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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시는 예수님믿음 없음을 도우소서(마가복음 9:21-2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5.02 00:22
▲ Gustave Dore, 「Jesus guerit les malades」 ⓒWikiMediaCommons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가복음 9장의 말씀은 성도님들께서 워낙 잘 아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유명한 복음성가 ‘할 수 있다 하신 주’의 모티브도 이 말씀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23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은 저희가 성경 암송 때에도 외우는 말씀이고, 많은 성도님께서 마음에 품고 계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믿음을 가지고 주식에 투자한다면 대박을 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있으면 고칠 수 없는 병이 당장 치유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있으면 연애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당장 결혼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당장 할 수 없는 목록을 나열하다 보면, 믿음이 있다고 모든 일이 다 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많은 교회에서 전해왔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믿음의 부족함 때문이기에 우리는 더욱 믿음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게임에나 존재하는 레벨, 단계가 표시된다면, 믿음을 키우기 편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하면서 믿음 경험치를 얼마 채우면, 믿음 레벨이 1 상승하고, 믿음 레벨이 높아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늘어난다면, 그런 신앙생활은 참 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렇게 키워지지 않습니다. 저는 목회자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믿음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지금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믿음이 없어서 엄청난 기적적인 일들을 행하지 못하는 우리를 꾸짖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또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들은 왜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남겨놓았을까요? 과거에 이들은 믿음이 있어서 이런 기적적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앞선 이야기는 변화산 사건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따로 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의 옷에서 광채가 나며 하얗게 변하고, 엘리야, 모세와 함께 말씀을 나누신 사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름이 와서 산 위를 덮었고, 그 구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체험을 한 후 예수님께서는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와 보시니 그곳에는 예수님의 나머지 제자들과 서기관들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툼은 귀신들린 한 아이에게서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귀신을 내쫓지 못한 제자들을 꾸짖으신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아이 아버지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23절의 말씀을 하신 후에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지 여쭙는 제자들에게 기도만이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귀신을 내쫓으시는 이야기는 마태복음 17장과 누가복음 9장에도 나타납니다. 공관복음서 각각의 책에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합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믿음 없는 세대를 꾸짖으시며 귀신을 내쫓으셨다는 점에서 모두 같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제자들의 실패를 담고 있는 점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똑같이 나타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전부 다르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과 같이 ‘믿음’이라는 주제를 이 말씀에 연결합니다. 하지만 마가복음과는 조금 다르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는 말씀을 여기에 첨가합니다(눅17:6 참고). 또 마가복음 11장에 나타난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을 덧붙입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본문의 말씀과 ‘믿음’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이 중에 누가복음에 기록된 짧은 말씀이 아마 본래 이야기와 가장 가까울 것이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의 각색이 조금씩 가미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치유 사건과 믿음이 연결되는 일은 자주 나타납니다. 2장에서는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5장에서 혈루증 걸린 여인도 그녀의 믿음으로 고침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딸이 죽었다고 생각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0장에서도 바디매오의 믿음이 그를 고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믿음에 대한 강조는 11장에서 무화과나무가 마르는 사건을 통해 더욱 강조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3-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강조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다만 마가복음 11장의 말씀이 마태복음과 다른 점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아니라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점입니다. 마가복음은 작은 믿음을 강조한 마태복음과 다르게 확고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인 9장의 말씀도 이와 같이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9장에는 한 가지 장치가 더 담겨 있습니다. 앞서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이 나타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변화산 사건은 산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곳에 초막을 세 채 짓고 거기서 살자고 제안합니다. 베드로에게 그곳은 하나님 나라였고 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천국과 같은 장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장소에 머물지 않으시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산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나머지 제자들과 서기관들의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서 일어난 하나님 임재 사건과 땅에서 벌어진 다툼은 극단적인 대비를 이룹니다.

이는 마치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계명을 받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있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금송아지 사건을 간단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출애굽기는 산 위에서 일어난 하나님 임재 사건과 산 아래의 금송아지 제의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킵니다.

마가복음 9장의 이런 구성은 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더욱 강조합니다.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던 서기관들과 아이 아버지의 믿음 없음을 부각합니다. 아이 아버지가 예수님을 부를 때, ‘주님’을 의미하는 ‘퀴리오스(κύριος)’가 아닌 ‘선생님’이라는 뜻의 ‘디다스칼로스(διδάσκαλος)’로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 아래 있던 이들의 믿음 없음은 아이 아버지의 말을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아이 아버지의 말은 앞선 중풍병자 친구를 데려온 이들이나 혈루증 걸린 여인이 가졌던 믿음과 비교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고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이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대답하신 것이면서, 산 아래 있는 이들의 부족한 믿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믿음 없음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 머물지 않으시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마가복음 9장의 이야기는 24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아이 아버지의 외침,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 외침이야말로 마가복음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 우리가 예수님의 일을 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도와달라는 외침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은 23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씀은 본문의 핵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견 달콤해 보이는 이 말씀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말씀을 왜곡시켜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없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질책해 왔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을 기록한 이들이 이 말씀을 남긴 이유는 서로 믿음이 없다고 질책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마가복음은 제자의 실패를 보여주며 참된 제자가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그렇기에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본 제자들이 실패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가복음이 실패한 이들을 질책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 승천 이후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좌절하고 지쳐가는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말씀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기록한 이들이 가장 외치고 싶었던 말이 아이 아버지의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리고 이 외침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머물지 않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9장 말씀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산 아래로 내려오신다는 점,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믿음이 없는 우리는 도우신다는 것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29절은 기도해야 함을 말하며 이야기를 맺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도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없어서, 확신하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은 말합니다.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 여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도우시기 위해 오십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도록 이끄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을 만나시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하며 간구할 때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믿음을 굳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할 수 없는 일이 많은 우리가 어떤 일이든 희망을 품고 해나갈 수 있도록 도우시며 이끄실 줄 믿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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