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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5.14 15:40
▲ ‘전업주부’라는 말이 과연 옳은 말일까 ⓒGetty Image

보드랍고 어린 새싹을 바라보는 것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봄이 되었으나 올 해는 어쩐지 손발이 시리고 아침과 저녁이면 춥기도 하다. 가족들에게 나만 추운 것이냐 물었다. ‘엄마만 그렇다’, ‘이제 늙어서 혈액순환이 안 되어 그렇다’, ‘춥다고 말고,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 돌아온 대답이다 공감이라고는 하나 없는 사실에 기반한 현실 가족의 말에 서운할 법도 하지만, 그냥 일상의 덤덤함으로 지난다. 감정을 한마디 더 보태면 잔소리다.

서랍에서 두툼한 옷을 꺼내어 덧입었다. 오들거리던 몸이 이내 안온하다. 여느 때라면, 벌써 긴 옷들을 넣고, 가볍고 얇은 옷들로 바꾸어 정리하는 일을 벌써 했을 터다. 이참에 미니멀리즘을 실현해 볼까싶다. 간소한 몇 벌 옷. 옷장 하나에 사계절 옷이 한 눈에 보이도록 모두 정리되는 것.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것은 나의 이상일 뿐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런 삶을 지향하는 이는 나뿐만 아니다. 그래서, 정리와 수납의 전문가들도 있고, 관련된 책들도 호응을 얻어 판매된다. 그런 삶을 실천하도록 하여 달라진 공간에서 이전과 다른 삶의 여유를 기뻐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있다. 중고마켓의 인기도 상당하다.

‘이참에 나도 주황색 채소 앱을 깔아서 환금의 경제활동을 시작해 볼까?’ 직업란을 적을 때면, 나는 ‘무직’이라고 적는다. 한사코 ‘전업주부’라고 적는 것을 거부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이 직업이 되느냐 말이다. 집안일에 대한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결혼 자체를 가부장제에 부역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비난을 받기에 마땅한 나의 노동은 ‘살림’이라는 가냘픈 소명으로 승화시켜 위로한다. 게다가 요사이는 마치 사회에 나가 돈벌지 않는 여성은 잉여의 삶을 사는 것마냥 취급되지만, 나의 그림자 노동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밀린 설거지를 막 끝나기가 무섭게 요리하여 음식을 담아 상을 차려 먹고 나면 다시 또 설거지. 밤새 오줌 싼 내복을 아침부터 서둘러 빨아 낮 동안 볕에 말려 개어 놓으니 저녁 목욕 후에 착복. 도돌이표로, 끝나지 않은 ‘노오력’이 계속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성의 일로 생각하는 요리도 직업이 되면 쉐프로 남성의 몫이 되고, 빨래도 직업이 되면 남성 사장님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된다.

당당히 ‘무직’이라고 적는 내게, 남편은 ‘프리랜서 강사’라고 적으란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허나, 그것도 말이 좋아 자유계약이지, 자발과 비자발의 사이에 있는 경력단절 여성이다. 코로나19로 여성의 돌봄 노동 증가와 일자리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코로나19 고용 충격의 성별 격차와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가 확산 시작된 지난해 3월에 25∼54세 인구 가운데 여성 취업자 수 감소폭(54만1000명)이 남성 감소폭(32만7000명)을 크게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여성의 경력 단절은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를 막으려면 맞돌봄 문화 확산, 유연근무제 등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교회에서 일하는 여성 사역자의 생리, 출산휴가는 제도적으로 잘 보장되고 있는가? 남성 목회자는 배우자의 출산 시에 10일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만들어지는 여성성으로 내조와 자녀양육 중이다. 그래, 젠더(gender)를 통해 목회를 떠받칠 수 있으니 젠더라는 말만 꺼내도 이를 깨뜨릴까 치를 떨며, 두려워할만 하다.

