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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변화“나를 비워 복을 얻다”(창세기 32:22-3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6.29 17:33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이미 우리 안에 주어졌습니다. 날마다 그리고 매순간 이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머리를 하늘에 두고 몸뚱이를 곧게 하여 하늘에 가까우려고 애를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글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목적이 있다면, 주기도문으로 고백하듯이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먼저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는 알게 된 하늘의 뜻을 이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비워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를 계속해서 듣지만, 막상 어떻게 나를 비워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야곱이 등장하는 창세기 본문을 통해 어떻게 나를 비워낼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탈취자, 속이는 자’ 등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 뜻처럼 태어날 때부터 먼저 태어나기 위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습니다. 창세기 25:24-26a “달이 차서, 몸을 풀 때가 되었다.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하였다.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꾀를 내어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25:31-33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에서가 말하였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야곱이 말하였다.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그러자 에서가 야곱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판다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의 이익에 있어서는 능동적인 사람이었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인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인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삼촌의 집에서 일했습니다. 창세기 29:26-27 “라반이 대답하였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그러니 이레 동안 초례 기간을 채우게. 그런 다음에 작은 아이도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에 자네는 또 칠 년 동안 내가 맡기는 일을 해야 하네.’”

야곱은 장인의 방해 속에서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1:6-7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장인어른의 일을 해 드렸소. 그러나 장인어른께서는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시면서, 지금까지 나를 속이셨소.” 장인은 계속해서 속였지만, 야곱은 지혜를 내어 자신의 재산을 불렸습니다.

야곱은 분노하여 자신을 죽이려 하는 형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32:16-20 “야곱은 이것들을 몇 떼로 나누고, 자기의 종들에게 맡겨서, 자기보다 앞서서 가게 하고,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라고 일렀다. 야곱은 맨 앞에 선 종에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서가 너를 만나서, 네가 뉘 집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며, 네가 끌고 가는 이 짐승들이 다 누구의 것이냐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이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의 것인데, 야곱이 그 형님 에서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여라.” 야곱은, 둘째 떼를 몰고 떠나는 종과, 셋째 떼를 몰고 떠나는 종과, 나머지 떼를 몰고 떠나는 종들에게도, 똑같은 말로 지시하였다. “너희는 에서 형님을 만나거든, 그에게 똑같이 말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인의 종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야곱이 이렇게 지시한 데는, 자기가 미리 여러 차례 보낸 선물들이 그 형 에서의 분노를 서서히 풀어 주고, 마침내 서로 만날 때에는, 형이 자기를 반가이 맞아 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과 지금까지 말씀드린 야곱의 삶을 들어서 알 수 있듯이 야곱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삶이 우리의 삶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해 보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해 살아온 야곱의 삶과 우리의 삶이 그렇게 달라 보이지는 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삶이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야하니 때때로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요? 

그래서 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야곱은 어렴풋하게 자신에게 나타난 낯선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밤새도록 씨름을 하여 ‘확실한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24-26절입니다.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야곱은 자신의 불확실한 삶에 확실한 것을 얻고자 동이 틀 때까지, 심지어 놓아달라는 요구에도 놓아주지 않으면서 축복을 요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야곱의 열심을 보고서 축복을 얻으려면 야곱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련회를 산으로 가게 되면 수련회를 인도하는 분들이 나무를 붙들고 학생들에게 기도를 시키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이긴 것처럼 나무뿌리가 뽑힐 때까지 기도해서 축복을 얻어내라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는 잘못된 방향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못 해석한 결과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일이 야곱에게 일어나나요? 25절입니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은 축복을 얻는 대신에 자신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 평생을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야곱은 축복을 얻은 대신에 평생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야곱이 축복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왜 천사는 하필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을까? 본문에서 허벅지 관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속이는 자, 탈취하는 자’의 이름을 가진 그리고 그 이름의 뜻만큼이나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야곱이라는 존재가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28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전에는 자신의 목적과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속이는 자, 탈취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이 보호함을 받는 자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성경 속에는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이름이 바뀐 사례들이 있습니다. 사래에서 사라가 되기도 하고,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기도 합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아스라엘로 바뀐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라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 바로 야곱이 받은 기도의 결과물이고, 축복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너의 삶을 인도하신다!’, ‘이제는 하나님이 너의 삶을 보호하신다!’ 이런 확신 속에 사는 삶이야 말로 축복인 줄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야곱의 환도뼈,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다는 기록입니다. 내가 죽어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를 죽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이처럼 자신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방향으로 향해야 합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죽임으로, 나를 비움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 축복입니다.

비록 평생 다리는 절개 되었고, 여전히 형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지만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형을 만나기 위해 뒤에만 숨어 있던 야곱이 맨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이름을 받기 전의 야곱은 기도는 했지만 여전히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고 의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32:9-12 “야곱은 기도를 드렸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족에게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 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부디, 제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형이 와서 저를 치고,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죽일까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너의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기도의 내용이 불평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을 받은 야곱은 자신이 드렸던 기도를 의심이 아닌 확신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중심이 되었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이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32 밤에 나타난 그가 야곱의 엉덩이뼈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신비 체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어야 하고, 자신을 비워내야 함을 날마다 다짐하지 않았을까요?

저와 성도님들도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존재의 변화라는 축복을 야곱이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동시에 평생을 다리 저는 사람이 되었음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자신을 비우는 철저한 삶의 전환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에게 무엇이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됨이 믿어지는 것, 확신하게 되는 것이 바로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내가 이끌어 가는 위태위태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 가심을 믿기에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야곱과 같이 전심으로 기도하여 자신을 비워냄으로 비워진 자리를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의 말씀과 은혜로 채우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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