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메이카 킨케이드(Jamaica Kincaid) ⓒGetty Image

부유한 네덜란드 은행가이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조지 클리포드 3세(George Clifford III)는 정원과 식물학에 깊은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세계 도처에서 식물을 수집하여 큰 규모의 유리온실을 지은 것으로 유명한데,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é)는 클리포드의 후원으로 그의 정원에서 3년간 연구 활동을 하며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초판, 1735)’, ‘식물의 기초(Fundamenta botanica, 1736)’, ‘식물의 속(Genera plantarum, 1737)’, ‘클리포드의 정원(Hortus Cliffortianus, 1737)’ 등의 책을 집필하였고, 오늘날 식물학의 시조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클리포드가 수많은 식물을 수집하여 린네가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식민지의 어두운 역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원과 정복의 관계를 깊이 연구한 반식민주의 정원 작가 자메이카 킨케이드(Jamaica Kincaid)는 이런 의미에서 식물학과 노예제의 역사는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린네의 연구에 대한 클리포드의 공헌의 이면에는 토착민들의 강제 이주나 대규모 상업적 농업으로 인한 토착 생태계의 파괴라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킨케이드는 “우리 앞에 있는 좋은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대가를 치른 결과일지도 모른다(My Garden, 2001)”고 말한다.

우리의 앎이 점점 더 많은 복잡성 안으로 얽혀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난다. 예를 들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우리가 새로운 개념에 노출될수록 그동안 익숙하던 것들이 어색해지거나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이국적 식물들이 가득 자라고 있는 식물원을 킨케이드가 오로지 식물학적으로만 감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에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는 공해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생태위기 현실을 일상으로 직면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환경문제는 삶의 미시적인 영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지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거대한 수준에까지 걸쳐져 있다. 방사성 물질이나 유해화학물질과 같은 비가시적인 위험에서부터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시스템 규모의 위험까지, 위험의 범위는 이미 우리의 인식 범위와 통제 가능성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알면 알수록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는 그 순간부터, 세 끼 식사를 하고 소비를 하며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탄소와 폐기물을 배출하는 매 순간, 우리는 환경적 부정의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성스러운 예배당에 들어가는 거룩한 예식을 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이다. 거룩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물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비자발적인 희생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쾌적한 온도와 잔잔한 조명, 감동적인 음악을 증폭시키는 음향 기기들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웅장한 건물을 짓기 위해 사용된 건축 자제들은 어떻게 채굴되고 여러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유통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것들의 수명과 폐기 과정은 어떠한가? 우리의 성스러운 시간이 우리만의 감동으로 끝날 때 우리는 자칫 이 시간과 공간의 외부에 있는 다양한 희생과 고통에 대한 폭력적 가해자가 될 수도 있으며, 우리의 성스러운 예식이 폭력과 야만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식물원에서 노예제의 폭력을 발견하는 킨케이드에게는 동의하지만 개인의 일상과 종교적 실천을 이런 식으로 엮는 것은 불편하고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불편함에 대한 민감성이 내가 살고 있는 가정과 지역과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환경문제는 단지 공해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 미래세대, 비인간 존재, 보건, 복지, 빈곤 등 여러 영역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적어도 교회가 자신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생태학적 의미를 성찰해보고 여기서 발견하는 불편함을 바르게 직면할 때 생태적 전환의 첫걸음이 시작될 수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사회 여러 영역들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 시작될 수 있다.

교회를 대상으로 생태 관련 강의를 하면 불편해하는 분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신체적 불편함에 대한 반감보다 심리적, 사상적, 신앙적 불편함에서 생기는 반감을 다루기는 더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덮어두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욱 표면화하고 적극적으로 직면하여, 생태위기 시대의 신앙적 실천의 차원으로 한 단계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불편함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

김신영 목사(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연구소 부소장)  ecom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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