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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기이해“하나님께로 향하기 위해”(에베소서 2:11-18)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4.13 15:39
▲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워진 자기이해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교회일 수 없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지난 한 주간 우리 각자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일들,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미래의 걱정 등이 그림자처럼 매일, 매순간 따라 붙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괴로운 일들이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평안이 내 안에 있음을 알고, 누리겠노라 성령님께 요청하면, 괴로운 일들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웃어넘긴다는 건, ‘아, 내가 이걸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하시고, 다른 마음으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심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중에 두 분의 목사님과 화상으로 비대면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의 첫 질문은 “당신에게 영성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공통적인 대답으로 ‘내가 누구인지, 나의 참 정체성을 아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가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 나왔습니다.

몇 번 뵙고, 존경하게 된 ‘마샤’라는 분이 계신데요. 이 분이 ‘나의 참 정체성’과 관련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가슴은 사랑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요. 당신이 저 밤하늘이나 별들을 볼 때 아니면 일출이나 석양을 볼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보는 거에요. 당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전체 우주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당신 안에 있어요. 그것이 당신이라는 존재에요. 당신은 빛나고 광채나는 모든 것들의 일부에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죠.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 마세요.”

신앙을 갖게 되면서 ‘하나님의 자녀’ 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데요. 더 깊게 정체성에 대해 표현한다면 방금 들려드린 마샤님처럼 표현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삶은 분명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에서 배운 기준과 경험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판단했다면 하나님을 알고 난 이후에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내가 누구인지를 달리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방향성과 목적 모든 것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18-19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이런 과정 속에서 주시는 힘과 은혜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알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주셨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됩니다. 신비이고,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19)

이런 새로운 정체성과 목적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알기 전의 삶과 알고 난 이후의 삶을 구분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12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본문에서 인상 깊은 구절은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라는 관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소망이 없나요? 사람들이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의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없이 가졌던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니라는 표현입니다. 소망은 다른 표현으로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직업으로 대답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꿈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현실을 깨닫고 ‘꿈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소망은 변하거나 없어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이가 70이 되고, 80이 되고, 90이 되고, 100살이 되어도 변할 수 없는 소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이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13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완전히 달라진 삶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당시 사회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화해를 한다? 유대인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았던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화해를 한다? 서로 반목하며 원수 같이 지냈던 이들이 하나가 된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이 이루어졌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 이방인 모두에게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서로 이해하며 같은 목표를 갖게 하심으로 19절 말씀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뿐인가요 예수님이 먼저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시고, 보여주심으로서 새로운 목표,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18절 말씀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타인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시고, 하나님께로 향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향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타인과 평화를 이루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변화된 정체성과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칼 노락의 <키아바의 미소>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에스키모 소년 키아바의 관점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변화된 정체성과 소망을 가지고 살 때 우리 삶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잘 이야기 해주는 내용입니다.

키아바가 낚시를 하러 갑니다.
“얘야, 오늘은 네 새끼손가락보다 굵은 물고기를 잡도록 해라.”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키아바는 얼음에 구멍을 내고 낚싯줄을 드리웠어요.
아무 것도 물지 않습니다.
키아바는 멀리서 춤을 추고 있는 바다코끼리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사냥을 갔더라면 이보다는 운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줄이 팽팽해집니다. 키아바는 줄을 당기고, 또 당겼습니다.
손가락 스무 개를 합한 것만큼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차가운 물속에서 나왔습니다.
키아바는 우쭐해졌어요.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방금 잡은 물고기가 키아바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거예요.
키아바는 아빠를 만나러 갑니다.
‘내가 이 물고기를 잘게 잘라서 먹으려고 하는데, 이 물고기는 어떻게 나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지?’
키아바의 귓가에 따뜻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키아바는 귀를 기울였어요. 물고기가 아주 다정하게 웃고 있었어요.
“이제 그만!”
어린 낚시꾼은 참을 수가 없었어요.
키아바는 돌아서서 얼음 구멍 쪽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물속에 던지며 소리쳤어요.
“나는 미소 짓는 물고기는 절대 먹을 수가 없어!”
잠시 뒤, 키아바는 자신이 한 일을 뉘우쳤어요.
‘곧 아빠가 오실 텐데 뭐라고 말을 하지?’
“저런, 오늘 잡은 물고기는 너무 작아서 입 속에 감추었니?”
아빠가 놀려대며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키아바는 미소 짓는 물고기 이야기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키아바는 뾰로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굉장히 큰 곰 한 마리가 나타나서 길을 막았거든요.
키아바의 아빠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겁을 주어 곰을 쫓으려고 하셨어요.
아빠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곰도 점점 더 사납게 으르렁거렸습니다.
키아바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키아바는 곰에게 다가가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곰은 머리를 숙여 키아바와 키를 맞추었습니다.
곰은 놀랐어요. 이런 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히 인간이, 더구나 화가 나 있는 곰에게 미소를 짓다니.
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더니, 킁킁거리며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아빠는 마을에 닿자마자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내 아들은 뛰어난 낚시꾼은 아니지만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예요. 키아바가 마법으로 곰을 쫓았답니다!”
키아바는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키아바는 기분이 좋았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세요. 저는 오늘 미소 지은 것밖엔 한 일이 없는 걸요.”
다음날, 먼 곳에서 온 사냥꾼들이 두려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폭풍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음집을 두껍게 쌓아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키아바는 돕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이 있었거든요.
키아바는 마을을 떠나 폭풍을 만나러 갔습니다.
불어오는 폭풍을 보았을 때, 키아바는 무서워서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러나 곧 두 발로 버티고 서서 폭풍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 같은 어린애의 미소가 나를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폭풍이 고함을 쳤습니다.
“안 된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요. 그래도 노력은 해 볼 수 있잖아요?”
키아바가 대답했어요.
너무나 대담한 그 말에, 폭풍은 어이가 없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격렬하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키아바는 뛰어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폭풍이 웃고 있는 동안은 바람을 불게 하는 걸 잊어버릴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키아바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마을은 안전했어요.
키아바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책에서 키아바의 아버지가 말 한 마법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처럼 벽을 허물고, 원수와 화해하고 또는 원수들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은 내 안의 평화를 이루고, 이웃과의 평화를 이루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변화된 정체성으로,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시기를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경험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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