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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다, 멸망한다, 멸망한다”소명 받은 사람(예레미야 1:5-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5.30 17:12
▲ Horace Vernet, 「Jeremiah on the ruins of Jerusalem」 (1844) ⓒWikipedia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어떤 시대를 살아온 사람인지, 그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남왕국 유다에서 선포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긴 본문을 보았습니다만, 오늘 말씀에서는 본문에 관한 해석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1장 2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부터 예언자로 활동했다고 말합니다. 이때는 대략 주전 626년 정도가 되고, 역대하에 따르면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다음 해입니다. 열왕기는 요시야가 재위 18년에 종교개혁을 일으켰다고만 이야기하지만, 역대기는 그가 12년부터 종교개혁을 단행했다고 첨가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는 자주 말씀을 나눠왔기 때문에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예레미야와 연결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예레미야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소명을 받기 전까지 남왕국 유다는 아시리아의 속국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 소명을 받았다고 본다면, 그는 므낫세 또는 아몬이 다스리던 때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므낫세와 아몬은 철저하게 아시리아의 속국 체제를 유지했던 인물들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아시리아의 속국이던 시절에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명을 받았을 즈음에 팔레스타인 주변 국제 정세가 크게 변합니다. 아시리아의 앗수르바니팔의 죽음 이후 대제국이었던 아시리아가 완전히 무너져내리기 때문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사회개혁도 이런 국제 정세를 따른 조치였을 것인데, 국가 운영이라는 측면을 빼고 남왕국 유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시기는 100년 가까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아시리아가 멸망한 때입니다. 남왕국 유다가 드디어 독립을 맞이했던 순간입니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은 20여 년밖에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시리아가 붕괴되기 직전에 아시리아와 동맹 관계에 있던 이집트 제26왕조의 북진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네카우 2세는 아시리아를 돕기 위해 북진합니다. 그 원정의 기본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지만, 그는 본래 목적과는 다른 성과를 거둡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집트의 속국으로 만든 것입니다.

네카우 2세는 북진 중에 요시야를 죽입니다. 그리고 이집트로 회군하는 길에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힙니다. 남왕국 유다는 아시리아로부터 독립했다는 기쁨을 누리며 독립국 체제를 완전히 갖추기도 전에 이집트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속국 체제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도 되지 않아서 요시야 시절 동맹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호관계에 있던 바벨론이 남왕국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집트가 세워놓은 여호야김을 그대로 왕위에 세워두었지만, 그가 바벨론을 배반하자, 곧바로 남왕국 유다를 재침공합니다. 여호야김은 아마 이 침공 초기에 죽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넉 달 뒤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남왕국을 완전히 점령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 사후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시드기야가 다스리는 남왕국이 얌전히 바벨론의 속국으로 남아있었다면, 남왕국이 그렇게까지 붕괴하지는 않았겠지만,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였고 결국 남왕국의 다윗 왕조는 붕괴합니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하여 남왕국 유다는 철저하게 파괴됩니다. 이후 바벨론은 남왕국 유다를 다스릴 왕으로 서기관 사반의 손자 그달리야를 세웠지만, 그는 다윗의 혈족임을 주장하는 무리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시기를 살았습니다. 아시리아 속국 때에 태어나서 남왕국 유다의 독립을 보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집트의 속국이 되었고, 이는 다시 바벨론 속국으로 이어집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동안에 세워졌던 왕들은 아몬과 그달리야를 제외하고 모두 타국에 의해 죽임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요시야는 이집트에 의해 죽임당했고, 여호아하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의해 죽임당했고,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시드기야도 바벨론에 의해 죽임당합니다.

아몬과 그달리야도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진 못했습니다. 아몬은 통치 2년 만에 신하들의 배반으로 죽임당합니다. 다윗의 혈족은 아니지만,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그달리야도 일부 남왕국 사람들에 의해 죽임당합니다.

이런 상황을 본다면,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주전 626년부터 주전 586년까지 약 40년은 기쁨과 비통함이 교차되었던,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고 처음 활동했던 때는 남왕국이 독립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던 때입니다. 그런 순간에 그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는 예언을 선포합니다. 남왕국이 지금은 독립을 이루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의 책으로 보았을 때, 예레미야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책 중에서 어렵지 않은 책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예레미야는 특히나 복잡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갈 때 어떤 일관된 흐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는 시간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논리적 흐름에 따라 적혀있지도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특정 시점에서 했던 이야기들에는 그가 언제 했는지 모를 짧은 이야기들이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요시야 시절, 독립을 막 이루었을 때 정확히 어떤 선포를 했고, 이집트 속국일 때와 바벨론 속국이던 시절, 바벨론의 침공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선포를 했는지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선포했던 핵심을 한 가지 꼽는다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았을 때 남왕국 유다는 멸망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심판 이후에 남왕국 유다를 다시 세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이 이루어져서 모두가 고양감에 도취되고 민족주의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던 시절에도, 다른 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왕이 죽었을 때에도, 나라가 계속해서 어떤 나라의 속국이 되어 비통함에 가득 찼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 개인으로 본다면, 그와 의견을 달리하던 예언자 집단의 박해가 있을 때에도, 고위 관료들에 의한 박해가 있을 때에도, 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는 선포를 쉬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뜻을 전했을까요? 예레미야가 살던 시절에는 분명 국가에 속해있는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나라로부터 급여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기본 정책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언서들에는 그런 예언자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어쩌면 예레미야도 이들과 같이 편한 삶을 추구하며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예언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 예언자는 국가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주류 기득권에 속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기득권을 비판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분명 예루살렘에서 기득권이 누리던 호사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깃을 받기 위해 고향에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서기관 사반 집안과 친분을 쌓고 있었다는 점도 분명해 보입니다. 서기관 사반의 집안은 요시야 때부터 주요 업무를 담당하며 국가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이 사반의 손자 그달리야를 왕으로 세운 점을 본다면, 그 집안이 상당히 대단한 집안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사반의 집안과 연줄이 있었지만 이를 이용하며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연줄이 자신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 소명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술에 주셨기 때문에 그는 그 말씀을 온전히 전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했던 분이 있습니다. 유명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입니다. 그는 흑인 인권 운동을 하면서 비폭력 저항을 강조했습니다. 절대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당시 그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 반발했던 사람들은 백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흑인 사회에서 그를 비난하며 그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흑인 사회에는 폭력 저항을 외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영화로도 나온 말콤 엑스를 중심으로 한 저항 세력도 있었습니다.

폭력 시위를 지향하던 이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주도하는 시위를 방해했고, 끊임없이 위협하고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집에 폭탄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비폭력 저항 운동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받았던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명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예언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소명을 받은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소명을 실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쁨으로 가득찬 순간뿐만 아니라 슬픔의 순간에도, 어려운 순간에도 나 자신의 이익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펼쳐나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세상이 우리를 비웃으며 우리의 삶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 속에서 굽히지 않는 절개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며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명은 목회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삶의 희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여러분을 도우실 줄 믿습니다. 당신을 뜻을 펼치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이 땅에서 그 뜻이 잘 펼쳐질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은혜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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