지의 독특한 유형으로, 즉 루터파, 개혁파,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감리교)로 분류할 수 있다. 종교개혁 전통에 함께 속해 있는 이 교회들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포함하여 개신교 종교개혁의 두 가지 원리인 형식원리와 내용원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개혁의 형식 원리인 ‘성서원리’에 대한 이해와 적용에서 개혁교회와 루터교회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고, 감리교회는 또 다른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내용 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원리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가에 따라서 각각의 독특한 신학적 특징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유형들의 특징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개혁교회만의 독특한 특성을 부각시킬 것이다.

율법과 복음, 혹은 복음과 율법?

칼빈은 루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베버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제4권 교회론에서 “그가 우리 시대를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으니...”(Inst.,Ⅳ.iii.4)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루터를 가리켜 한 말이 틀림없다고 본다. 또한 베버에 의하면, 칼빈은 다른 곳에서 루터를 ‘사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1) 칼빈이 루터를 하나님의 특별한 종으로 여겨 지극히 존경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루터는 칼빈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다. 베버는 루터가 칼빈을 마귀처럼 여겼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루터파는 개혁파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다. 19세기 유명한 루터파의 감독 마르텐센(Martensen)은 루터파와 비교하여 개혁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스위스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성서의 권위의 형식적인 원리로부터 나오지만, 이에 반해 루터파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의 깊이에서 그 출발점과 결정적인 근거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죄와 구속의 경험이다. 이것은 선택에 의해, 거저 주시는 구원의 내용적인 원리와 연결된다. 차이점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했던 동일한 대상과 항상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스위스)개혁이 그것에서 해방될 수 없었던 모세의 율법주의에 있다. … (스위스) 개혁은 결코 이러한 모순에서 해방될 수 없었지만, 루터파는 모든 은혜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복음을 확언하였다.(2)

마르텐센의 글은 루터파의 특징과 루터파가 개혁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요약해준다. 오직 신앙으로 말미암아 거저 얻게 되는 구원에 대해 말하는 루터파의 ‘내용 원리’와 심리학적인 용어에 의해서 규정되는 루터파의 본질, 그리고 루터파는 “모든 은혜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복음을 확언”하지만, 개혁파는 “모세의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그의 비방에서 루터파와 개혁파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루터파의 ‘내용 원리’와 “그리스도인의 의식의 깊이”, “죄와 구속의 경험” 등과 같은 심리학적인 용어에 의해서 설명되는 루터파의 독특한 본질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주의”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개혁파에 대한 루터파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율법에 대한 개혁교회의 독특한 이해를 드러내기 위해 명확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

루터는 율법을 일반적으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의 목록에 율법은 언제나 죄, 죽음, 그리고 악마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칼빈은 율법을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타락한 창조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한 방편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고려한다.(3) 율법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견해차는 “죄와 구원”에 대한 루터의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또한 루터와 칼빈의 성서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성서에 대한 개혁교회 개혁자들의 강조가 루터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앞선 글들에서 살펴보았다. 개혁교회의 ‘성서원리’는 ‘성서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성서 전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원리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서 전체가 그 충만함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어떤 특정한 부분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러나 루터는 ‘성서 안에 있는 또 다른 성서’(canon in the canon)를 주장하였다.(4) 예컨대, 루터는 ‘성서 전체’에서 하나의 특별한 주제, 곧 ‘신앙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칭의론’으로 환원을 시킨 것이다. 그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그러나 성서 전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개혁자들은 ‘율법’에서 복음의 형식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참고, Inst.,Ⅱ.vii.2). 칼빈은 종종 율법을 “사랑의 원칙”으로 묘사하였다(Inst.,Ⅱ.viii.49). 여기서 율법은 더 이상 인간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조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율법으로 신자들에게 다가온다. 율법은 이제 신자의 삶을 독려하는 규범과 지침이 된다:

(신자가) 성령에 따라 하나님의 의를 향해서 아무리 정성껏 노력하더라도, 무관심한 육이 짐이 되어 제대로 전진할 수 없다. 율법은 육에 대해서 마치 가지 않는 게으른 나귀를 가게 하는 채찍과 같다. 영적인 사람이라도 육의 짐을 벗지 못하고 있는 동안은, 율법이 여전히 부단한 자극이 되어 일시도 한 자리에 서 있지 못하게 한다. 확실히 다윗이 율법을 찬양했을 때에 이 용도에 대해 언급했다(참고, 시 19:7-8, 119:105)(Inst.,Ⅱ.vii.12).

