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rles Foster, 「Moses and the Burning Bush」 (1897) ⓒWikimediaCommons

지난주는 여러모로 힘든 한 주였습니다. 사회가 한걸음 전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했습니다.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정의롭지 않은 세력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 사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반성하지 않거나 잘못 반성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빌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비교적 평화롭게 머물던 이집트에서 정세 변화와 함께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강제 노역은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강화되었고, 이스라엘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호소했고, 하늘에 닿은 그 소리는 하나님을 움직였습니다. 행동을 시작한 하나님이 그의 산에서 모세를 만났습니다.

모세는 벌써 40년전 일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이 강제노역 당하는 것에 나름대로 반기를 들었다가 광야로 도망온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이주시키려는 자신의 계획을 모세에게 알려주고 모세를 그 계획의 실행자로 초청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때의 패기를 다 잃어버린 사람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선뜻 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가려고 하십니다. 억압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이 약속은 참으로 매력적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약속하시는 분이 자신들의 조상들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르는 하나님임을 안다면 그들은 안도하고 희망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해방과정은 예상과 달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반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대로 이스라엘을 내보내는 대신 노동조건을 한층 가혹하게 만듭니다. 모세도 이스라엘도 크게 실망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하고 더 이상 모세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합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성서는 모세와 파라오의 대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 이후 이스라엘의 반응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모세와 대결하는 동안 그가 그의 정책을 수정하거나 포기한 적은 없으니 이스라엘의 상황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기적의 진행과 함께 절망의 깊이도 깊어져 갔을 것 같습니다. 기적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의 태도가 누그러지거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출애굽 하던 날의 이스라엘을 보면 이스라엘은 그 날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쫓아낼 때 비로소 그들은 서둘러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은 떠날 채비도 하나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겪었던 절망의 깊이는 깊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파라오를 돌이켜 세우지 못했던 것처럼, 파라오의 강압적 정치는 이스라엘을 원망에서 돌아서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약속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재앙 때문에 이스라엘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절망으로부터 끌어내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나 이스라엘의 평화적 이집트 탈출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원망하고 망각할 수 있습니다.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상황에 맡겨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에도 우리를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이끌어내시기 위해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알지는 못해도 그의 일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신 이는 그를 신뢰하고 섬기는 이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그들을 믿고 그들을 인도하고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러한 하나님으로 똑같이 오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절망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그들을 절망으로부터 이끌어내 희망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절망케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떼낼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 어떤 위험도 그 어떤 세력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내고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릴 수 없습니다(롬 8,35-39).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고 희망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했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그 상태에 계속 두지 않으셨습니다. 여인들의 힘을 빌어 그들을 예수의 빈무덤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고, 이는 그가 전에 말했던 것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한 절망 때문에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그들에게 그 희망의 말을 기억하게 하고 갈릴리로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에게 약속의 땅과 같습니다. 그곳은 과거의 땅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과거 조상들이 살던 땅이 아니라 미래의 땅이었던 것처럼, 갈릴리는 그들의 출발지이만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는 땅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땅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사람들이 절망을 넘어 미래를 향하게 하십니다. 도중에 불안이나 좌절이 있을지라도 그 미래를 향한 행진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을 지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그 때에는 맹인이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저는 사람이어도 말 못하는 사람이어도 모두 회복의 기쁨에 춤출 것입니다. 슬픔과 탄식이 끝날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의 차별과 혐오가 없을 것입니다. 배재와 폭력은 힘을 잃을 것입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은 과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들어가시는 미래입니다.

불의한 힘이 아무리 강해도 그 미래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힘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미래를 오늘 우리가 살아갑시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펼쳐가시는 오늘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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