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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삶의 자리를 바꾸라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6.12 23:17
▲ David Roberts, 「The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 (1850) Wikipedia
일어나 떠나가라! 여기는 쉴 곳이 아니다. 더러우니 파괴되겠고 파괴가 극심할 것이다.(미가 2,10)

미가는 그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한 예언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왕정 도입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지배계층만은 아니지만 특별히 그들의 부패와 탐욕은 통제불능의 것이 되었고, 악을 꾸미고 집행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재앙으로 응징할 계획을 세우시고, 예언자들을 보내 경고하십니다. 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계속 예언자들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언자를 보내신다는 것이 저들에게는 심판의 지연이나 심판의 부재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탓에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데 대담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전 8,11). 하나님은 사람에게 돌아올 기회를 닫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인내를 악용할 수 있는 교활한 지혜가 있습니다.

그들은 듣고 싶지 않은 예언자들이 있으면,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아마도 거짓 예언자들일 것으로 보이는 자들을 끌어들이며 그들은 이런 것들을 예언하지 않는다고 읊어댑니다. ‘그들은’ 수치스럽게 물러나게 되는 일이 없다고 회유합니다.

그들은 예언자의 입을 빌어 심판을 선언하는 하나님을 향해 빈정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급하냐? 이게 그의 행위냐? 이런 세태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멸망의 뜻은 굽히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듯 위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떠나거라! 여기는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다. 그곳이 그들의 죄 때문에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땅은 거기 거주하는 자들이 만일 그곳을 ‘더럽히면’ 그들의 거주권은 박탈되는 곳입니다(레 18,24-30).

그런데도 자신들이 계속 눌러 살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일어나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공간적인 이동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그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그곳을 떠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파멸에 대한 말씀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일어나 떠나기 위해서는 탕자처럼 자신의 현재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그 후 스스로 ‘일어나 가자’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눅 15,17-19). 그런데 이들은 악의 열매가 주는 달콤함과 거짓 예언자의 위로에 취해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반성을 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어둠으로부터 사람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말씀뿐입니다.

말씀을 따라 일어나 떠날 수 있는 우리의 오늘이기를. 지혜와 통찰로 거짓 예언자들의 위로와 안심을 구별하고 거부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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