이것은 이른바 개혁파의 “율법의 제3 용법”을 말하는 것이다. 율법에 관하여 루터파와 개혁파가 전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루터파와 개혁파는 두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 율법에 대한 개혁교회의 독특한 특징은 그 세 번째 용법에 대한 강조에 있다. 율법의 첫째 용도는 우리의 죄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공의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자들을 신앙적 삶으로 인도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칼빈과 루터는 율법의 처음 두 가지 용법들에 대해서는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그러나 루터는 결코 율법의 세 번째 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칼빈과 개혁교회에서만 강조되었다(Inst.,Ⅱ.vii.12).(5)

그러나 분명히 칼빈은 율법을 신자들이 주님을 두려워하도록 붙들어 두기 위한 “고삐”, “의의 완전한 기준” 등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은 복종 이외의 희생은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6) 바로 이것이 칼빈의 ‘율법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율법주의는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는 여김을 받는 것, 즉 루터가 ‘율법의 의’로 배척했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칼빈은 인간이 해야 할 것에 관하여 질문하는데, 그가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에 이 질문에 도달했던 것이다. 복음을 주신 분이 또한 율법을 주셨다! 그러므로 복음이 믿음 안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율법은 의지를 위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7)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마르텐센이 개혁파를 향해 던진 “모세의 율법주의”라는 비난은 17, 8세기 이후 등장한 소위 칼빈-정통주의자들이라면 모르지만, 칼빈의 가르침에는 결코 해당하지 않는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여 도덕적, 윤리적 당위성이나 율법적 강제 때문이 아니라, 기쁜 마음에서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일은 괴로운 일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무거운 멍에,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의무로 부과된 것이 아니라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섬김이 무엇인지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8)

19세기 루터 연구의 결과로서 루터파 신학에서 “율법과 복음”이라는 전통적인 순서는 확고한 교의가 되었다. 개혁파에 대한 마르텐센의 저 비난은 19세기 루터 연구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의 논쟁적인 책 『복음과 율법』(1935)에서 이 순서를 역전시키고 복음이 율법에 우선한다고 선언하였다. 율법은 반드시 약속을 뒤따르는 것이다. 율법은 계약의 법궤 안에 들어 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바르트는 칼빈을 따라서 율법은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를 기만하는 죄를 통해서 율법이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어떤 것으로 경험되고, 그로써 “죄와 죽음의 법”(롬 8:2)이 되었지만, 율법은 그 본래적인 목적에 따르면 단순히 복음의 한 형식이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은 같은 것이 아니며 또 혼동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바르트는 말한다:

율법이 복음이 아니듯이 복음은 율법이 아니다. 그러나 율법은 복음 안에 있고 복음으로부터 나오고 복음을 지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알기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복음에 관하여 알아야 하고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의 주제에 정확히 접근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라도 먼저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의 내용에 관해 말해야 한다.(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이 그의 계약과 분리되지 않는다면, 그때 그것은 실제로 “복음의 필연적인 형식”이고 신앙의 살아 있는 형식이 된다. 환언하면, 정확히 이 복음의 내용(은혜)이 그 형식, 곧 율법의 형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은혜가 나타난바 되고, 이 은혜에 대한 증거와 선포가 행해질 때, 그것은 인간에 대한 요구와 주장을 의미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곧 오실 분 혹은 오신 분을 믿는 신앙이 생길 때나, 그의 이름이 설교될 때, 은혜가 의미하는 바는 모세와 엘리야,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세례 요한과 바울과 야곱이 맡은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다.(10)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 바울조차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롬 7:12)이라고 말하며, 율법이 하나님의 계약에 맞선다는 것을 부정한다(갈 3:21). 오히려 율법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약속되었던 것이다(롬 7:10). 그러므로 바울은 산상설교의 말씀에 동의하면서(마 5:17 이하) 신앙의 선포는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확립이라고 말한다(롬 3:21).(11)

