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신앙을 따르는 입지혜로운 말(잠언 10:20-22)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6.06 00:34
▲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 그러나 그런 지혜의 왕이 왕국의 분열을 막지는 못했다. ⓒGetty Image
20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21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오늘은 잠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잠언 1장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쓴 잠언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잠언 30장은 아굴의 잠언이고, 31장 1-9절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르무엘이라는 왕에게 그의 어머니가 전한 잠언입니다. 또 25장 1절을 보면, 이 잠언이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히스기야 왕 때에 편집되었다고 말합니다. 히스기야와 솔로몬 사이에는 200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히스기야 때에 편집된 잠언이 전부 솔로몬의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또 역사적으로 솔로몬이라는 왕이 그렇게 지혜로운 왕이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열왕기에 나타난 솔로몬의 모습을 보면 지혜로운 왕이라고 칭송하는 내용도 있지만, 나라의 분열을 일으킨 악한 왕의 모습도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이라고 말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특정 시기 남왕국 유다의 프로파간다였고, 그런 일이 잠언 25장에 나타난 것처럼 히스기야 때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잠언을 솔로몬이 썼는가 쓰지 않았는가는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잠언이 솔로몬의 이름을 등에 업고 성경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 손에는 잠언이라는 격언집이 경전으로 놓여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는지 살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은 여러 격언이 묶여있는 책입니다. 격언들은 주제나 형태에 따라 모여 있기도 하고 단순하게 음가에 따라서 모여 있기도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격언을 검색해보면 많은 격언을 올려놓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희망을 주는 격언’, ‘힘든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한 격언’ 이런 식으로 주제에 따라 격언을 모아놓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격언이 시작하는 글자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기도 하고, 격언을 말한 사람의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기도 합니다. 잠언은 이런 다양한 방식이 한 권의 책에 혼합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한 가지의 분류법에 따라 정리한 책이 아닙니다.

잠언은 여러 격언의 모음집이기 때문에 때로 각각의 격언을 연결했을 때 약간의 혼란을 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재산에 대한 격언들이 그렇습니다. 잠언은 재산 모으기에 급급한 행동을 비판하지만, 재산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재산은 하나님의 복으로 받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10장 15절에 나타난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는 표현이 그 예입니다. 이런 인식은 반대로 가난을 하나님의 벌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10장 15절 하반절은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지만 잠언이 가난을 무조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잠언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런 특징을 생각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격언들이 특정 조건들 안에서 묶여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면서 잠언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잠언의 격언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읽으면 안 됩니다. 각각의 격언을 떼어놓고 본다면, 이는 그냥 현실의 조언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아무 상관없는, 명사특강에서 들을 수 있는 격언이 됩니다.

잠언은 여러 격언을 모으면서 중간 중간에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격언을 넣어놨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묶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따르는 이가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고, 의인이 되는 것이며 잘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잠언의 말씀은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열심히 살기 위한 이들을 위한 격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 지침이 됩니다. 좋은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 행해야 하는 교훈들이 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잠언을 읽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습니다. 10장에서 시작된 솔로몬의 잠언은 22장 16절까지 이어집니다. 그중에서도 10-15장은 한 구절 안에 의인과 악인, 잘 되는 사람과 못 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을 비교하는 방식의 격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잠언 10-15장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여 의인은 잘 살고 악인은 못 산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의인, 믿지 않는 사람은 악인이라는 구분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을 믿으면 잘 살고 믿지 않으면 못 산다는 의미로도 이어집니다.

이런 구분은 솔직히 좋은 구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반면에 정말 나쁜 사람들인데도 경제적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는 비단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욥과 시편의 시인이 하나님께 던졌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모두 여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 믿는다고 해서 어렵게 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현실성 없는 구분을 적어놓고 있는 잠언의 말씀은 틀린 것일까요? 저는 이런 구분보다 잠언 10-15장이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바로 의인과 악인의 ‘입’입니다.

말 또는 입에 대한 격언은 잠언 전체에 나타납니다. 그 모든 구절을 살필 것은 아니기 때문에 10장에 나타난 내용을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의인의 입은 생명 샘입니다(11).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습니다(13,31).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습니다(19). 의인의 혀는 순은입니다(20).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압니다(32).

악인의 입에는 독이 있습니다(6,11).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합니다(8,10,14).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이고,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18). 말이 많으면 허물을 감추지 못합니다(19).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하고(31),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합니다(32).

하나로 묶인 잠언의 말씀 속에서 의인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각각의 격언들에 나타난 항목들을 대치시키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의인과 악인을 뚜렷하게 구분해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바른길로 행하는 자이며, 입술에 지혜가 담긴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고 기쁨을 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앞서 잠언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앙 지침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잠언 10장의 본문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 하나님의 계명을 간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와 함께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항목들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신앙 지침으로 삼아야겠지만, 오늘은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점에 좀 더 주목하고자 합니다. 잠언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지혜로운 말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말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복음 전파의 언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 의미는 32절에 나타난 ‘기쁘게 할 것을 아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보통 타인을 향합니다. 그렇기에 먼저 우리는 남을 향해 어떤 말을 던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말인지, 다른 이에게 지혜를 전하는 말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비판적인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적인 말은 악한 말과는 다릅니다. 악한 말은 악한 마음을 담은 말입니다. 상대방이 잘못되기를 바라며 내뱉는 말, 상대방이 상처받기 바라며 내뱉는 말입니다. 또 남보다는 나의 감정만을 앞세운 말입니다.

그런 말은 31절의 표현대로 패역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19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보다 자기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입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기에 독을 머금은 입술이 되며, 그 독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상처를 줍니다.

남에게 선한 말만 하는 일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저 역시도 좋은 말, 선한 말만 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때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악한 말들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람은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악한 마음을 드러내는 말을 계속해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한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이고, 잠언이 우리 손에 놓여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지침이라면 우리는 이를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말은 보통 타인을 향합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 자신을 향할 때도 있습니다. 스스로 다짐하는 말들,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합니까?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테니까 더 열심히 살아가자고 말합니까?

나 스스로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계산과 이해타산적인 생각만을 스스로에게 전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스스로를 억압하는 이야기들을 던지고 있습니까?

자신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생각을 품느냐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향한 우리의 생각은 지혜로운 생각이어야 합니다. 잘 안되고, 어렵고, 힘듦이 전제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어야 합니다.

앞서 의인을 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으로 대치했던 것처럼 잠언 10장에 나타난 의인의 칸에 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을 대입해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향해서, 또 나를 향해 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시며, 부지런하여 부하게 되며, 복이 임하고, 남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그 걸음이 평안하고, 수고함으로 생명을 얻고, 남들에게도 이를 가르쳐 생명의 길을 걷게 하며, 원하는 것을 얻게 되고, 품은 소망을 이루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에 나타난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셔서 그를 부하게 하시며, 그에게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기길 바랍니다. 우리의 입이 기쁨을 이루는 말만 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으시되, 근심 없는 복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이런 삶을 위해 노력하실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