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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할 줄 알 때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시편 97,1-12; 디모데전서 6,3-12)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1.06.24 16:23
▲ 자족은 체념이 아니다. ⓒGetty Image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지요? 야훼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생명체들은 그의 섭리를 따라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합니다. 물론 현재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처음의 질서는 아닙니다. 평화의 질서 대신 폭력의 질서가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질서는 그 질서와 맞서서 세상을 지탱시켜주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사실을 보고 노래합니다. 시인의 눈이어서 보았을까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눈은 모든 사람의 눈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만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경우 닫혀있을 뿐입니다. 그 눈이 열려 우리 모두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시인의 감성으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는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그는 그 나라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말하면서 정의와 공정이 그 보좌의 기초임을 봅니다. 그는 보좌의 재질이나 모양이 아니라 그 보좌의 내용과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이것이 시인의 눈이고 시인의 통찰입니다. 이로써 그는 그 자리가 단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의 정의와 공정을 실현시키는 자리임을 보여줍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공정성입니다. 이 문제는 현대에 비로소 제기된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문제이고, 그 문제가 제기되는 까닭은 사회적 또는 자연적 장벽이나 제한이 있고 각 사람의 능력과 조건에 차이가 있어서입니다. 따라서 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공평 내지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정성을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현재 그 말은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오히려 확대시키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정은 하늘의 것으로 이 땅을 위한 것입니다. 하늘이 그의 정의를 선포하고 땅은 그의 평화를 보고 기뻐합니다.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고 공명을 일으킵니다. 폭력과 불공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늘과 땅의 이러한 조응관계를 읽어낸 시인의 눈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현실과 괴리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지요?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우리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하는지요? 아니면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우리 삶의 등대로 삼는지요?

야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 답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야훼를 사랑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시인을 따라 그와 같은 하나님의 현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이기를 빕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것은 현대에서 악의 가장 중요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을 통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악을 미워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악을 미워하는 일은 때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손해를 본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악은 달콤한 말로 또 그럴 듯한 말로 다가오기에 몰라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악을 미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는 말씀도 있어 혼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눅 6,27-36; 마 5,38-48). 이 혼란은 죄와 죄인을 구분하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용서와 징계/심판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처지에 놓인 원수나 악인을 지나치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일단 그 혼란은 조금이나마 걷힐 수 있겠습니다.

쉽지 않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자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악인의 손에서 건지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악을 분별하고 악을 멀리할 수 있도록 그의 마음에 빛을 뿌리고 그 삶에서 기쁨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러 가지 장치로 그의 사람들을 무장시키시는 것은 악과의 싸움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홀로 싸움터에 내보지 않으십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 싸움을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그들이 이 싸움을 늘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에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자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여러 가지 해롭고 어리석은 탐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설마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로 현대는 맘몬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잘 압니다. 모든 가치들이 돈 앞에 힘을 잃었습니다. 이것을 좇는 사람들은 하나님도 맘몬의 종으로 여깁니다.

또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보이는데 그 결과는 자못 심각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수 없게 되기에 그렇습니다(약 1,20). 그러한 분노는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면, 우리로서는 우리의 마음이 자족하는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뿌리는 빛과 기쁨이 이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빛은 자족을 위한 빛과 자족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자족은 불공평과 불평등을 체념하듯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그것이 악임을 인식하고 정의와 공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따라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투신할 수 있습니다. 폭력의 질서에 가려진 하나님의 질서를 확대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해 억압하고 약탈하는 맘몬들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자족할 줄 알 때 우리의 생활은 바뀌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족할 줄 알 때 우리는 고통당하는 약자를 돌아보는 온유하고 넉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족할 줄 알 때 우리는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자족할 줄 알 때 우리의 경건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고 맘몬의 세속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자족함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우리 가운데 세워지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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