루터파가 율법에 대한 바울의 이 적극적인 평가를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루터파가 루터의 인격, 그의 개인적인 죄와 구속의 경험, 그의 교리에 너무 전적으로 얽매여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오늘날 많은 개혁교회들이 율법주의적 형태를 신앙과 경건의 특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마르텐센의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혁교회는 ‘성서 전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기 때문에, 루터파가 놓친 말씀의 충만함을 회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언제나 복음과 율법이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율법보다 복음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율법이 그 본래의 은혜로운 계약의 상황에서 분리되어 강조된다면, 그것은 건조한 도덕주의적 계율로 변하고 시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개혁교회 전통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책임성, 혹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르미니우스 파는 아르미니우스(J. Arminius, 1560-1609)를 추종하는 자들로 개혁교회 도르트(Dort, 1618/19) 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개혁교회에서 축출된 자들을 말한다. 아르미니우스 논쟁은 예정론에 관한 논쟁에서 시작되었지만, 후에 칼빈주의 5대 교리(12)로 비화되었기 때문에, ‘5대’ 논쟁이란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아르미니우스 논쟁이 개혁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펠라기우스 논쟁이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선 아르미니우스 논쟁의 개요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칼빈 사후에 그의 예정론은 두 가지 대립적인 예정교리로 발전하게 된다. 하나는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가 주장한 ‘타락 전 예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 후 예정론’이었다. ‘타락 전 예정론’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인간들의 공적이나 잘못에 관계없이 선택할 자들과 배제될 자들을 미리 결정하셨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하여 ‘타락 후 예정론’은 하나님이 인류가 타락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그들 가운데서 어떤 자들을 선택하고 다른 자들은 배제하셨다고 주장했다. 달리 표현하면, 타락 전 예정론에서 예정의 대상은 아직 창조되지 않고 아직 타락하지 않은 인류였고, 타락 후 예정론에서는 이미 창조되고 타락한 인류였다.

바르트는 두 가지 입장들이 모두 다 사변적이지만, ‘타락 전 예정론’이 ‘타락 후 예정론’보다 바로 이해된 예정론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고 본다. 왜냐하면 ‘타락 전 예정설’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가 세계를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것과 같은 전능과 선하심과 지혜로서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대하여 또한 결단하셨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창조와 화해가 함께 고려되고 있고, 둘 다 하나님의 한 구속의 의지와 한 신적 본질(예수 그리스도)에 귀결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당시의 신학자들 다수가 주장한 반대 이론인 ‘타락 후 예정설’은 전형적인 스콜라적 궤변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실 때의 그의 선하심과 지혜가 한 편에 있고, 그것과 나란히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위해 결단하는 특수한 선과 의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창조와 화해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13) 이 타락 후 예정론은 구원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서, 즉 ‘계획 A’가 실패한 뒤에 ‘계획 B’를 실행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응급조치 혹은 구속적인 수리작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 가톨릭교도, 루터파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어떤 개혁교회 신학자들에게는 타락 전 예정설의 하나님은 독단적으로 어떤 자들을 구원하고 다른 자들은 저주하는 악마의 외양을 지닌, 유죄판결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타락 전 예정설이 하나님을 죄와 악의 창조자로 만든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14)

아르미니우스는 본래 베자의 제자로서 엄격한 칼빈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가 고향 네덜란드에 돌아가 라이덴 대학의 신학교수로 활동할 때, 베자의 가르침을 반박한 코른헤르트(D. V. Koornheert)의 저작에 맞서 칼빈주의 교리를 옹호하고 그를 반박하여 달라는 암스테르담 시장의 요청을 받고 그의 글을 읽던 중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코른헤르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타락 전 예정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다 더 급진적으로 하나님은 믿을 사람에 대한 예지를 근거로 예정하셨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펠라기우스주의를 연상시키는 자유의지의 교리 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격한 논쟁이 이어졌고, 아르미니우스는 정부에 회의를 소집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회의가 소집되기 전에 죽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나자 그의 주장을 추종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다섯 항목으로 구체화시켜 1610년 『항의서』(Remonstrance)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와 서 프리스란드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칼빈주의자들은 『반-항의서』(Counter-Remonstrance)를 제출했다. 1611년에 헤이그에서 두 파당 사이에 회합이 열렸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613년 델프트에서 모인 회의나, 1614년 그로티우스(H. Grotius)가 작성하여 화해를 촉구한 정부의 칙령도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15) 마침내 도르트에서 1618년에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아르미니우스의 견해에 대해 유죄를 판결하고 은혜에 의한 구원의 보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서 무조건적인 선택을 주장했다.(16)

아르미니우스 파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지만, 인간의 응답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된 노력을 통하여 성취된다. 하나님은 모든 자를 위해 구원을 예비하셨지만, 그것은 단지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한” 자들을 위해서만 효과적이 된다. 인간의 의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아르미니우스 파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될 자들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17)

