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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고정“믿음이 적은 사람아”(마태복음 14:28-3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5.25 00:09
▲ Henry Ossawa Tanner, 「Disciples See Christ Walking on the Water」 ⓒWikim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우리 안에 주어졌습니다. 그렇기에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시선을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내부의 마음으로 돌려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가치관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만 신경 쓰도록 했습니다. ‘돈이 부족하다. 건강이 부족하다. 외모가 부족하다. 학력이 부족하다. 그럴듯한 직장이 필요하다. 인정을 받기 위해 더 높은 직급이 필요하다.’ 등등. 너는 결핍 되어있고, 부족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이런 결핍과 부족함을 채워야만 평안할 수 있다는 논리들이었습니다.

먼저 내면을 바라보고, 영혼을 돌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리들로 인해 습관적으로 외부의 상황에만 집착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런 결핍감과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면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이 이미 주어져 있음을 알게 될 텐데 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는 말씀이 이미 이루어진 줄 믿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우리 안에 평안이 주어졌음을 믿으십니까?

주님께서 주신, 이 주어진 평안을 날마다 찾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을 ‘감사’의 시간 속에서 보냈습니다.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고, 돕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성도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아픔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설교 시간을 빌어 기도로, 물질로, 몸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틀간 성도님들이 박병준/김순옥 권사님의 식당과 집에서 피해보상을 위해 보험사에 증명할 여러 가지 물건 등을 끄집어냈습니다. 저도 하루는 성도님들과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었는데요. 일을 시작하면서 제 딴에는 그래도 목사니까 더 힘이 드는 일을 해보자 싶어서 식당 부엌 안쪽으로 들어가서 접시들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시큼한 냄새가 강렬하게 올라왔습니다.

당시에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 시큼한 냄새여서 먹지도 않았는데 맛도 느껴지는 것 같고, 눈도 시려왔습니다. 그리곤 바로 마음에 불안감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얼른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서 같은 공간에 있던 김순옥 권사님과 이경옥 집사님에게 “시큼한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요. 얼른 바깥으로 나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저는 여러 가지가 신경 쓰였습니다. 그래서 조심조심 하면서 치웠는데요. 제가 나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도, 김순옥 권사님은 몸을 막 움직이시면서 부엌 내부를 여전히 치우고 계셨습니다. 이런 권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권사님이 ‘와 .. 우리 목사님 일 드럽게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야?’라는 염려도 들었습니다. 시큼한 냄새가 나건, 몸에 뭐가 묻건 상관하지 않고 ‘치우는 일’에만 온전히 몰두해 계셨습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곁눈질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부끄럽게도 목사인 저만 빼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성도님들이 이렇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에 마음을 분산시키면 한 가지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습니다. 곁눈질을 하다보면 집중해야 하는 일에 온전히 매달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만들어 내던지 아니면 외부의 상황이던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지 못하도록 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이야기는 우리가 왜 하나님께 삶의 중심,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초점을 맞출 수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앞서 있었던 본문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고 계실 때,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제자들의 배가 풍랑으로 몹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다!”라고 소리쳤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우리 각자의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당장 눈앞에 바람이 거세게 불고, 배가 뒤집어 질 것 같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제자들은 안심 했을 것입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요청을 예수님에게 합니다. “28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치더라도 아니 어떻게 자신이 물 위를 걸어볼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또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29 예수께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드로는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예수님만을 똑바로 바라보며, 예수님께 집중하며 물 위를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마치 아기들이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오로지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부모만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걷는 것처럼, 베드로도 걷지 않았을까요? 물 위를 걷기 전에 만약 베드로가 ‘바람이 더 세차게 불면 어떻게 하지?’라던가, ‘걷다가 중간에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하지?’ 등의 여러 가지 걱정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분산된 마음을 가졌다면 예수님의 “오너라!”라는 음성을 듣고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을까요? 

조심스럽게 잘 걷던 베드로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30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동안에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맙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자, 거센 바람을 바라보았고 무서움에 사로잡힙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베드로에게 손짓을 하시지만, 베드로의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 주변을 보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순식간에 물에 빠져들어 “주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외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거센 바람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면, “오너라!”라는 음성과 예수님에게만 집중했다면,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갈 수 있다는 믿음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곤 추락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추락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유혹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겠다는 결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 유혹은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 모두를 포함합니다. 때로는 좋지 않은 일보다 좋은 일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려는 신앙의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 수피즘에서 수도승들은 ‘수피춤’을 춘다고 합니다. 신을 향한 소통이자 종교의식인 이 춤은 긴 치마를 입은 수도승들이 빙글빙글 돌며 추는 춤입니다. 오른손을 하늘로, 왼손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 한 방향으로 계속 회전하며 추는데,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신을 영접하고 땅으로 뻗은 왼손으로는 신의 평화, 사랑, 관용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수도승들은 적게는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이상 회전하며 이 수피춤을 춥니다.

제가 일부러 타종교의 춤에 대해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적게는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이상을 회전을 하며 춤을 추기 때문입니다. 보통 조금만 몸을 회전시켜도 어지러워 춤을 출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들은 세 시간 이상을 회전하는 것뿐만 한 방향으로 돌면서 춤을 춥니다.

어떻게 춤을 추기에 세 시간 이상을 회전 할 수 있을까요? 수피춤을 추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초점을 한 곳에 고정시키고 절대 곁눈질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선을 고정하고 곁눈질 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춤을 오랫동안 출 수 있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시선을 고정하고 곁눈질 하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도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곁눈질 하지 않는다면 바다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계속해서 나아가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약해지고, 추락한다 하더라도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우리의 손을 잡고 다시 일으켜 주실 예수님이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1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32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 33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선생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중 새벽기도 시간에 잠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있는데요. 잠언 3:5-8 “5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6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7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8 그러면 이것이 너의 몸에 보약이 되어, 상처가 낫고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곁눈질 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곁눈질을 한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의뢰하고, 주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은 풀려진다고 잠언은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볼 때 ‘이것이 너의 몸에 보약이 되어, 상처가 낫고 아픔이 사라진다.’는 잠언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경험되어질 줄 믿습니다.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에도 “오너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삶이 은혜로 풍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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