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 3월 1일에 행한 칼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 ⓒ“Das Leben des Karl Barth: Stationen seines Lebens in Bildern” https://www.ekd.de/karl-barth-bildergalerie-41314.htm

바르트는 1920년대 중반 이후 40여 년간 가톨릭과 대화를 계속하였다. 그동안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젊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바르트의 신학과 사상을 따르는 많은 훌륭한 신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다.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sar), 앙리 부이야르(Henri Bouillard), 한스 큉(H. Küng) 같은 이들은 우리 귀에 익은 대표적인 가톨릭의 바르트 신학자들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칼 바르트

1963-65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에 미친 바르트의 영향력을 역력하게 보여준다. 1966년 봄과 여름 동안, 바르트는 바티칸 공의회의 문서들을 검토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운동에 대해서 바르트는 여전히 변화 없이 남아 있는 가톨릭의 모든 전통적인 요소들보다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나는 진지하고 강력한 운동들을 기뻐하는 자들 가운데 자신이 속한다는 것을 행복하게 여겼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 나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조크를 하면서, “우리가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거나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로 다른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향’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각각의 교회에서 한 분 주님을 믿고 그를 섬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한편 그러한 ‘개종’이 개신교측에서보다 ‘새로운 가톨릭교회측’에서 결정적으로 더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토로한다. “언젠가 로마 가톨릭교회가 단순히 우리를 복음의 말씀과 정신을 기초로 하여 교회 갱신의 문제에서 우리를 추월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가 되며, 그리고 선한 목자의 음성이 우리에게서보다 그들에게서 더 명료한 반향이 울려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바르트는 확실히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나는 갱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정말, 그는 “나는 그곳에서 만연하는 고통을 아쉽게도 너무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향의 의미에서 교회의 갱신에 대하여 바랐던 것은 가톨릭 진영의 ‘진보적인’ 그룹의 관심사들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또한 그들에 대해서도 어떤 유보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어떤 가톨릭교도들이 아쉽게도 너무 개신교적이 되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16세기 이래 우리와 함께 했던 오류들”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했다.(1)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에 대한 바르트의 관심은 1966년 가을에 절정에 달하였다. 바르트는 가장 정중한 초대를 받았다. 바르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서들을 놓고 다양한 그룹과 토론하였다. 그는 가톨릭의 신학자들과 깊은 토론을 통해서 그들의 개혁안이 로마 교황청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사실을 잊지 않았다: “주님, 왕 그리고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그들에게 거듭 혼란을 일으켰다: “만약 마리아가 ‘평신도 사도직의 모델’과 ‘사도들의 여왕’이라고 불려진다면, 이것은 평신도 사도직이 교회의 다른 모든 사도직의 형식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2)

바르트의 로마 체류 기간에 일어난 극적인 절정은 바티칸에서 그가 교황 바울 6세를 만난 일이었다. 바르트는 교황이 “정말로 팔을 벌려 우리를 맞이했다”고 술회한다. 바르트는 그를(바울 6세)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그와의 만남은 다소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나를 약간 칭찬한 후에,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베드로의 열쇠를 지니고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 논평하기 시작했다.”

바르트는 여기서 마리아론에 대한 곤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과 기능의 원형으로는 하늘의 여왕으로 승천한 주님의 여종(ancilla Domini) 보다는 요셉이 더 적합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교황은 이 말을 듣고 바르트가 장차 그 문제에 대하여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바르트는 교황에게 자신의 책 4권을 주고, 교황은 바르트에게 바티칸 문서 사본을 주었다. 바르트는 교황을 만난 뒤에 요한 23세와 비오 12세의 무덤을 찾았다. 이 방문에서 그가 얻은 일반적인 인상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역동적이었다”는 것이었고, 하여튼 “교황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다!”는 것이었다.(3)

“떨쳐 일어나 방향전환하고 고백하며”

바르트는 1968년 12월1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마지막 원고는 그가 죽기 바로 전날 저녁 9시까지 작성한 “떨쳐 일어나, 방향전환하고 고백하며”라는 제목의 미완성 원고이다. 이 유고는 에큐메니칼 기도일인 1969년 1월18일에 취리히의 바울연구소에서 개최되는 모임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기독교인들 앞에서 강연하려고 작성한 원고였다.

이 임무를 위해 바르트는 선뜻 한 주제를 택했다. 그것은 거기에서 그의 강연을 듣게 될 양편의 청중 모두에게 지배적으로 중요한 방향에 대한 것이었고, “떨쳐 일어남-방향전환-고백”이란 제목이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좀 더 결단의 행위와 역동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서 그 제목을 조금 달리하여 “떨쳐 일어나 방향 전환하고 고백하며”라고 바꾸었다.

