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핑계 없는 무덤“깨어라! 힘을 내어라!”(이사야 52:1-6)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6.01 00:10
▲ 성령의 거룩한 옷을 입고 삶을 살아야 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이 세상이 누리고 얻으라고 부추기는 평안은 잠깐 누릴 수 있는 평안이고,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거짓 평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참 평안을 어떠한 대가도 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어진 이 평안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중에 우리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세우신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한국 크리스천 신앙에 무언가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절감했다. 관념으로서는 무엇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활 결단에서는 불의한 탐욕에 합류하는 것을 오히려 부득이한 것으로 아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만을 기른 것이 아닐까?”

어떤 말씀인가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선과 악,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에 대한 구별이 가능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것, 악, 거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했을 때 이런 변명을 늘어놓게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거 내가 모르는 게 아닌데, 내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면 부득이하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도 아실거야?’ 이런 말들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안정을 바라는 인간적인 욕망이 저에게는 ‘죽은 믿음’을 소유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성도님들도 오늘 예배 이후에 나는 어떤 핑계로 거룩하지 않은 것들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더 이상 저와 성도님들이 김재준 목사님이 말씀하신 ‘죽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삶을 돌이켜 ‘살아있는 믿음’, ‘생명력 있는 믿음’을 소유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내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이제 다시는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너에게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왔던 시간이 끝이 나고 있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새 삶에 맞는 옷을 입으라고 권면하십니다. 노예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힘을 내어라.’는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구문을 직역하게 되면, ‘힘을 옷 입으라.’는 말씀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옷 입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는 말씀이 됩니다.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었기에, 해방된 삶을 사는 사람답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옷을 계속 걸치고 있을 수 있게 계속해서 힘을 내어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전에는 노예의 정체성이었기에 할례 받지 않은 자, 부정한 자가 친구 하자고 찾아왔지만 이제 노예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음으로써 더 이상 그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물에는 더러운 것에 어울리는 것들이 살지만, 물이 깨끗해지면 전혀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수가 아님에도 여전히 죄수의 옷을 입고 있다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경찰이 머구리의 옷을 입고 사람과 재산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머구리가 경찰복을 입고 잠수 할 수도 없습니다. 바뀐 정체성에 맞는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새로운 삶 안으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들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힘을 내야 합니다. 거룩한 성에 사는 거룩한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스스로 힘을 옷 입어야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먼저 영적인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첫 구절에 “깨어라! 깨어라!”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와는 다른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옷을 걸치고 있다면 계속해서 유혹과 그릇된 욕망이 친구하자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옷,  하나님의 자녀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먼저 영적인 깨어짐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아님을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일할 때 입는 옷과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잘 때 입는 옷은 달라야 합니다. 보통은 더러워진 옷을 입고 그대로 이불을 덮고 잠에 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구나! 이제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릴 수 있음이 바로 영적인 깨어짐입니다. 이런 영적인 깨어남을 통해 하나님 자녀로 사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포로의 삶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의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이사야는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선포합니다. “2 예루살렘아, 먼지를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포로 된 딸 시온아,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내어라.”

신분이 변화되었기에, 이전에 노예로서 먼지와 함께 생활했던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보좌에 앉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노예의 상징인 목에 감겨있던 사슬을 풀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을 영적인 각성을 통해 스스로 이루어 내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저와 성도님들로 하여금 여전히 세상의 노예로 살도록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전히 벗지 못하는 있는 옷은 무엇입니까? 풀어야 할 목의 사슬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옷을 바꿔 입어야 합니다. 헛되고 그릇된 욕망과 유혹들을 털어내야 합니다. 이것 아니면 살 수 없을 거라고,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기며 목에 감겨져 있던 노예의 사슬을 풀어내야 합니다.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합니다. 누구도 이 일을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어나서 해 내야 합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을 보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며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요한계시록 3:20-22)

문을 열고 들어와 주시면 참 좋을 텐데, 문을 스스로 열라고 하십니다. 노예의 옷이 아닌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혀 주시면 좋을 텐데, 옷을 스스로 갈아입으라고 하십니다. 목에 있는 사슬을 대신 끌러 주시면 좋을 텐데, 사슬도 스스로 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깨어서, 힘을 옷 입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인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오늘날의 포로 된 삶은 어떤 모습이고, 그리스도인 된 삶,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포로 된 삶은 죽은 삶입니다. 앞서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글을 읽어드리며 ‘죽은 믿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면 ‘죽은 믿음’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요한계시록 3:1-3)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행위가 아닌 삶은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라고 그래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헛된 유혹과 욕망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죽어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로마서 8:13-16)

스스로 깨어 그리스도인다운 옷을 입어야 하지만 참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행이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이 일을 완성하도록 도우십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성령은 노예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 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거룩해 지도록, 아름다운 옷을 입도록 안내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5-1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진리의 영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진리의 영이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단할 때 노예의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값없이 팔려 갔으니, 돈을 내지 않고 속량될 것이다.” 4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백성이 일찍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머물러 살려고 하였으나, 앗시리아가 까닭 없이 그들을 억압하였다.” 5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 바빌로니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의 백성이 까닭도 없이 여기로 사로잡혀 왔고, 지배자들은 그들을 조롱한다. 날마다 쉬지 않고 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으니,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여야 하겠느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6 “반드시 나의 백성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반드시 나의 백성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말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값없이 팔렸고, 까닭 없이 억압당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살다보니 세상의 노예가 되어 있었고, 죽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날마다 쉬지 않고 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으니,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여야 하겠느냐?”, “반드시 나의 백성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반드시 나의 백성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말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옷, 아름다운 옷을 입는 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깨어 스스로 그리스도인다운 옷을 입을 그 날은 올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십시오. 우리에게 실패는 없습니다.

더러운 자리를 털고 보좌에 앉으며, 노예의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오로지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영광 돌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