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연회 포스터 ⓒ서총명

사경회가 끝나고 나는 친구들과 강연을 준비했다.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강연은 열기도 전에 저지될게 뻔하니 경계를 넓히는 일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담론을 학교 안에서 생성해 낼 수 있다면 여러 목소리가 울리게 될 것이고 우리의 신학은 이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한국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소수자, 한국교회, 페미니즘, 토지, 역사)을 조명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우리는 그 이름을 ‘불장난’이라고 정했다.

“우리의 작은 불장난이 장신대에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져나길 바라며 화두를 던진다”라는 슬로건으로 강연준비를 시작했고 절차를 밟아 학교에 승인도 받았다. 주제 선정과 강사 섭외는 외부 공격이 들어와도 문제없을 정도로 고민 또 고민해서 구성했고 내부적으로는 6개월 전에 강연이 취소당하는 경험이 있기에 최악을 맛 봤던 자들로서의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에게 가할 수 있는 위협은 ‘강연 취소’ 이 이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강연 취소’와 ‘사경회’가 우리에게는 좋은 경험이 된 것이다. 물론 위축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공통의 경험을 한 우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에 현실감각까지 조금 더해져서 이제 활동할 만한 사람들로 변해있었다. 이것도 ‘성장’일까?

우리는 성장했다고 느꼈지만 학교는 아마도 ‘어디서 이런 애들이 나왔을까?’ 하고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점점 문제아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을 고백하는 이들이 모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오던 청년들이 어떤 열망에 이끌리어 내부자가 되기 위해 모인 곳인 신학교... 이곳은 기존의 질서에 잘 녹아들고 이 체제를 미래로 삼는 이들의 공간이기에 내부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거나 질서를 흔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애초에 입학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학교에 입학했음에도 이 체제를 위협하는 학생이 되어버린 우리를 향한 시선은 여러 의미로 뜨거웠다.

불장난 프로젝트를 페이스북과 학교 게시판에 홍보하자 반동성애 진영에서 조직적으로 강연을 반대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반대하는 주요 키워드는 ‘종북’과 ‘동성애’ 두 가지였다. 우리가 섭외한 강사들을 종북 인사들로 규정하고 이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 증거로 동성애가 쓰인 것이다. 종북과 동성애의 연결은 마치 원래 한몸인 것처럼 다양한 가짜뉴스들을 생성해냈다. 지난번 ‘강연 취소’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목사’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문 목사들이 학교 게시판을 점령했고 그들은 모교와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려를 쏟아냈다. 신학교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 대한 징계를 학교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 학교 게시판에 게제된 글 ⓒ서총명

밖에서는 극우 & 반동성애 단체들이, 안에서는 동문들이 여론을 만들어 나갔고 일부 학생들이 그들과 발을 맞춰 교내에서 행동했다.

들끓는 비판에도 우리는 강연을 지속해 나갔다. 많게는 50명, 적게는 20명의 학생들이 강연에 참석했다. 장이 없어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던 이들이 배움의 공간이 열리자 관심을 갖고 모인 것이다. 신학이 외면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기획의도에 맞게 조금씩 여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공간을 확보하고 그 여백에 상상하는 이들이 채워지고 학교 내에 다양한 이슈를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학생들이 모였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드러낼 수 없던 이들이 경계를 넘어 한 발짝 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 강연이 불러온 일파만파 ⓒ서총명

2018년 1학기, 다섯 번의 강연을 끝낸 우리는 많이 단단해 졌다고 생각했다. 잘 버텼고 앞으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다음 학기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딛었고 걸음을 이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우리에게 2학기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가까운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 강연회를 마치고 받은 편지 ⓒ서총명

서총명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