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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영적여정의 오솔길
김오성 목사(한국살렘영성훈련원) | 승인 2021.05.05 15:05
▲ 잠든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Free Bible Image
김오성 목사님의 이 글은 ‘평화교회연구소’(소장 황인근 목사)가 발행하는 웹진 「주간 평화교회」 63호에 수록된 것을 평화교회연구소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에큐메니안에 게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 주신 평화교회연구소와 김오성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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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해서 다시 검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편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이미 안과로부터 시작해서 몇 차례의 다닌 병원의 검사만으로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만에 하나라도’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기대로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때 받았던 검사 중에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검사가 있었다. 심장 검사였는데, 어떤 약물을 주입해서 심장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금 힘들 수도 있다는 주의를 받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검사 자체 시간은 10여 분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검사를 받으면서 영화에서 약물로 고문을 받았던 장면이 떠올랐고, 고문을 받던 사람이 이런 체험을 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슴 속으로 들어와 심장을 움켜쥐고 강제로 쥐어짜내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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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병원에서 길면 1년, 짧으면 1달 만에 투석을 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내가 그 짧은 편에 속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었다. 3일 만에 나온 검사 결과는 이미 응급투석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실낱같이 유지되던 어떤 선 하나가 ‘팅’하면서 끊어지는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주어진 선택지에서 최악의 결과를 맞이해 본 경험이 없었다. 적어도 평균치는 되었고, 평균치보다 앞서거나 더 좋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었고, 늘 그럴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살아왔었다. 그런 기대와 바램이 완전히 허물어졌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동안 투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응급투석을 받기 위해 목에 있는 내경정맥에서 카테터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고 혈액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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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낮에는 병문안을 위해 찾아온 고마운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면, 오히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동안 내가 설교나 교육을 하면서 모든 일이 잘될 때보다 환난과 고통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제 그것을 실천할 기회라고 말이다.

아마 목사라는 타이틀이,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본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또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어려움으로 인해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성격적인 면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였을 것이다. 낮 동안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 억지로 짜낸 연극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동안에는 내 마음이 정말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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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낮 시간 동안의 의연함은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면 정반대의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음 속 어느 곳에 숨어있었는지 모르는 감정들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수면시간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낮시간에 검사와 투석과 병문안 때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하루 이틀 불면의 시간들이 길어지자, 숨어있는 감정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심장 속에서 터져 버렸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러십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내가 뭘~~~” 비극영화속의 주인공이 “Why me?”라고 외치는 그 소리를 내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다른 환자들의 수면을 방해할까봐 침대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이렇게 버둥댈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밤이 깊어 주변이 조용할수록 아우성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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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낮의 의연과 어둔 밤의 울분은 점점 더 극명하게 대비가 되면서 지나갔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새벽 2시쯤이었다. 병원 이불 속에서 버둥대던 나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성격의 소리였다. 외부에서 귀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도 아니었고, 내면에서 마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아니었다. 외부와 내면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처음에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어린 사무엘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혹시 그 분이 …”라는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에 똑같은 목소리로 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두 번째 질문이 들려오는 순간, “이 병에서 낫기를 원합니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마음이 듦과 동시에 병만 나으면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나의 인생의 목적이 성취되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왔다. 그래서 침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요한 시간이 흐른 후에 세 번째로 질문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 대답과 더불어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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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리 없이 펑펑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침에 검사를 받기 위해서 일어났다. 어젯밤 일이 마치 생생한 영화를 보는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했다. 밤에 내가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상태였는지, 새벽 2시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가 너무나 명확하게 복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투석을 받아야 하는 내 몸의 상태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앞으로 죽기 전까지 감당해야 하는 병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평안해졌다. “Why me?”라는 질문이 나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다음에 계속)

김오성 목사(한국살렘영성훈련원)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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