현모양처. 남편의 내조와 자녀 양육이 여성의 삶의 목표가 되도록 하던 사회에서는 주체적으로 경제적 부를 획득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여성에게 여전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집사님이 옷박스를 대문 앞에 두었단다. 문을 열고 박스들을 현관으로 들여놓았다. 옷정리나 해야겠다. 일년 사이에도 쑥쑥 잘 자란 아이들. 이맘때 물려 입힌다. 지난 계절의 작아진 옷들과 다가올 계절에 입힐 것들을 앞서 정리해서 주었다. 기후위기니 재앙이니 하는 작금에 에코, 친환경, 생태 등은 나를 천착하게 하는 단어들이다. 나와 달리, 헌 옷을 뜯어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 생각하지 않고 주니 고맙다. 중고로 팔지도, 재활용 수거업자에게 팔지도 않고 향내 나도록 정성껏 잘 손질하여 주었다. 보답을 하려 어린이날에 작은 선물을 보냈다.

우리 아파트에도 헌 옷 수거함이 있다. 문득 생각하니, 며칠 전에도 주변까지 가득 쌓인 여러 집의 옷가지들이 없어졌다. 장애인들이 생활보조를 위한다고 쓰여 있으나, 사실 전문업자가 수거를 한단다. 수거하는 이들을 한 번도 본적은 없다. 재활용품 생태계에서 제일 말단, 수집은 가난한 노인이다. 폐지를 싣고, 손수레를 힘겹게 미는 것이 그 표상으로 떠오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아파트의 분리수거 날이다.

가난한 여성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헌 옷 되살림이 문제가 아니다. 돈도 안 벌고, 가시화되지도 않은 나의 노동을 업사이클링 할 방법도 찾아봐야겠다. 홀로된 목사 아내들의 애처로움은 돈버는 직업인으로서 기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 먼저 죽는다면, 사모라는 말을 버릴 것이다. 남편과 함께하여 소명을 감당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홀사모’라는 말로 나를 다시금 얽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도 먹고 살만한 능력을 갖추고 싶다. 남편 잃은 목사 부인과 남은 가족의 곤궁함을 동정한 후원보다 그들에게 직업훈련교육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 런지. 고령화되어 목회자 연금도 계속하여 고갈이 심화되는 형편에 직접 지급보다 기금으로 은퇴이후 할 일을 만드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 런지.

한편, 개인의 목회성공(?) 여부에 따라 노년 삶의 질이 차이 나서 다르다 것은 분명하다. 가만 보면, 노후생활의 안정. 그 것 때문에도 목회현장의 상당수 문제들이 발생한다. 늙어 병들고  힘없을 때까지 노인이 일하는 것으로 한두 푼이라도 벌어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 불행한 미래가 우리. 아니, 나의 일로 예견되니 어떻게든 노후를 준비해야만 한다.

3일에 하나은행 100년 행복연구센터는 ‘대한민국 40대가 사는 법’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서울 및 4대 광역시(대전·대구·부산·광주)에 거주하는 40대 소득자 1천명을 대상으로 작년 11월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인생 과제로 ‘은퇴자산 마련’을 꼽았다. 42%를 차지하였고, 뒤따라 내 집 마련(36%), 자녀교육(16%), 자기 계발(6%) 순으로 답했다. 구체적으로, 40대의 65%는 은퇴자산 마련을 위해 평균 월 61만원을 납입하여 저축을 했다. 또한, 전체 조사대상의 59%가 향후 노후자금을 위한 저축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할까? 닥쳐오는 가난한 삶의 공포를 경각하여 반면교사삼고, 와신상담하면 가능할까? 몰라서가 아니다. 당장, 닥쳐오는 월세도 부담하기 버겁다. 40대 소득자 1000명의 설문 대상자가 아닌 나는 오늘도 가난하다. 중위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은퇴 때에 일정 금액을 초과 수령하는 목회자들은 교단에 의무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은 어떨 런지. 금액의 축소보고나 탈법의 변칙적인 방법으로 수령하지 말고,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믿음으로 말이다. 나의 양들은 가난한 어느 목자가 잃은 어린 양이었을지도 모른다. 빼앗은 포도원에서 나는 소산과도 같이 상가 개척교회에서 수평이동된 것일 수 있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젊은 사역자들의 수고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삶의 자리와 잇대어 있다. 우리는 생명의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모두 붙어 연결된 자들 아닌가! 가정의 달이다. 나의 가족은 누구인가? 나는 비록 정책을 구상하고 힘쓸 처지도 안 되지만, 세상보다 더 나은 기초소득을 위해 아무쪼록 ‘노오력’에 함께 힘쓰길 바란다.

청렴하게 작고하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단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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