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주되심 ⓒGetty Image

개혁교회의 개혁자들은 신앙의 본질을 루터파와 달리 단순히 신뢰(fiducia)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파악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동일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복종을 마찬가지로 우선적이고 중요한 사실로서 신앙과 함께 고려했다. 그러므로 신앙과 선한 행위가 서로 양립할 수 있는가, 또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는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논쟁은 개혁교회에서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1)

선한 행위의 근원이 되는 신앙

칼빈은 「제네바 신앙문답서」에서 대담하게 “우리가 선한 행위를 하지 않고서도 의롭다는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고, 그것은“불가능하다”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그대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그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살게 하셨다.” 따라서 칼빈에게 신앙은 선한 행위의 근원이 되고, “복음의 교리는 신앙과 회개의 두 가지 사항에 포함되어 있다.”(2) 물론, 그는 신앙의 의와 회개의 선한 행위를 확실히 구별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그는 정확한 일치 속에서 그 둘을 서로 관련시킨다. 그것은 신앙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성령이 또한 회개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령은 ‘조명’과 ‘거듭남’의 영,(3) 따라서 의인과 성화의 영이며, 그 안에서 둘을 하나가 되게 하는 ‘세 번째 요인’이다. 우리 안에서 그것들은 언제나 둘이지만, 그러나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있을 수가 없다. 회개를 대신할 신앙도 없고, 신앙을 대신할 회개도 없다.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이신 분이 또한 복종의 대상이기 때문이다.(4)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우리의 믿음에 뒤따르는 성화를 신앙에 대해 말했던 것과 같이 창조적이고 본래적인 방식으로 가리킨다. 우리 가운데서 선한 활동을 시작하시고 계속 일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에 영광과 찬송을 돌리도록” 우리의 성화를 완성하실 것이다.(5) 그러므로 개혁교회 신학에서 바울의 신앙에 의한 의인의 교리(롬 3:27)와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약 2:26)는 야고보의 경고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의인은 성화의 기초이고, 성화는 의인의 목표이다. 바로 이것이 개혁교회의 일치된 견해이다. “공허하고 나태한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있고 활발한 믿음”이 문제되는 것이다. 「제2 헬베틱 신앙고백서」는 신앙과 선한 행위에 대하여 말하는 제16장에서 이러한 경향의 논지를 탁월하게 전개하고 있다.(6)

그러므로 개혁교회에서 신앙은, 루터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것처럼, 그 곁에 그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는 어떤 신적인 것이 아니다. 신앙은 언제나 다른 행동과 나란히 있다. 믿는 일과 나란히 복종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이 있다.(7) 칼빈주의적 신앙은 그 자체를 넘어 다른 것에로 이르는데, 곧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을 향하고, 삶, 세상, 동료 인간에게 이르러서 그것은 복종이 된다. 이것은 「프랑스 신앙고백서」 제22조에서 말하고 있는 그러한 의미이다. “이 믿음은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우리를 방해하거나 혹은 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안에서 모든 선한 일을 낳게 한다.”(8) 이와 같이 개혁교회 신학에서 신앙과 복종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접근에서 루터파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복음과 율법

루터는 율법을 일반적으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의 목록에 율법은 죄, 죽음, 그리고 악마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칼빈은 율법을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타락한 창조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데 방편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고려한다.(9) 칼빈에게 율법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도약대이다. 그는 율법의 폐지를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규정들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율법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섬김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10)

따라서 우리가 율법을 완수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율법이 그러한 완성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목표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목표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한, 우리는 용서를 받는다.(11)

