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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예수님을 시인하는 삶”(누가복음 12:8-1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6.08 16:47
▲ Martyrdom of Polycarp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안이 이미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이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착각하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평안을 얻기 위해 헛되이 사용합니다.

‘지금보다 살림이 좀 나아지면 평안해지려나, 더 건강해지면 평안해질 수 있을까, 자녀의 삶이 달라지면 평안할까’ 이런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라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안이 이미 우리 내면에 주어졌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떠올려야 합니다. 

주어진 평안을 누리고자 용의를 내면, 성령님께 주어진 평안을 누리고자 기도하면, 그토록 원했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날마다 이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 평안을 얻었기에 성령님과 함께 다음 단계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지난주 그리스도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체성에 맞게 옷을 입는 다는 건, 하는 일도 달라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음 단계란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삶을 이어 사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는 삶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기 전까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다면,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함께 읽은 누가복음 본문 8-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자신의 삶, 하나님 나라 운동의 삶이 제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끊임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시고,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과정 속에서 미래에 제자들에게 닥칠 위험을 예견하시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시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과 자신이 한 모든 일들을 시인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말씀들을 부정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이런 자들이 회당, 통치자, 권력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런 고난과 죽음의 위협을 겪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자들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이 당시 종교, 국가 권력자들의 통치 방향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삶 자체가 불의한 종교 지도자들, 국가 권력자들에게 “당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드러나게 하듯, 불의한 삶이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세상으로 하여금 올바른 방향을 나아갈 수 있는 화살표의 역할이 되었기에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 하시 듯이 제자들은 종교 법정에, 세상 법정에 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예수님이 먼저 가셨습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는 다른 꿈을 꾸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꿈과 목적 때문에 우리 교단의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법정에 세워져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통일운동을 하던 문익환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법정에 세워졌습니다.

이뿐인가요? 우리 교단이 ‘축자영감설’에 반대하며 분립되었을 때 김재준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목사님들이 종교 법정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분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합니다. 잘못되고 불의한 기득권 종교 권력과 세상 권력에 맞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간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앞으로 우리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을 구체화시켜 가는 이들, 보이지 않는 길을 볼 수 있는 길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8절 말씀을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조롱하고, 하는 일에 대해 반대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미 이루어 놓은 것들이 많은 자신의 땅에서 낯선 땅으로 이주해야 했을 때 얼마나 두렵고 또 황망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이루기 위해 믿음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다른 이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일들을 구체화시키는 삶, 많은 믿음의 선배들처럼 시대를 거스르며, 시대를 앞서가며 정의, 평화,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삶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요, 예수님처럼 사는 삶이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과 말씀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본문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데요. 10절입니다.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22장의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자를 거슬러 말했을 때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 척 했을 때에는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이 용서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활동과 말씀에 관하여 부인했을 때 에는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과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은 거짓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12장 1절에 예수님은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할까요? 세상 속에 안주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과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리스도인이야.’라고 생각하는 위선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랍비 마커스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자 하지만 이루어 갈 수 없는 어려운 삶에 대해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더 공평한 세상, 더 아름다운 우주에 대한 꿈을 잠시라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꿈을 꾸는 행복한 순간에 숭고한 분의 약속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곧 그 순간은 지나갑니다. 따라서 그 꿈도 사라집니다. 우리의 경제생활은 우리에게 큰 요구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꿈의 세계는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한 번 현실적이며, 매우 자주 아름다움과 색채가 결여된 우주를 봅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커다란 꿈을 부여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깊이 꿰뚫어보며 사태를 보다 지속적인 방법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 짧고 덧없는 이 순간을 받아들여 재구성하고, 그것을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형태로 재창조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예언자들은 비전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아인슈타인과 랍비>

이 설교에 대해 랍비 나오비 레비는 “꿈을 지속적인 비전으로 바꾸는 것과 그 비전을 실현하는 일은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도 아니라고 이해했다. 그것은 분투하는 것인데, 일상에서 분투하는 것이며, 옳은 것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누가복음 8: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과 재물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서, 열매를 맺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누가복음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누가복음 12:22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방금 읽어드린 누가복음의 말씀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염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을 때가 참으로 많다는 말씀입니다. 랍비 마커스도 설교를 통해 이런 염려들로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꿈을 부여 받은 사람들입니다. 꿈을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꿈이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삶,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도록 이끌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자신의 염려와 하나님이 주신 꿈 사이에서 분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11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12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스스로에 대한 염려와 거짓 이야기들 속에서 흔들릴 때 어떻게 판단하고, 행하고, 말해야 할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9:25-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선 누가복음 9장에서 이미 예수님과 성령을 시인하는 삶에 관해 설교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반복해서 말씀하신 다는 건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온 세상을 얻는 것보다, 예수님의 삶과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너의 뜻을 이루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인하다의 뜻은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하다.”입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며 산다는 건,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과 말씀이 옳다는 것, 진리라는 것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초도제일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올바른 방향의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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