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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s Maketh Christian“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13-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5.18 17:02
▲ 두려움에 사로잡힌 출애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됨을 보라고 하셨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을 때에도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이 우리 안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주어진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정적인 상황은 대부분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부정적인 말을 하게하고 이 말로 인해 다시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지난주 시편 시인의 고백처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등의 입술의 고백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야 합니다.

부정적인 상황은 막을 수 없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질 것인지 갖지 않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고자 하면 우리 마음에서 부정적인 마음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다보면, 어느새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져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원치 않는 상황, 부정적인 상황마저도 은혜의 통로로 사용합니다. 

며질 전 OOO/OOO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식당과 집 내부에 화재가 났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워버렸습니다. 화재가 다 진압된 뒤에 도착하셔서 모든 것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식당과 집을 바라보시는 두 분 권사님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실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만난 OOO 권사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식당 운영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예배드리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다 가져가 버리신 것 같아요.”

이 고백을 들으면서 농담으로 “권사님, 누가 들으면 교회 안 다니겠어요.”라고 말씀 드렸지만 마음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하나님이 벌주신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권사님의 고백은 ‘내 삶은 결국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백이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주인어른의 아드님과 따님들이 큰 아드님 댁에서 한 창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광야에서 강풍이 불어와서, 그 집 네 모퉁이를 내리쳤고, 집이 무너졌습니다. 그 때에 젊은 사람들이 그 속에 깔려서,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이때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욥기 1:18-22)

저는 감사하게도 초도제일교회에 부임한 이래로 성도님들을 통해 삶을 대하는 이런 믿음의 태도에 대한 고백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다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절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본 <킹스맨>이라는 외국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누구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만 한 명언이 나오는데요. 바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이라는 문장입니다. 매너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데요. 상대방을 존중함으로서 나와 타인 모두 사람다워진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림이지.’라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신앙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신앙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태도인가요?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의 태도가 그리스도인 되도록 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도 이런 신뢰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탈출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탈출 후에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기 위해 여러 위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나요? 오늘 본문의 바로 윗 구절입니다. “11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 12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 불안한 마음에 생각의 시야가 좁아지게 되고, 조급해 지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평소에 눈에 들어오던 것도 들어오지 않아서 찾아야 할 것을 못 찾거나, 과거의 일을 기억 못 하거나, 대답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위협으로부터 오는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자신들의 마음을 내맡겼습니다. 끊임없이 생각 속에서 부정적인 결말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생각속의 드라마는 절망과 슬픔, 고통을 더욱 극대화 시킵니다.

또한 조급하고 다급한 마음에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과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은 절망이나 두려움, 상상 속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등을 그치게 합니다. 그렇기에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난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오늘 주시는 말씀처럼, 먼저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생각도, 행동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멈춰야 비로소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가 방금 말씀드린 의미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행동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 앞에 침묵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부르는 “주님 손잡고 일어나세요.”라는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 같이 찬양을 불러볼까요? 

“주님이 내 삶을 이끌어 가신다. 내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과 확신은 지금 당장의 상황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상황으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삶을 지켜낼 수 있게 합니다. 더불어 고난을 감사로, 고난을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믿음의 태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사셨던 분의 이야기를 잠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아내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데이트 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빌라 밖에 나와 계신 아내의 할머님을 뵈었는데요. 멀리서 저를 보시더니 환하게 웃으시면서 제가 인사하기도 전에 손짓으로 먼저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당시에 할머니께서 가벼운 치매가 있으셨기 때문에 몇 번 본적 없는 저를 기억해 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해서 빠르게 달려가 할머님 앞에 가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다시 환하게 웃으시면서 손에 가지고 계시던 ABC초콜렛 몇 개를 제 손에 꼬옥 쥐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아내의 할머님이 지금은 하나님 계신 곳에 계셔서 뵐 수 없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절 기억하지는 못하셨지만,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는 잊지 않으셨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90이 넘으셨던 당시의 연세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모세의 권면이 시대와 상황은 달라졌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먼저 멈추어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신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계심을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구원의 길로, 쉴만한 물가로 지금도 인도하십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지금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잊지 않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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