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현민 열사의 29주기 추모식이 열사가 재학했던 숭실대 교정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소수의 인원이 참석해 진행되었다. ⓒ정리연

눈을 두는 곳마다 다양한 꽃들과 초록빛 생명이 반짝이는 요즘이다. 이토록 찬란한 계절을 마주하고 있는 4월의 또 다른 모습은 잔인함 아닐까!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고 민중의 넋이 되어버린 고 박현민 열사의 가족과 동지들에게는 더더욱!

지난 24일 오전 11시 신동완(숭실대 기독학생회 동문회 회장) 님의 진행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다같이 합창함으로 고 박현민 열사 추모식이 숭실대 교정에서 시작되었다. 박현민 열사의 유족과 동문, 숭실대 영문과 학생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은 진행되었다. 나지막이 울리는 노랫소리와 잔잔히 부는 바람이 어우러져 참 세상 자유를 꿈꾸던 박현민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들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이어 김주민(KSCF) 학생의 박현민 열사 소개가 있었다.

“1967년 8월에 출생한 박현민 열사는 1986년 3월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시 교문 앞, 선두에 서서 시위하다가 전경에 의해 화염병이 터져 머리카락부터 오른쪽으로 온몸에 불이 붙어 3도 화상을 입었고 목숨은 건졌지만, 몸 여러 곳에 훈장처럼 흉터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해지고 잠을 못 이루며 협심증을 앓았습니다. 그 후, 입대하였으나 고열과 흉통으로 큰 병을 얻어 의가사 제대하였고, 복학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군 복무 사이에 제적 처리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박현민 열사는 성치 않은 몸으로 1991년 숭실대 미등록 제적생 700여 명을 위해 복적대책위원장으로서 추운 날씨에 천막농성을 계속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1992년 3월 23일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으나 40여 일의 투병 끝에 4월 28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러한 투쟁과 헌신이 있었기에 1993년 국가는 대학 재입학 특례조치를 하였고 긴 세월 운동권 제적생들에게 문을 열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 고 박현민 열사가 재학했던 숭실대 영문학과 학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정리연

다음으로 추모사 순서가 있었다.

“박현민 열사 투쟁의 결과로 많은 학생이 복적을 할 수 있었다. 학생이 학교 구성원으로서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끔 단초를 만들었다.” 
-김윤수 박래전열사기념사업회장

“당시의 미등록 제적이라는 것은 학교와 학생을 규제하려고 했던 전두환 체제가 만들어낸 낡은 학사제도였다. 박현민 열사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부활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규제하려는 모든 제도를 없애려는 노력은 계속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박현민 열사의 부활일 것이다.”
-배건욱 숭실 민주동문회장

“1987년 6월 이 땅의 민주주의에, 숭실대학교의 학교 민주화에,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KSCF 민주화에 열과 성을 다하셨던 박현민 열사를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기억합니다. 열사께서 간절하게 외쳤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미얀마 학생들의 투쟁을 통해서 전 세계가 절절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박현민 열사의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삶을 기억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미얀마의 어느 거리에서 싸우고 계실 박현민 열사를 기억합니다.”
-도방주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숭실대를 자랑으로 삼고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한신대에 진학하여 목사의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사정권 말기 대학생들은 독재정권 타도, 민주 정부를 구호로 최루탄 속에서 시위가 연속되었습니다. 박현민 열사는 학생들의 권리를 위해, 미등록 제적생들을 위해, 나아가 학원 민주화를 위해 항상 누구보다 더 노력하신 분입니다. 추운 밤, 밤을 지새우며 몸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신 분입니다.”
-최준호 숭실대영문과학생회장

▲ 고 박현민 열사의 어머니 전병임 님께서 유족을 대표해 인사를 전하고 있다. ⓒ정리연

또한 숭실대학교 영문과 학생들의 유고 시(『나는 출입금지 구역에 누워있었다』 중에서) 낭독 후 유족 대표로 전병임(박현민 열사의 모친) 님의 인사가 있었다.

여전히 잊지 않고 자리를 마련해 준 동지들과 후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동행(同行)이라는 글로 어머니로서의 한을 대신했다.

“(중략)
우리는 하얀 소복을 입고
죽은 자식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시위대 맨 앞에 걸어갔다
울면서 소리치면서
흘러내리는 치맛자락 움켜쥐며
내 아들 영정사진 깨질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서럽고 아프고 억울하고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모두 다 박현민이게 하소서> 추모시를 함께 낭독, 헌화 후 추모식을 마무리 되었다.

봄 하늘 사이로 현민이가 보이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모두 현민이 같고 이름을 부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6월 항쟁에서 자식이 온몸에 화상을 입어 입원 중이었을 때, 언론에 알려지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될까 봐 쉬쉬하며 견디던 날들, 시위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투쟁하던 자식을 바라보고 서대문과 마포 경찰서로 잡혀갔을 때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자식의 모든 물건을 버리고 태우던 절절하고 가슴 졸이던 순간들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그러나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면서 그가 이루어내려 했던 것을, 이 땅의 민주화와 학원 자주를 위해 밤낮으로 몸을 아끼지 않으며 투쟁했던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29년이 지났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에 뜨겁게 남아있는 박현민 열사의 열정을 벗 삼아 우리의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다음은 박현민 열사가 1991년 8월 21일 썼던 일기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고 박현민 열사의 시집 ⓒ정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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