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마음“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에스겔 11:14-2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4.20 16:12
▲ James Tissot, 「The Golden Calf 」 (1986-1902)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두려움에 쌓여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첫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평안은 우리가 누려야 할 복 입니다. 평안은 우리의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평안은 우리 안에 이미 주어졌습니다. 주어진 이 평안을 날마다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의 삶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미국의 어떤 사람이 간이 좋지 않아 간이식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 이식을 한 후에 이 분으로부터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는데요.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운동이 하고 싶어지더라는 거에요. 갑자기 농구를 하고 싶어지고, 달리고 싶어지고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실제로 간이식 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자신이 이식 받은 간의 주인이 운동선수였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런 사례들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장기를 내 몸 안에 받아들였을 때 삶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이식 받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이식 받았을까요? 요한복음 14:27의 말씀에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평화를 이식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식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화를 누림으로 언제라도 지금까지 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에스겔서의 말씀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마저 바벨론의 침공에 의해 파멸되었을 때에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되어진 말씀입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고향땅에 남은 자들과 포로로 끌려가게 된 자들로 나뉘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남은 자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15 인자야 예루살렘 주민이 네 형제 곧 네 형제와 친척과 온 이스라엘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자신이 살 던 땅에 있지 못하고 포로로 끌려가 낯선 곳에서 종으로 살아가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남유다 땅에 남은 자들이 지금 있는 땅은 남은 자들의 기업이니 포로로 끌려간 너희들은 그 곳에서나 잘 살라고 선언합니다. 돌아오지 말라는 이야기죠.

어려울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힘들게 하고, 상처주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서로의 삶이 어려워지면 콩 한쪽도 나누어 먹을 것 같이 생각하지만 막상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어려운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자기만은 살아남겠다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고, 사기를 치고, 상처 주는 이들을 우리도 만날 수 있습니다. 또는 우리 자신이 상처 주는 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남유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남아 있는 자들은 제발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들은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죄의 결과로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의 기업에 대해 상속 받을 자격이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는 없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남아 있는 자들, 자기 의에 젖어있고,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선포하십니다. “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은 자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도 때로 누군가를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난 받는 사람들보다 나 자신이 더 의롭다 거나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남과 비교할 것 없이 그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가, 나는 하나님을 위해 잘 살고 있는지만 물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사실 내가 이유가 있어서 보낸 거였어.’라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라고 했다.”

이방인들 속에서 ‘성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포로로 보내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포로로 잡혀온 남유다 백성들의 삶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려고 보내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남은 자들에게 착각하지 말라고 선포하십니다. 너희들이 더 나은 자들이거나 의로운 자들이거나 선한 자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간 이들에게도 말씀하셨는데요. “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지금 남아 있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포로로 끌려가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역으로 선언하십니다. 비난 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이 돌아와 남아 있는 자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돌아오되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알고 보니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이 오히려 우상과 죄 가운데 속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은 마치 포로로 끌려간 이들보다 더 거룩하고 더 믿음 있고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처럼 생각했지만 사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고, 가증한 죄를 범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증한 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보다 다른 무언가를 우선시 하며 사는 삶 그리고 폭력, 물질 숭배, 노동 착취, 성적 문란, 도덕적 타락,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등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모습들을 말합니다.

몇 년 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타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또 애도했습니다. 그래서 대성당이 불에 타자 특별히 프랑스의 유명한 기업들이 서로에게 질세라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부금을 기꺼이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우리 모두가 대성당”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회적 불평등을 호소하고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갑부들이 하루 만에 1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기부하자 이들은 “이것이 바로 불평등한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부호들이 경쟁적으로 기부를 이어가는 행태를 비난했습니다.

돈이 되는 곳, 자신들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곳, 눈에 보여 지는 곳에는 기꺼이 거액의 돈을 투자하는 기업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 입니다. 사람들이 가난과 고통을 호소하며 자신들을 도와줄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더니 건물이 불에 타고 세계인들의 관심이 쏟아지자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거액을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유산이 불에 타고 기부를 하는 것은 좋은 행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가 선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을 때, 이들의 기부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기부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거대 기업들은 온전한 선을 행한 것일까요? 제가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동기가 선이 아니라면 가증한 일을 벌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마음의 동기가 선이 아니라면, 마음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면 선처럼 포장된 그 어떤 좋은 일도 자신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포로로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돌아와 몰아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위선들이었습니다. 이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잠깐 ‘거룩함의 모범’을 보이고, 고향에 돌아와 유다 땅을 거룩한 성소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돌아올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의 마음과 새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한 마음과 새 영을 받고 사는 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5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5절의 말씀입니다.

세례란 장례식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우리 자신이 죽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과 함께 우리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변화가 포로로 끌려갔으나 이제 돌아오게 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로마서 6:10-13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자리 잡은 사람은 죄를 위한 삶, 불의의 연장이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삶, 의의 연장의 삶을 살게 된다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우리 안에 살아날 때에 20절의 말씀과 같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하나님께서 너희들이야 말로 참으로 나의 백성이라고 불러주시는 선언을 듣게 됩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는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마음 안에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그 마음에 부드러운 마음이 있기에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돌을 던진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삶이 우리가 살아야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이런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과 평안이 이미 주어졌기에 기꺼이 이 사랑과 평안이 흘러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앞서 간 이식을 받은 사람이 하지 않았던 운동, 좋아하지 않았던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이식 받았다면 이 마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한계 짓거나 막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선언은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한 삶을 너희들이 살아서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하나님 될 수 있도록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꽃으로서, 그냥 꽃이 아니라 불꽃으로 살아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