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입술의 제사“나의 입이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소서”(시편 66:13-2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5.11 15:40
▲ 우리의 제사는 제물이 아니라 온 몸이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보이는 삶에서 평안을 누리려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라면, 평안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고통과 분노, 실망과 좌절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는 삶의 평안을 바라는 것은 헛된 욕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참 평안을 바라고 누려야 합니다. 평안은 오로지 내면에서, 마음 안에서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잠시 잠깐의 세상이 주는 헛된 평안을 구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멀리서 찾지 마시고, 이미 우리 안에 주어진 참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라는 이름에는 자신에게 맡겨진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릅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다 여기고, 때로는 자책하며 살아온 모든 어버이에게 오늘은 축하받아 마땅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 축하의 박수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잘해왔다고,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마음을 보내며 박수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해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생명을 돌보며 후회되고, 자책했던 일들 가운데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일 중에 하나가 말로 준 상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하고, 또 가장 먼저 나가는 것이 입을 통해 나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한 번 준 상처는 깊게 남아서 쉽게 낫지 않습니다. 입을 다물고 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말로 상처를 주는 상황들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시편 시인의 고백을 통해 어떻게 해야 말로 상처를 주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고,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지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3-15절입니다. “내가 번제를 드리러 주님의 집으로 왔습니다. 이제 내가 주님께 서원제를 드립니다. 이 서원은, 내가 고난 받고 있을 때에, 이 입술을 열어서, 이 입으로 주님께 아뢴 것입니다.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번제물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숫염소와 함께 수소를 드립니다.(셀라)”

시편 시인은 고난의 한 복 판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입술을 열어 주님께 예배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66편에는 시인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0-12절입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을 달구어 정련하듯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우리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고, 사람들을 시켜서 우리의 머리를 짓밟게 하시니, 우리가 불 속으로, 우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마침내 건지셔서, 모든 것이 풍족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난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이 불에 뛰어들고,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고백을 통해 오랜 기간 깊은 절망 속에 잠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고난과 고통은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를 피폐하게 합니다.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입술로 나오는 말들이 긍정적이거나 부드러울 수가 없게 됩니다. 부정적인 말, 한탄의 말들이 나도 모르게 쏟아집니다.

더 좋지 않은 건, 입에서 나오는 판단의 말, 부정적인 말, 상저 주는 말들은 갚아도 갚아도 높은 이자 때문에 줄어들지 않는 부채처럼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말들이 쌓여서 나와 타인에게 계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오랜 세월 유대교 랍비 생활을 해 온 나오미 레비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혐오적이거나 자학적인 말들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못 생겼어, 나는 뚱뚱해, 나는 강인하지 못해, 충분히 노력하질 않아, 일 마무리를 못해, 나는 루저야, 나는 게을러, 체형이 엉망이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 나는 약해, 경쟁을 못해, 별로인 배우자야, 별로인 부모야, 못 된 자식이야, 좋은 친구가 아니야, 좋은 사람도 아니야, 사랑스럽지 못해, 소심해, 실망시키는 사람이야, 너무 늙었어, 너무 어려, 내 머리 모양이 싫어, 내 코가 싫어, 내 얼굴이 싫어, 내 몸이 싫어, 내 자신이 싫어, 내 삶이 실어!” 등의 말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말들은 나로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로 화살이 돌려지기도 합니다. 자녀에게 말을 할 때 작정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내 기분이 먼저 안 좋았기 때문에 자녀나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직접적인 이유가 상대방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습니다.

그럼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시편 시인은 고통과 고난, 절망적인 순간에도 원망이나 부정적인 말 대신에 어떻게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겠다고 약속하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17-18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주님께 도와 달라고 내 입으로 부르짖었다.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내가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시인은 날마다, 매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정적인 상황 그리고 이 상황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짐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기도와 찬양으로 정화시켰습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마음을 정화시킴으로 악이 쌓이지 않게 했습니다.

악한 생각을 품지 않기 위해 시인은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묵상했습니다.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생각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마가복음 7:20-23)

속에서 나오는 것,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나와 상대방을 더럽힙니다. 그렇기에 마음을 지키는 것,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이런 정화를 위해 특별히 입술로 내뱉는 고백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나는 주님께 도와 달라고 내 입으로 부르짖었다.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내뱉는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말이 부정적이고, 악했던 나의 생각과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 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 친한 동생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자신이 지금 배달 일을 하고 있는데, 배달을 하다 보면 화가 나거나 모욕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은 억지를 부리는 말이나, 하대를 하는 말로 빚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고 거칠고, 부정적으로 나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당연하죠. 상대방의 말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주고, 내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왔기에 말이 좋게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 또 상대방도 더 거칠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입술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말을 튕겨내게 되었고, 오히려 긍휼히 여기며 복을 빌어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정화시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한 놀라운 결실입니다. 입술로 단 두 음절을 반복해서 고백했을 뿐인데 짧은 시간에 상대방을 대하는 그리고 나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외부의 부정적인 압력이 나의 마음과 말을 부정적으로 바꾸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시편 시인은 고백합니다. “나는 주님께 도와 달라고 내 입으로 부르짖었다.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 오늘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나요? 19-20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나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나에게서 거두지 않으신 하나님, 찬양받으십시오.”

부정적인 상황과 압력이 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입술로 고백하고, 찬양하며 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더니 하나님께서 이 기도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응답하여 주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백하는 말이 결국 내 삶을 결정합니다. 부정적이고, 상처 주는 말들을 상대방에게 쏟아내고 있지만 결국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긍정적이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했지만 결국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판단하고, 상처주고,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압력에 나의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맡겨버린 결과입니다.

후배 목회자가 이런 고민을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교회에서 은혜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 배우자 때문에 은혜가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는데 대답해주기가 고민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들은 선배가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말을 바꾸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이 웬수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가 아니라 “야! 이 사랑스러운 사람아, 내가 라면이라도 끓여 줄께!”라고 말이라도 해 보라는 겁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뚫고 긍정적인 말을 먼저 했을 때, 자신이 고백한 말이 나의 마음과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경험해 보라는 거죠. 이런 말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계속 말씀드렸지만 부정적인 말이건 긍정적인 말이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시편 시인처럼 고난과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오는 압력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화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합니다. 특별히 요즘처럼 코로나와 미세먼지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에 걸린 상황, 이미 어느 정도의 분노나 화가 쌓여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입술로 하나님을 향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입술로 은혜의 말들을 고백해야 합니다. 당장 상황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이런 노력과 고백, 기도를 통해 마음을 지키며 나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면 놀랍도록 변화된 긍정적인 열매들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어버이주일입니다. 앞으로는 더 존경받고, 사랑받는 어버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난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말과 마음으로 살아가심으로 이 고백들이 자녀와 손들에게까지 축복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