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 다락방에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 ⓒGetty Image

우리가 성령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14,26). 성령의 활동은 언제나 있었음에도 주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셨으니 무슨 일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도움과 격려와 위로의 성령입니다.

다른 한편 진리의 성령입니다(요 15,26; 16,13). 진리의 성령은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하고 주님의 대해 증언할 것입니다. 성령의 활동은 다양하지만, 주님께서 이를 꼬집어 말씀하신 것은 그의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사랑 때문입니다. 진리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형태의 것이라기보다는 왜곡될 수 있고 은폐될 수 있고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그 모든 위험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가르치시고 제자들이 그 말씀을 실천하도록 격려하시고 그 때문에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위로하시고 다시 일어나 계속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와 연관해서 보면, 성령은 현재 오해되고 있거나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활동, 바꿔 말하면, 성령의 세례로 우리는 진리의 길에 서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하고 불의를 멀리 하게 하고 악을 미워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은 우리에게 격려자가 되고 위로자가 됩니다.

오순절 사건은 성령의 역사와 관련된 첫 번째 보도인데 거기서도 이와 같은 특성을 볼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은 방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데 바로 이 말이 오해를 낳습니다.

오순절에 함께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을 빼놓고 보면 어떤 소리가 있고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무엇인가가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더 이상 그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유적인 표현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잘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성령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방언’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에는 각 나라에서 모인 유대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자기들이 사는 지역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 의미는 옛날 바벨탑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살 곳을 찾아 이주하고 있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시날 평지에 이르러 정착하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큰 성과 높은 탑을 쌓으려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거대도시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곳입니다. 거대도시의 명성은 그 일에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작업을 중단시키셨습니다.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앞으로 사람들이 할 일의 시작이라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일을 하나님이 중단시키셨다고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반복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건설과 후대의 일들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 언어와 다양한 언어들이 출발점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고대 역사에서 성읍 건축은 강제노동 없이 이루어지지 않고 강제노동은 피정복지 주민들의 몫입니다. 당연히 언어가 다르므로 일의 효율성을 위해 그들에게 공통 언어를 강제 학습시키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한 언어 사용은 이렇게 쓰라린 기억을 동반합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반복될 그 일의 성격이었다면, 여기서 거꾸로 하나님이 그 일을 중단시키신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바벨탑은 일종의 강제노동을 통해 건축되고 있었습니다. 그 혼적이 본문에도 남아있습니다. 사람들은 성읍을 만들자는 똑같은 말을 구호처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강제가 없으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반복되는 구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게 하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말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건설을 중지시키심으로써 바로 이 위험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고의 표지로 그때까지 하나였던 언어를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수많은 언어들로 갈라놓으셨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언어의 다양성 속에서 그 사건의 의미와 위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제와 구호의 반복이 아닌 상호존중과 소통이 필요함을 그 사건은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사건은 부분적으로 바벨탑 사건을 뒤집어 놓은 사건입니다. 각 나라에 흩어져 산다고 해도 모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기에 아람어를 알고 있었을 터인데 제자들은 그 언어로 말하지 않고 저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 나라의 언어로 말합니다. 따라서 방언은 여기서 소통을 위한 성령의 사건입니다. 통역이 없으면 회중들 앞에서 방언으로 말하지 말라는 바울의 말도 이에 비춰보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 사건은 독백이 아니라 소통입니다. 오순절 사건에서 성령은 소통을 위해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제자들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각기 다른 말로 한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말로 그 일을 듣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진리의 하나님을 증언했습니다.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어도 동일한 내용의 사건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모든 이와 더불어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 사랑의 행동입니다. 우리는 그 언어로 진리의 하나님을 따라 진리를 증언하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불의를 멀리하고 악을 이기는 일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사용하시는 언어이며 사랑의 행동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격려하시는 행동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그 언어와 행동을 포기하지 않게 하십니다.

성령이여, 우리가 성령의 활동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소서. 우리가 성령의 활동을 의심할 때에도 우리에게서 맺어지고 있는 열매들을 보게 하소서. 우리가 성령의 활동을 이기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우리를 떠나지 마시고 너에게서 빛나고 있는 진리의 빛을 보게 하소서. 우리가 성령의 활동을 겨우 이거야 하며 무시할 때에도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릅답다고 하시던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소서. 성령의 활동으로 서로 인정하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연대하여 살맛나는 세상 이루게 하소서.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의 생각이 건강해지고 우리의 일상이 풍성해지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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