여기서 바르트는 가톨릭과 개신교도 모두에게 “떨쳐 일어나, 방향 전환하고, 고백하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교회개혁운동의 이 특별한 특징이 오늘날 교회에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이한 것은 바르트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를 의도적으로 각각 ‘베드로 가톨릭’과 ‘개신교 가톨릭’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여기에서 특별히 그 운동이 로마 가톨릭교회(나는 차라리 베드로 가톨릭이라 부르겠는데)와 개신교 가톨릭(우리도 또한 가톨릭교회라 할 수 있으므로)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났고 보여지게 되었다는 것에 특히 관심이 간다. ‘개신교’ 교파에서보다 ‘베드로’ 교파에서 임시적으로나마 더 가시적이며 그럴싸하게 보인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어쨌거나 교회에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4)

짧은 미완성 원고에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의 일치와 개혁에 대한 바르트의 간절한 소망이 절절히 나타난다. 세 부분으로 구분된 강연원고에서 바르트는 단지 첫 부분만을 완성했을 뿐이다. 그는 이 첫 부분에서 교회가 “무엇이 지금까지 차지하던 자리에 들어서야 하는가를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일은 교회의 떨쳐 일어남과 더불어 진지하고 믿음직스럽게 될 수 있을 것이다”(5)고 말한다.

우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냉철한 분석과 통렬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그러나 바르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이 취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옳다고 확신하면서, 영적으로 아주 강퍅 일변도를 달리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를 향하여 로마 가톨릭 내부에서 일고 있는 개혁 운동을 본받아 새로운 교회개혁을 일으키자는 호소를 하기도 했다.(6)

로마가톨릭과의 중단 없는 대화를 위해

바르트가 1966년 가을 바티칸을 방문하였을 때, 진지한 신학적 대화를 나누었던 가톨릭 신학자들 가운데는 현 교황인 요셉 라칭어(J. Ratzinger)가 있었다.(7) 당시 라칭어는 바르트의 동료 신학자 칼 라너(K. Rahner), 폰 발타자르, 앙리 부이야르, 한스 큉, 제멜로트(O. Semmelroth) 등과 함께 가톨릭 내에서 진보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대학교수로 봉직하는 동안 과격한 학생운동을 목격하면서 라칭어는 점점 보수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

그는 1977년 바울 6세에 의해 뮌헨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바울 6세는 3개월 후에 그를 추기경에 임명하였다. 1981년 11월에는 요한 바울 2세에 의해 ‘신앙교리성 장관’이 되었고, 이후 그는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한결같은 강경노선을 추구한다. 그는 해방신학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L. Boff)와 미국의 찰스 쿠란(C. Curran) 등 진보적인 신학자들을 압박하였다. 2005년에 라칭어는 요한 바울 2세를 뒤이어 교황이 되었고, 교황명을 베네딕토 16세라고 칭하였다.

저 베네딕토 16세가 진정한 기독교 교회는 로마 가톨릭 뿐이라는 내용의 문서 공표를 승인하여 전세계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문서의 원본은 2000년에 개최됐던 ‘신앙 교리를 위한 회합’의 참가자들이 작성한 것인데,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추기경 신분으로 이 회의를 이끌었다. 공표된 16쪽짜리 문서는 이 중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추려내 각각 5개의 질문과 응답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문서는 “그리스도는 지구상에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며 “로마 가톨릭이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밝히고 있다. 이어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서 갈라진 개신교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가톨릭 내 자유주의자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과를 잘못 해석해 왔다는 현 교황의 평소 신념과 같은 맥락에 있다. 교황은 공의회의 의미를 실천하려면 교회가 과거와 단절할 것이 아니라 전통을 새롭게 되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서가 공표되자 신교도들은 교황이 권력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며 비난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은 교황청에 보낸 서한에서 “로마 가톨릭이 진정성을 갖고 개혁교회들과 대화하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항의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이번 문서가 지난 수년간 기독교 단합을 위해 힘써 왔던 교황청의 노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얼마 전에는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겠다는 내용의 ‘교황 자의교서’를 발표해 가톨릭교회 내의 자유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8)

만약 바르트가 교회의 개혁에 대하여 자신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베네딕토 16세(요셉 라칭어)의 변화된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베네딕토 16세의 수구-반동적인 태도로 인해 교회간의 갈등이 재연되지나 않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바르트의 소망처럼, 현재의 가톨릭교회가 지금의 모습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방향전환하고 고백하는”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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