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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렵혀지지 않은 사람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5.30 17:10
▲ 그리스도의 첫 열매들 ⓒGetty Image
(시온에 어린 양과 함께 서있는 십사만사천명의) 이 사람들은 여자‘들’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갔고 사람들 가운데서 속량받아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바쳐진 첫 열매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흠이 없었다.(요한계시록 14,4-5)

성서번역은 가능한 한 오해의 여지가 없게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번역이 해석상의 큰 오류를 불러일으킨다면 그 번역은 오역을 넘어 해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가 그러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개정개역은 여자들을 여자로 옮겼고, 이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를 찾고 엉뚱한 것과 일치시키는 잘못을 낳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온갖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지요. 그러니 오역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번역이 옳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7장에 나오는 십사만사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일한 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없던 특징들이 언급되는데, 하나는 속량 받아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바쳐진 첫 열매들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속량의 역사를 출애굽 때 시작하셨고 어린양을 통해 계속해오셨습니다. 그들 이마에 어린 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이 속량하신 자들은 언급되지 않으므로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바쳐진 '첫' 열매들이 언제 사람들인지 어디 사람들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계시록 곳곳에서 언급되는 사람들 가운데 박해를 받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큰 환란 가운데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며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있습니다. 첫 열매들은 그 가운데 있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인도하는 대로 죽음의 자리까지 갔습니다.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특별히 이것이 언급되는지요? 그것은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믿음과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박해와 환란 속에서 목숨을 잃은 까닭은 바로 자신을 위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흠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처럼 살아간 사람들은 물론 그들만은 아닙니다. 민족과 인종과 국가와 언어가 다 다른데  어린 양의 피로 씻은 흰 옷을 입고 보좌와 어린 양 앞에서 찬송을 부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사만사천을 첫 열매라고 한다면 흰 옷 입은 사람들은 그들 이후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맺어진 열매들입니다. 그러니 십사만사천에 대해 말해야 하는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은 여자들을 모르는 숫총각들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여자들은 그 숫자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왜 여자가 ‘더럽히는(defile)’ 자인가? 여성 혐오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이 표현이 유감이지만, 그런 대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한 가지 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양은 신랑으로 일컬어지고(계 21,9; 22,17), 그 신부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흥미롭게도 신부 새 예루살렘이 음녀 바벨론(-로마)과 대비되고 있습니다(17장). 이 음녀는 짐승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속한 사람들은 순결한 사람들, 신부들입니다.

반면에 바벨론(-로마)에 속한 사람들은 ‘더럽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음녀들이라 하지 않고 그냥 여자‘들’이라고 한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많은 것들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짐승과 결합하여 폭력과 억압으로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세력들(=여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곧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들(=신부들)입니다.

(참고로 22,17을 옮겨 놓습니다. 인칭의 변화를 간과하여 수많은 오해를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 성령과 신부가 말합니다. 오소서[2인칭], 듣는 자가 말하게 하소서[3인칭 명령]. 오소서[2인칭], 목마른 자가 마시게 하소서[3인칭]. 원하는 자는 생명수를 거저 마시게 하소서.”)
첫 열매란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속량하여 어린 양에게 바쳐진 열매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오늘이기를. 불의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신부들’로 주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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