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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무덤 앞에 선 신앙말씀하신대로(마가복음 16:6-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4.04 14:48
▲ Clark Kelly Price, 「The Empty Tomb」 ⓒGetty Image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신 날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보다도 더 중요한 날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부활주일마다 우리 교회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기뻐하는 데 그치거나 그저 교회의 행사 중 하나로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도 부활하셨음을 믿는지 안 믿는지의 문제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하셨음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전하려고 했고, 어떤 신앙을 전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부활 사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글이 아닌 구전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전해왔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전승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 바울의 편지가 복음서들보다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사도 바울은 이 신앙고백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말씀임을 분명히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해 받은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예수님께서 장사되셨다.’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 ‘베드로와 12제자에게 보이셨다.’ 이렇게 네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해들은 신앙고백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로 시작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을 통해 끊임없이 설명하려고 노력한 신앙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장사되셨다’는 고백은 예수님의 육체적 죽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는 부활이 영적 부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고백에 ‘육신’이라는 말이 포함되진 않았지만, 우리는 육신의 부활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고백은 ‘부활’과 ‘3일’이라는 기간이 포함되어 있고, 그 증인이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였다는 말로 끝납니다. 아마 6절 이후에 나타난 증인의 목록은 초대교회가 형태를 갖춰감에 따라 첨가된 고백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부활에 대한 고백은 상당히 간단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처음에 전달되었던 부활 신앙은 어쩌면 이보다도 더 간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부활 사건에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덧입혀집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빈무덤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빈무덤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의 처형 당시 제자들 대부분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지만, 일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빈무덤에 대한 증언은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 집단의 주도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빈무덤에 대한 증언이 훗날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빈무덤 사건에 대한 전승이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증언이며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에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수장으로 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전달된 것이라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던 사도 바울이 이런 전승을 모를 이유가 없습니다.

아마도 빈무덤 사건에 대한 증언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공동체에 의해서 만들어졌거나, 사도 바울의 활동 이후, 마가복음이 기록되기 전에 어떤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져 전해진 이야기일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8절에 나타난 빈무덤 사건은 마가복음 안에서 상당히 잘 짜여진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1-2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려고 사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향유는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시신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5장 46절을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받은 후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장사했다고 말합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을 싼 세마포를 풀고 향유를 바르고 다시 새로운 세마포를 싸드리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세마포 위에 향유를 바르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이 여인들을 비롯한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표현하기 위한 구절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는 여인들의 행동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표현하기 위한 내용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가복음 14장 3-9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와 연결되며, 예수님의 공생애와 부활 이후의 시간을 연결합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 앞에 가보니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거대한 돌이 굴러져 있었고,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은 3절에서 여인들의 대화를 통해 이 돌이 크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 4절 마지막에도 이 돌이 심히 컸다고 한 번 더 설명합니다.

그녀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돌이 굴려져 있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은 큰 지진이 나고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렸다고 말합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났던 빈무덤 사건이 마태복음에 전해지면서 기적적인 사건의 하나로 수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조금 현실적으로 접근합니다. 무덤의 돌이 굴려졌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 여인들은 근심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무덤 돌을 굴린 후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에는 누가 돌을 굴렸는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인들은 ‘누가 돌을 굴려줄까’ 하고 대화했지만, 마가복음은 돌을 굴린 존재에 대해 침묵합니다. 이 침묵은 마가복음이 전하는 빈무덤 사건에서 ‘누가 돌을 굴렸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마가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덤이 열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합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 안에서 흰옷을 입은 청년을 발견하는데, 흰옷을 입었다는 점은 당시 유대인 문학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천사를 의미합니다. 천사는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사실과 함께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바와 같이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14장 27-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갈릴리인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기도 했지만, 마가복음에서 예수님 공생애의 중심지가 갈릴리였기 때문에 다시 갈릴리가 지목됩니다. 예수님의 사건 이전과 부활 이후의 사역은 갈릴리라는 지역을 통해 연결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십자가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고 이어져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8절에 보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 성경의 9절 각주에도 적혀있지만, 본래 초기의 마가복음은 여기에서 끝납니다.

만약 마가복음이 16장 8절에서 끝나버린다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 빈무덤 사건은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은 채 끝맺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마가복음에 나타난 빈무덤 사건은 부활 자체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재림하실 예수님을 전할 목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빈무덤 사건은 부활 이후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16장 7절에서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8절에는 그녀들이 ‘그 누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아무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빈무덤의 목격자들, 어쩌면 부활의 징조를 만난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이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말한다’는 전도와 같은 복음 전파에 국한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어떤 삶도 행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본문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부활이라는 사건을 보고 믿는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은 지금 우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말씀에 따르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끝납니다.

그렇기에 참된 부활의 증인은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침묵하며 행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 빈무덤 앞에 선 순간이며, 그 무덤에서 천사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에 추가된 이야기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이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전합니다. 그 이야기가 전달된 후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는 단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다는 말씀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고, 그 기억을 전했다고 봐야 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자체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전, 예수님 공생애 기간에 전해주셨던 말씀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듭니다. 부활하셔서 기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끝나지 않고 우리를 통해 이어짐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가르치려 하셨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셨는지를 떠올리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말씀대로 행할 때,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부활절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시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만약 여전히 삶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예수님 말씀하셨던 대로 따르며 행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 앞에 나타나실 줄 믿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깨우쳐주시고,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삶에 힘을 주시며, 평안과 위로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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