감리교는 존 웨슬리(John Wesley)가 1778년 “아르미니우스파 잡지”(The Arminian Magazine)를 창간하고, 개혁교회의 예정론을 거부함에 있어 자신은 아르미니우스와 일치한다는 것을 확언한 이래 아르미니우스파의 5대 주장(18)을 그대로 수용한다. 루터파는 아르미니우스파에 대하여 동정적이었다. 그렇다면, 웨슬리는 루터파와 개혁파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웨슬리는 루터파의 칭의론에 대해서는 “율법폐기론”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였고, 개혁파의 예정론에 대해서는 이 교리가 어떤 사람들의 구원은 보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은 보장하지 않은 하나님의 자의적이고 무차별한 행동을 말하기 때문에 불경스럽고 비위를 상하게 한다고 거부하였다.(19)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감리교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감리교에서는 내용 원리가 형식 원리에 종속된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요청들이 문제가 될 때에는 성서를 해석하는 기준은 인본주의적인 감각과, 신비를 싫어하는 합리주의가 된다는 것이다.(20) 여기서 우리는 루터파와 감리교도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양쪽 모두 개혁파와 달리 강조점이 인간에게 있고, 합리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분열과 논쟁의 과정에서 루터파, 개혁파, 감리교도들은 서로에게 관대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루터가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스위스 사람들을 향해 보여준 무뚝뚝한 행동과, 루터교도들에게 칼빈이 거의 접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기만 하면 된다. 칼빈주의자들은 도르트에서 아르미니우스의 제자들을 대할 때에 의심할 바 없이 매정하였다.(21) 왜 이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는가? 어째서 개혁교회 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교도들과 루터교도들,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들에 대하여 그렇게 배타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개혁교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저들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루터파와 웨슬리의 아르미니우스주의가 하나님의 무한하고 변치 않는 전능성을 고백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하나님의 전능성을 제한하는 피조물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인 개념을 주장함으로써 그들이 방금 전에 확언하였던 것을 즉시 부인한다.

예컨대, 루터교는 우리가 신앙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주장할 때, 인간의 행위인 신앙에 의해서 우리가 칭의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을 부인한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하나님이 구원의 유일한 창시자라고 고백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 협력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방금 확언하였던 것을 부인한다. 결국, 원래의 명제들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은 너무나 집요해서, 정반대의 명제를 주장하는 편이 우세하게 되고, 마침내 원래의 명제가 부인되게 된다. 여기서 개신교의 교리적인 변질이 시작되고, 우리는 감정적이거나 이성주의적인 기독교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교회 신학은 먼지 속에 머리를 조아린 채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라서 말하지만, 그의 말씀이 침묵하는 곳에서는 조용히 머물러 있을 뿐이다. 여기에 개혁교회 신학의 자격이 있다.(22)

개혁교회의 신학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교회의 개혁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성서를 통하여 들었던 자들이다. 우리는 개혁교회의 모든 신학사상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해된 저 ‘성서원리’를 토대로 확립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개혁자들은 저 원리에 근거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왜곡된 기독교 자체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모든 신앙적 관계와 사건에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체가 되신다는 사실을 천명할 수 있었다.

개신교 종교개혁 전통에 속한 교회들과 종파들은 학문적으로 세 가지의 유형, 즉 루터파, 개혁파, 감리교파로 분류할 수 있고, 이 교회들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들을 포함하여 개신교 종교개혁의 두 가지 원리인 ‘내용 원리’와 ‘형식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파와 감리교회가 각각 ‘인간의 신앙’이나 ‘인간 의지의 자유’에 강조점을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인본주의적이고 이성주의적인 경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개혁교회는 어떠한가?

오늘날 많은 개혁교회들에서 율법주의적인 행태가 신앙과 경건의 특징으로 간주되고 있고,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보다는 인간의 책임성에 대한 아르미니우스적 강조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현실은 단적으로 개혁교회의 바른 사상에 대한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신앙의 율법주의적 행태를 바른 신앙과 경건의 특징으로 간주하고, 또한 1619년의 도르트 회의에서 아르미니우스 파를 강하게 비판했던 자들의 주장보다 아르미니우스 파들이 주장한 것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면, 무슨 권리와 무슨 목적에서 교황에 반대하는 개혁교회 회원으로서의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예정론이 거의 모든 개혁교회 신앙고백들에서 강하게 지지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6세기와 17세기의 상황이 다시 일어나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만이 강하게 강조되는 예정의 개념이 어떻게든 개혁교회 신학의 핵심과 전체로서 다시 단언되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개혁교회 사상의 특징은 ‘앞선 것’, ‘우선적인 것’의 강조, 다시 말하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하늘의 방법과 땅의 방법을 근본적으로 구별하고, 전자의 견지에서 후자의 방법을 바라보며, 본래적인 권리로서 후자의 방법을 진지하게 취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개혁교회 교리의 전제는 전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현실적이며 한이 없는 미해결의 문제라는 사실에 대한 개혁교회적 인식이며, 또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자유로이 편견 없이 ‘성서 전체’에서 받아들이는 개혁교회적 준비성이다. 만약 우리가 성서와 성령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바로 개혁자들이 감당했던 그 사명은 우리 안에 충만해질 것이다.(23)

