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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ubert van Eyck and Jan van Eyck, 「The Adoration of the Mystic Lamb」 (1432) ⓒGetty Images |
이 세상의 역사는 수많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사건들의 내용은 제각각이겠지만, 우리의 감정을 기준으로 구분한다면 그것들은 ‘희·노·애·락·애·오·욕’의 사건들로 구분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들이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지는 않고 슬픈 사건들이 더 많게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슬프고 가장 고통스런 사건은 죽음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죽음을 가리켜 호상(好喪)이라고 해도 그것이 슬픔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억울한 죽음이겠습니까? 역사 속에서 억울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대부분 권력욕과 물욕 때문입니다. 이 욕심이 사람듵을 죽음으로 내몹니다.
욕심은 분노하게 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하고 특히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고 그의 인격을 부정합니다. 욕(慾) 앞에서 생명은 가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과로사와 안전사고사들, 4.3 제주학살 사건과 5.18 항쟁과 세월호 사건 등 가까운 역사에서도 그러한 일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 사건들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들을 우리는 단지 사건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 기억은 화석화되고 그러한 사건들의 재발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그 사건들의 기억이 우리를 정화시키고 우리의 ‘욕’을 제어하는 내적 장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죽음에 대해 특별한 말을 합니다. 죽음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죽음의 횡포 앞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탄식하며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드는 최종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그러한 탄식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답변인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전도서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이나 그에 의존하는 다른 본문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전도서의 말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놀라운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의 하나님으로 모든 민족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잔치를 베푸시고 모든 민족들에게서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슬픔과 한계와 절망의 상징인 수의를 벗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영원히 멸망시키십니다. 죽음의 경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은 그 선언의 넓이와 깊이를 제대로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죽음의 죽음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염려하게 하거나 슬프게 했던 것들이 힘을 잃게 되지 않을까요? 죽음의 죽음을 ‘이미’ 경험한 우리에게 죽음은 더 이상 우리의 한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죽음의 힘을 걷어내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로써 우리를 슬프고 아프게 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주눅들게 하던 수치의 흔적들을 제거하시고 그 한 맺힌 기억으로부터 해방시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억울한 과거에 붙잡혀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어떤 세상일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롭고 넉넉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더 이상 경쟁의 대상이 아니고 나의 희생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잔치를 함께 즐기며 서로 속에 존재하며 서로 기쁨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참으로 소중한 너로 서로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모든 한계와 굴레들을 철폐하신 그곳에서 우리의 ‘욕’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어 자취를 감추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내일입니다. 그 내일은 그저 내일일까요? 그날이 되어야 우리는 바로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은 내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내일은 미래에 속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늘 여기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대로 현실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어서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이 내일의 우리를 오늘 우리가 살게 하십니다. 오늘의 우리와 아주 달라 보이는 내일의 우리는 우리 속에서 작동하며 우리를 그렇게 닮아가게 할 것입니다.
계시록의 본문은 이사야의 본문을 이어서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 양 예수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수치와 조롱 가운데 죽임당한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그의 오른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한과 눈물과 억울함이 남아있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살림과 회복과 새로움의 전형을 예수에게서 보여주셨고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수많은 흰 옷 입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그의 말씀이 실현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이 이렇게 이어지면서 그의 계획이 성취의 순간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 전개는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줍니다. 우리의 역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슬픔과 고통의 사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움과 회복의 생명 사건으로 변형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건들 속에 계시고 함께 고통당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의 죽음을 선포하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이끌어내시고 그들의 한과 눈물을 씻어낼 것입니다.
그 사건들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 사건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우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눈물과 한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새하늘과 새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한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께 희망을 두십시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에게서 불의를 이기는 힘을 얻으십시오. 그 하나님을 따름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사랑으로 자기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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