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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영을 따라 행하는 삶”(로마서 8:1-8)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5.04 16:35
▲ 예수께서 아이들을 품고 계신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몸의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안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평안은 오로지 우리 내면에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에는 늘 이 말씀을 듣곤 합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마가복음 10장 14-1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여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씀을 예수님은 어떤 의도로 하셨을까요? 공동번역으로는,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막10:15)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순진하다.’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요? 국어사전에는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21의 말씀에 “18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성서에도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 버리고 똑똑하다는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 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20 그러니 이제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고 학자가 어디 있읍니까? 또 이 세상의 이론가가 어디 있읍니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21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읍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읍니다.”(공동번역)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걸 알아야해 하고 특별하게 여겼던 경험, 지식 또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우리가 얻게 된 삶에 관한 모든 지식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고 세상의 관점에서 잘살기 위한 지식, 경험, 정보를 가진 사람의 눈에는,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이 하나님의 도는 참으로 어리석게 보일 뿐이라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세상에서 잘살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과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21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순진한 마음’이란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여겼던 모든 세상의 지식과 경험 등을 알기 전의 마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기 전이기 때문에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요? 집어 던져버립니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몇 년 만 지나면 어떻게 되나요? 돈을 집어 던지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돈을 잊어버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들도 어른들이 용돈을 주시면 몇 초 만에 돈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을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자기에게 돈이 얼마 있는지 기억하기 시작했고, 제가 아들이 가지고 있는 돈의 일부를 쓰자 그 다음부터 정확한 액수를 말하면서,  “아빠 내 돈 언제 줄 거야?”라고 정기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성경은 세상이 요구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져 간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배웁니다. 이뿐인가요. 무엇이 나에게 좋을 만 한 것들인지, 좋지 않은 것들인지 배우게 됩니다. 더 이상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지 않게는 되었지만 하나님을 알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서 6:7에서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평생을 육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지만 만족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육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영을 따라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영을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에게 껴있던 때들을 벗겨내 다시 순진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를 받들게 됩니다. 내가 만들고 창조하고, 내가 원하는 나라를 우상으로 섬기게 됩니다. 순진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순진한 마음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로마서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에 거하기 위한 순진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1절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과 예수 밖에 있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죄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죄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죄 가운데 있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말씀에 나오듯이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에고를 키움으로써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으나 영혼의 목마름은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적당한 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영혼은 생명력을 잃는다. 목이 마르고 계속 굶주리게 되면 영혼은 아프고 쇠약해진다. 영혼의 질환은 우리에게 깊은 타격을 입힌다.

우리는 스스로 영혼의 질환, 곧 물질만능주의, 공허감, 과도한 야망, 질투, 탐닉, 두려움, 불안감, 우울감 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영혼을 무시하면 삶이 혼란스러워지고, 지혜롭지 못한 결정들을 내린다. 우리를 안내하는 영혼의 목소리 없이 우리는 보잘것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서이다.”

- 『아인슈타인과 랍비』 中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는 말씀은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겼던, 이것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 여기게 했던 세상의 지혜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었다는 뜻입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성경에 나오는 ‘죄’는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 하나님이 말씀하신 삶이 아닌 모든 것이 ‘죄’입니다. 세상의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 일들이어도, 우리가 선택하고 사는 많은 삶의 방식이 ‘죄’에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이 ‘죄’인지 깨닫고 돌이키게 됩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참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관심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육신과 관련된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여정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왜요? 하나님께로 향하는 여정이 참 된 생명, 안식, 기쁨, 행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전도서 6:7에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도서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2:13에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오늘 본문 3절 이하의 구절에서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삶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구분하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살았던 표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사도 바울은 설명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 따라 살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 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잠언 12:13에서 지혜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들을 만한 말을 다 들었을 테지만,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그의 분부를 지키라는 말 한 마디만 결론으로 하고 싶다. 이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다.” 

제가 읽었던 <아인슈타인과 랍비>의 책 한 구절을 또 읽어드리겠습니다.

“일단 영혼에 양분을 주고, 그것을 잘 갈고 닦기 시작하면 영혼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을 점점 더 많이 보여줄 것이다. 영혼을 양육하세요. 그리하면 껍질을 쪼는 병아리처럼 그대를 가뒀던 장벽도 부서집니다. 그대 이름을 부르고 있는 소명에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만족시킬 수 없는 육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육신을 따르는 삶에 힘을 주고 살았다면 이제는 성령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힘을 주어야 합니다. 

“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교회에 다니기 전에 무엇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는 또 무엇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처음에는 육신의 문제, 결핍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돈이 부족해서, 건강이 염려가 되어서, 누군가와의 관계가 불안해서, 인정을 받지 못해서, 미래가 불안정해서 등등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나님께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은 표면적인 것들이고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은 영혼의 결핍 때문에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한 번도 돌보지 않았던 우리의 영혼, 한 번도 따라 살지 않았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가르쳐준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따라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영혼을 돌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름으로서 우리를 덮고 있던 때를 벗고, 순진한 마음이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육신을 만족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 곳에서 경험하며 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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