미주

(미주 1) CR 6,250; O. Weber, Die Treue Gottes in der Geschichte der Kirche, 1968, 김영재, 『칼빈의 교회관』(이레서원, 2001), 67에서 재인용.
(미주 2) Auguste Lecerf, Introduction à la Dogmatique Réformée (Editions Je Sers, 1938); 신경수 옮김, 『개혁교의학 서론』(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523에서 재인용.
(미주 3) D. K. McKim(ed.),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 215 이하.
(미주 4) 김창주, “개혁교회 신앙의 성서적 토대”, 『말씀과 교회』 제42호(기장신학연구소, 2007), 99 이하.
(미주 5) D. K. McKim(ed.),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215이하 참고.
(미주 6) 박근원·김경재·박종화 편집·감수, 『장로교 신조 모음』 (서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2003), 51, 112.
(미주 7) K. Barth, Die Theologie der reformierten Bekenntnisschriften, 1923, tr. by D. Guder and J. J. Guder, The Theology of the Reformed Confessions (Westminster/John Knox Press, 2002), 101.
(미주 8) J. Calvin, Instruction in Faith(1537), 이형기 옮김, 『칼빈의 신앙교육서』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23. 이는 십계명 서문에 대한 칼빈의 주석에서 분명히 나타나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이다.” 칼빈에 의하면 십계명은 하나님의 이 구속적 행위를 뒤따르는 것일 뿐 결코 앞서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칼빈은 이 십계명 주석에서 하나님이 그의 권위와 위엄 보다는 오히려 “부드러움”과 “친절함”으로 우리에게서 “성실함”을 이끌어내시려고 한다고 추론한다. 여기서 그는 자주 하나님을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의 나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웅변적으로 묘사한다(Inst.,Ⅱ.viii.13-15).
(미주 9) K. Barth, “Evangelium und Gesetz”, 1935, 전경연 편역, 『은총의 선택 및 복음과 율법,』복음주의 신학총서 제2권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 84 이하.
(미주 10) Ibid., 94.
(미주 11) Ibid., 102.
(미주 12)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대해서는, Loraine Boettner, The Reformed Faith, 1-23를 참고.
(미주 13) K. Barth, 『은총의 선택』, 10-11, 48 이하.
(미주 14) D. K. McKim(ed.),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360이하. 
(미주 15) 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박일민 옮김, 『신조학』(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159-160.
(미주 16) J. L. Neve,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Ⅱ, 서남동 옮김, 『기독교신학사』(대한기독교서회, 1967), 36 이하 참고.
(미주 17) Loraine Boettner, The Reformed Faith를 보라. 뵈트너는 이 작은 책자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와 개혁교회의 특징을 매우 명쾌하게 비교 분석하고 있다. 또한 H. Orton Wiley and P. T. Culbertson, 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 Beacon Hill Press, 1946, 전성용 옮김, 『웨슬리안 조직신학』(세복, 2006), 122-123, 314-316를 참고.
(미주 18) 아르미니우스파 5대 주장에 대해서는, J. L. Neve,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Ⅱ, 35-50을 참고.
(미주 19) Victor Monod, Faut-il revenir à Wesley?, 7, 10; Auguste Lecerf, 『개혁교의학 서론』, 524에서 재인용. D. K. McKim(ed.),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292. H. Orton Wiley and P. T. Culbertson, 『웨슬리안 조직신학』, 308-310.
(미주 20) Auguste Lecerf, 『개혁교의학 서론』, 524.
(미주 21) K. Barth, “The Doctrinal Task of the Reformed Churches”,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eter Smith Publisher, 1978), 253 (이하 DTRC로 표기)
(미주 22) Auguste Lecerf, 『개혁교의학 서론』, 530-531.
(미주 23) DTRC, 268.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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