칼빈은 「제네바 신앙문답서」에서 율법을 신자들이 주님을 두려워하도록 붙들어 두기 위한 “고삐”, “의의 완전한 기준” 등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은 복종 이외의 희생은 요구하시지 않는다고 했다.(12) 이것은 이른바 칼빈주의적 ‘율법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율법주의는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는 여김을 받는 것, 즉 루터가 ‘율법의 의’로 배척했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그것 때문에 칼빈과 개혁교회 신학을 비난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자신이 칼빈 신학의 변증법적 성격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칼빈은 인간이 해야 할 것에 관하여 질문하는데, 그는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에 이 질문에 도달했던 것이다. 복음을 주신 분이 또한 율법을 주셨다! 그러므로 복음이 믿음 안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율법은 의지를 위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교 윤리는 루터가 시도했던 것처럼 신앙 위에 직접적으로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위에 확립된다. 율법은 복음 자체가 신앙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복종을 확립하지 못한다. 오히려 복종과 신앙 양쪽 모두 다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확립되고, 복음이 저기서 방향을 정하게 하는 것처럼 율법은 여기서 방향을 정하게 한다.(1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은혜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의 근거가 되며, 일종의 메아리와 같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 신자는 단순히 복종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행위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따른다. 이 접근은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 질문 1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살든지 죽든지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육체와 영혼을 갖고 있는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복음의 명료한 진술만이 아니라 또한 그것의 윤리적 결론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성령에 의해서 그는 또한 영생을 나에게 보장해 주시고, 나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전심전력으로 기꺼이 그를 위해서 살게 하신다.”(14)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에서 십계명이 제3부 “감사의 생활”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은 결코 임의적인 배열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확실성과 복종의 삶의 통일성을 그것들의 원천인 성령 안에서 파악해 내는 개혁교회 특유의 신학적 관심을 드러내준다.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주되심

츠빙글리와 칼빈 등 개혁교회의 개혁자들은 중세 후기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교 설교의 주제를 왜곡하고 인간, 곧 인간의 역사와 전통, 인간의 지성과 그 가능성, 인간의 선한 의지와 은혜를 향한 그의 능력 등을 하나님의 자리에 갖다 놓은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구원의 한 수단이 되게 한 교회만능주의의 엄숙하고 눈부신 시도와 자연과 은혜를 타협하여 거대한 체계를 만들려는 엄청난 시도에서, 곧 중세 그리스도교의 마지막 국면을 특징짓는 이 모든 기획들에서 단지 하나님께 대한 반역만을 보았을 뿐이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언제나 주체는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재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그 진리는 오직 성서에만 담겨 있고, 따라서 모든 교리는 성서의 표준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성서의 토대 위에 교회와 사회의 모든 제도와 법규를 근거시키려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개혁의 ‘형식원리’라고 일컬어지는 개혁교회의 ‘성서원리’이다. 우리는 개혁교회의 모든 신학이 이 ‘성서원리’를 바탕으로 확립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초기에 나타난 개혁교회의 6개의 신앙문서들을 통하여 확인했다.

그리고 이 문서들을 포함하여 「제네바 신앙문답서」, 「프랑스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 그리고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등 초기 개혁교회의 중요한 신앙고백 문서들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우위성과 주권에 대한 강조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과 이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고 신앙의 선한 행위를 하도록 이끄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강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언제나 주체는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 ‘앞선 것’, ‘우선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루터교회의 신학과 구별되는 개혁교회 신앙과 신학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관심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 개혁교회 신앙 전통 속에서 살아간다. 개혁교회가 개혁교회의 개혁자들로부터 배우는 바는 언제나 각자의 새로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새롭게 신앙을 고백하며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사참배 반대 문제, 성경의 권위와 성경비평학의 문제, 신학적 보수와 진보의 갈등,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신학과 이념의 대결 등등 지난날 한국 장로교회를 분열시킨 원인들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교회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만을 드러내려고 했던 개혁자들의 길을 따라가고자 한다면, 분열된 장로교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세계교회의 일치를 소망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 신앙문답서」에서 어떻게 하나님만을 올바르게 영화롭게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는지에 온통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바르트는 칼빈을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거룩한 뜻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의 일체의 궁핍 가운데서 구원과 모든 선한 것을 하나님 안에서 찾고 구하고 기도할 때, 그리고 우리가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릴 때, 올바르게 영화롭게 된다고 주장한다. 개혁교회 신학은 믿고, 순종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오직 하나님만이 활동하신다는 이 전망 아래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15) 바로 이 일을 해내는 것이 개혁교회의 교리적 과제이며, 전체 그리스도교의 과제이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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