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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계는 끝이 났다새롭게 변화하는 교회(요한복음 2:11-12)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5.23 15:53
▲ Bartolome Esteban Murillo, 「The Marriage Feast at Cana」 (1675년경) ⓒGetty Image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통해서 요한복음은 어떤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지, 어떤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담긴 요한복음 2장 1-12절의 말씀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공생애의 시작에 대해서도 조금 다르게 기술합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후에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조금 다릅니다. 1장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그가 자신의 형인 베드로를 데려옵니다. 그 후 그들과 같은 마을 사람인 빌립이 예수님을 따랐고, 빌립에 의해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사건만 보더라도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알아서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2장 4절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향해 말씀하셨던,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이런 차이 속에서 요한복음이 1-2장에서 예수님에 대해 전하려고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1장 18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요한복음의 설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19절부터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조금 주목해서 볼 점은 1장 19절 이후로 문단이 바뀔 때마다 이튿날이라는 시간이 표시되면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요한의 이야기가 있던 다음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는 세례 요한의 증언이 나타납니다. 다음날에는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다음날에는 빌립과 나다니엘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시간을 따져본다면 세례 요한의 등장 이후 1장 19절부터 51절까지 4일이 지납니다. 사실 빌립과 나다니엘의 이야기는 다음 날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지만, 세례 요한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하루 안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일부러 날짜를 나눠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가 나오는 2장 1절은 ‘사흘째 되던 날’로 시작됩니다. 요즘 젊은 사람 중에는 ‘사흘’을 4일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인터넷 기사에 ‘4흘’이라고 제목이 달린 기사도 있었습니다. 사흘은 다 아시겠지만, 3일입니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은 예수님의 생애 이야기가 시작된 7일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시간 구분에 담긴 요한복음의 의도는 천지창조의 기간 7일과의 연결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새로운 창조의 활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날짜 구분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와 동시에 사흘이 한 번에 흘러간 것에는 부활의 기간 3일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부활에 관한 신앙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초대 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창조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와 함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징표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은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담고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단순한 기적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시작된 새로운 세계는 기적이 난무하는 세계는 아닙니다. 여전히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실제로 기적적인 행위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때로 우리가 일상에서 감상적인 표현으로 ‘기적’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방식의 기적 현상은 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한다 해도 이런 능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서 기적 현상에만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요한복음이 표면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를 전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몇 가지 단서들은 이 본문이 기적 사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바꾸신 물은 그냥 물은 아니었습니다. 6절은 그곳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른 돌항아리’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곳에 채워지는 물은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한 물이 됩니다. 일반적인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 전통에 사용되는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유대교 전통을 따르는 세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세계에서 유대교 전통은 새롭게 변화됩니다. 이제는 기존에 있던 유대교 전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따르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10절에 나타난 사람들의 감탄은 오래 묵은 옛것이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더 좋다는 감탄이 됩니다. 요한복음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 오래 묵어서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던 유대교의 전통이 아니라, 새롭게 이루어진 예수님의 지혜가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지혜를 맛본 사람들은 여전히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9절에서 연회장은 이 포도주를 맛보았지만,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지혜를 보고 들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 지혜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11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이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1장 1-18절에 설명했던, 태초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며 새로운 세상에 동참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시간의 흐름은 11절에 나타난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라는 말과 함께 끝납니다. 13절 이후로는 며칠 째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서두에서 7일 동안 일어난 일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준비하는 과정이 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세계가 제시되면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유대교 전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로 인한 새로운 세상의 도래는 오늘 본문 뒤에 바로 이어지는 공생애 첫 번째 사건인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던 유대교의 전통은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를 다시 깨끗하게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유대교 전통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의미를 우리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복음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은 유대교 전통에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이것이 더 분명히 나타나는 곳은 그리스-로마 신화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는 포도주, 광기, 연극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다스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무엇이든지 만지면 황금이 되도록 만들어 준 신도 디오니소스입니다. 그는 포도주의 신이기 때문에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도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포도나무와 포도주가 나오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집단이 디오니소스를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그들은 로마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로마의 신이 가진 능력을 예수님께 대입합니다.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를 예수님의 이야기로 바꿉니다. 이는 요한복음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헬라 사상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헬라 사상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철학과 사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요한복음이 바라보았던 그리스도는 유대교의 낡은 전통 속에서 머물면서 오히려 잘못을 범하고 있는 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헬라 사상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셨습니다.

4복음서를 쭉 읽으면 요한복음의 말씀이 가장 신앙적인 언어처럼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요한복음이 가장 보수적인 신앙을 전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상적으로 본다면 요한복음은 4복음서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복음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헬라 사상을 대입시키고, 적용한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또 교회 현장에서 있으면서 지금의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교회는 유대교 전통을 비판합니다. 낡고 잘못된 전통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2000년 동안 만들어진 그리스도교 전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전통은 좋은 것이기에 꼭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변해갈 때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께서 유대교 정결 예식에 사용하는 항아리를 다 깨뜨리시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채워진 물을 다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새롭게 바꾸셨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요한복음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안에 든 것이 새롭게 변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지금 교회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는 항상 변해 가는데 계속 전통만을 고수한다면 교회는 점점 세상으로부터 도태되어 갈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처럼 잘못된 길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당시의 유대교처럼 누군가를 정죄하며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전통을 강조하는 교회들도 존재합니다.

요한복음이 전한 그리스도교는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새로운 생각들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잘못된 전통은 바꾸어갈 수 있는 종교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루려면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새로움을 추구할 필요는 없지만, 계속해서 시대의 흐름을 보며 우리의 잘못된 전통을 깨닫고 변해간다면, 나날이 더 나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인원이 늘어나는 부흥만을 바라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교회’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교회가 바르게 서기 위해 날마다 새로워지는 교회를 바라는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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