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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느덧 7년이 흘렀다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4.15 20:38
ⓒ4.16재단

아침 시간은 분주하다. 전날 늦도록 공부하느라 환하게 불을 켜놓았던 큰아이는 긴 머리를 감느라 제일 바쁘다.

“아빠, 이건 무슨 국이야?” 아들이 아침을 차리려 주방에서 서두르는 중인 아빠에게 묻는다.
“된장국!” 짧은 답변을 듣고, 다시 아들이 말한다. “이게 된장국이라고?”
“왜? 된장 넣어 끓이면, 그게 된장국이지 뭐야.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찾아서 같이 넣고, 대충 끓이면 되지. 별거 있어?”

남편의 조리 설명이 가만 누워있고 싶었던 나를 기어이 일으킨다.

“야, 너희 아빠가 그런 정신으로 도전하니까, 음식을 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음식이 발전이 없는 거야.”

식구들은 한바탕 웃고, 보기와 달리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는 국에 말아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각 자의 할 일을 위하여 흩어졌다. 나도 잠시 후 있을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야 하니,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하던 정신을 가다듬는다. 열 시부터 시작될 두 시간의 수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막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나, 자동차 사고가 났다.” 친정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다. “신호대기 중인데, 뒤차가 갑자기 들이받았어. 어떻게 해야 되지?”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자동차 보험회사도 연락하라고 말씀드렸다. 전화번호를 모르실 것 같아서 검색을 하여 문자메시지로 보험사 연락처를 남겼다. 엄마는 당황하기는 했으나, 비교적 차분하였다.

“경찰이 사고 접수할 거냐고 물어보네. 어떻게 하지?” 대답도 전에 통화 도중 갑작스럽게 현장 출동한 경찰과 통화를 하였다. 뒤차의 일방적인 과실이 확실하고 사고접수 없이 보험사 처리만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현장의 상황에 대하여 직접 확인,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출동까지 하였으니 사고접수를 요청했다.

이후에도 어머니와 통화를 몇 번하며, 경과를 확인하였다.  심장이 쪼이고, 울렁거려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구급차가 왔으나 처리를 하고 병원을 가겠다고 보냈단다. 그래도 어쨌거나 일단 아프면 병원부터 가시라고 했다. 가벼운 정도의 접촉사고 정도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고에 당황하였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떻게 할지를 계속 묻는 것에 어른이 그 정도 처리와 판단이 어려우실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아침부터 계속하여 바빴다. 두 시간의 오전 온라인 강의도 끝났고, 금새 아이들의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며칠이 흐르는 사이,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었다. 후미추돌로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가까스로 추스르고 나와 통화를 하였단다. 내가 알려준 보험사 번호로 전화하였지만 계속한 ARS로는 혼미한 의식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단다. 동생에게 울며 엄마는 다시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더라는 어른들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다. 참으로 죄송하였다. 사고 접수마저도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 경찰의 이야기도 떠올라 화가 났다. 게다가 내가 가벼이 생각한 결정적 근거였으니 말이다. 차량은 폐차를 하게 되었고, 계속하여 발현되는 증상들에 대한 추적관찰을 진행하여 치료를 계획하며 처치 중이다. 대처할 경황도 없는 일방적인 사고로 별안간에 더욱 곤혹한 경험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이하게 되는 유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일반적으로야 행운의 숫자라며 7을 반긴다지만, 이건 아니다. 큰 한 숨부터 절로 난다. 사실, 애처로운 죽음을 이데올로기화하여 애도하는 것마저 불편해 하기도 했다. 여전히 많은 교회에서조차 언급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가?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질타와 비난을 하기도 한다. 사실, 노란리본을 다는 나조차도 무뎌지는 것 같다. 내 일로 공유되지 못 하는데, 어찌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니, 더불어 공생한다 것은 어쩌면 요원할 뿐이다. 때마침 부활절 후 둘째 주, 성서일과의 말씀은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사도행전4:33~43)’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15:4-5)’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사도들이 전한 주 예수의 부활 증언을 들었다. 그 무리는 은혜를 받아 말씀을 회복하였다. 바로, 희년정신을 기억하고 실천한 것이다. 기꺼이 집과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았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함께한 이들. 그 가운데 아프고, 연약하여 힘없고, 소외되는 ‘가난한 자’들이 없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우리가 아니라 공감할 이타적 우리로 차원이 더욱 넓어지길 바란다. 부활절을 지난 지금 우리는 기억 공동체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한다. 증인으로서의 책임 있는 삶! 홀로 힘겨운 이들의 가족, 모두의 ‘우리!’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나는 침묵했다. habe ich geschwiegen;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ich war ja kein Kommunist.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나는 침묵했다.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나는 침묵했다. habe ich geschwiegen;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Als sie mich holten,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gab es keinen mehr,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der protestieren konnte.

- 독일 신학자이자 목사인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의 연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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