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활 칼럼
나는 ‘死母’(사모)다!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4.30 15:57
▲ 한국교회는 유독 목사의 아내, 즉 사모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강요하고 있다. ⓒGetty Image

“목사님은 목회영역에서 잘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얼마 전 한 교회의 담임목사 청빙에 지원하여 면접을 다녀왔다. 목사의 직임은 남편이 감당하는 것이다. 왜 그 부인이 동반하는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상한 일에 삐딱하게 물음표를 던진다.

소식을 접한 교인들은 응원과 격려를 해 주었다.
“우리 사모님은 만점짜리지, 명품이야. 명품!”
“권사님들 추천서라도 가슴에 떡하니 붙이고 갈까 봐요.”
서로 소리 내어 웃었다.
“사모님은 그런 것도 필요 없고, 평소처럼 생글생글 웃기만 해도 되요. 잘하시고 오세요.”

그랬다.
남편 옆에 앉은 나는 공손한 모양새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사모소개서를 서류제출 하는 것에 더불어 관상도 보는구나.’
가지런히 모은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곧추세운 등을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팔짱을 끼었다. 내 머릿속에서 말이다.

남편의 대답이 끝났다.
마뜩잖은 불편함을 감추어 한번 방긋 웃었다.
이쯤 되면 사모라 불러주는 ‘가스라이팅(Gaslight Effect)’이다.
요사이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하여 그 사람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심리학 용어다. 1938년 영국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되었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인기를 얻었다.

“집안이 왜 이렇게 어둡죠?”
“그렇지 않아. 당신이 착각한 거야”
재산을 탐하여 정체를 숨긴 채 결혼한 남편(샤를르 보와이에)은 가스등 불빛을 조작하는 등 교묘하게 상황을 조작하여 아내를 조종한다. 멀쩡하던 아내는 결국, 정신적인 학대를 받아 정신병자가 되기에 이른다.

강요된 정체성을 거부한다

나는 목사의 아내에 대하여 부르는 그 말도 달갑지 않다. 사모가 직분도 지위도 아닐 뿐더러 남편에 대하여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라니! 많은 여성 교인이 여주댁, 춘천댁, 서진엄마, 동주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하지만, 목사의 아내는 반대다. 그런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나는 여권에도 ‘wife of ~’로 표기된 것을 정정하였다. 그나마도 목사로서의 존경을 담은 것이라기보다는 관례상 부르는 말이니 말이다.

심사 중인 분들은 장로님들과 남선교회장, 여선교회장이라고 소개받았다. 유일한 여성위원이었던 한 성도님은 끝내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다. 성별분업 구조는 여전하여 여성 권사님들이 간단한 다과 준비와 안내를 맡고 계셨다. 집에서도 시켜먹어, 하지도 않는 밥을 교회에서 해야 한다니 젊은 여자 성도들이 오겠는가?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권력의 불균형은 오늘날 교회에서 나타나는 상당한 문제들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직 가운데 가장 많은 성폭력, 공금횡령, 목회세습...

“교육에 관하여는 저보다 제 아내가 더욱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딴 생각 중에 화들짝 놀랐다. 남편에게 향하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담임자로서 목사는 다양한 분야의 제너럴리스트라면, 부담임자로서의 목회는 맡겨진 특정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목사의 아내로서 함께 하며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일, 가정 양립도 아닌 일, 가정, 교회의 삼립 균형을 이루어야만 했다. 실로 다양한 일들을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감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사모라는 만들어진 틀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겸손의 미덕을 지닌, 교회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부목사의 ‘부’는 ‘不’라 조소하였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나는 오히려 사모의 ‘사’는 ‘死’라 하겠다. 목사 부인으로서 교회에서 요청되는 삶은 부수적 존재, 옵션기능 정도이다. 개척 교회라도 시작하려면 교인들의 점심식사 정도는 혼자서 거뜬히 준비해야 한단다. 최후의 만찬상은 누가 준비했냐는 아이의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교회 안에 만들어진 모성신화를 깨부수는 역할에 앞장서야겠다는 각오로 이어진다. 그래도 일단은 담임목사의 아내가 되고 볼 일인가? 목사의 부인이 무엇을 잘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그분들에게 성실히 답변하였다.

대면 예배를 꿋꿋하게 지켜오셨다는 자긍으로 시작된 다음 질문은 정치적 사상의 검증이었다. 정권에 대한 성토와 광화문집회 참여로 진리와 자유 수호에 최선을 다하신다는 그 분에게 어떠한 답변을 해야만 정답이 될런지는 정해진 것이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스도인 그리고 시민으로서 어떤 입장을 지녀야 할런지 남편은 비교적 균형감을 가지고 그러나 소신껏 답했다.

긴장감을 느낄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그러니 내 남편이라지, 잘 했다!’

시간을 꽉 채워 끝난 면접 이후 모두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남편 옆에 서 있던 여성인 나에게 악수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은 없었다. 내가 손을 내밀기가 무섭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신다.

“여보, 다른 사모님도 가만히 앉아 예쁘게 웃다가 가겠지?”
“그나마 당신은 내가 답변하도록 넘겨주어서 말할 기회를 얻은 것이지.”
“아량이라도 베풀어 준 것처럼 들려. 기분 나빠.”

목사 아내에게 한 마디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들, 비혼주의자 목사는 담임목사가 될 수나 있겠는가? 그런 실정에서 부모와 두 자녀라는 표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품을 수나 있느냔 말이다. 정상과 비정상인 것을 나누는 것에 배제와 혐오, 차별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마침, 각 교단에서는 지방회, 연회 등으로 이름 하는 회의들도 개최되었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다시금 교회에 질문한다. 교회 안에 절반이 넘는 다수의 여성 성도를 대표하여 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 모두를 차별 없이 포함하는 교회.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지기를 소망한다.

참, 앞서 언급한 영화 <가스등>에서 아내,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는 저택 바깥에서 가스등 불빛이 희미해지는 것을 목격한 형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레고리(샤를 보와이에)의 악행을 밝혀내고 마침내 자유를 되찾는다.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설사, 누군가의 인정이 없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死母’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사모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