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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삼각형, 성소수자들이 당한 폭력의 상징독일 나치 절멸수용수에서 갇혔던 성소수자들
이정훈 | 승인 2021.06.29 17:40
▲ 나치에 의해 멸절수용소에 수용된 성소수자들 ⓒGetty Image
“너와 내가 반드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독일 민족은 반드시 생존해야 한다. 또한 독일 민족은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삶이 곧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남자가 아니고서 싸울 수가 없다. … 호모 혹은 레즈비언 관계를 즐기는 자들은 우리들의 적이다.”
- Burkhard Jellonnek, 『Homosexuelle unter dem Hakenkreuz: Die Verfolgung von Homosexuellen im Dritten Reich』 (Schöningh, 1990)

1928년 5월14일 독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일명 ‘나치’의 대표이자 총리와 대통령을 겸했던 20세기의 악인 아돌프 히틀러가 뭔헨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이다.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들을 향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던 히틀러가 본격적으로 이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 것이다. 왜 히틀러는 갑자기 돌변하게 되었을까?

가장 가까운 친구에서 적으로

익히 알려진대로 히틀러는 원래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적 문제들을 이들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랬던 히틀러가 성소수자들에게 등을 돌리게 된 것은 내부적인 문제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즉 히틀러의 친위대에 가까웠던 Sturmabteilung, 즉 돌격대와의 충돌이었다.

이탈리아 검은 셔츠단을 모방해 갈색 셔츠를 입은 이 돌격대는 일종의 정당 경호 단체였다. 이 단체의 중요 구성원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이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반대 세력의 테러를 막고 히틀러를 지키는 게 주임무였고, 유대인 상점 앞에서 불매 운동을 하거나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 나치에 악의적인 인물이나 언론사에 테러를 가하는 등 나치의 테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돌격대가 처음부터 히틀러의 친위대 성격은 아니었다. 속된 말로 어중이떠중이 집합소 같았던 돌격대를 그야말로 친위대 성격으로 격상시킨 인물이 ‘Ernst Julius Röhm’(에른스트 율리우스 룀)이었다. 히틀러를 호칭할 때 우리말의 ‘너’에 해당하는 독일어 ‘du’로 호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룀이었다.

히틀러와 룀은 300만에 달하는 돌격대를 독일 국방군(당시 이름은 Reichswehr)을 대체하여 새로운 독일의 정규군화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했다. 1934년에는 독일 국방군을 돌격대에 합병해 “진정한 인민의 군대”를 구성하려고 했다. 독일 국방군은 돌격대를 거리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오합지졸로 간주했고, 더욱이 돌격대 지휘부를 향한 혐오가 짙게 깔려 있었다.

즉 룀과 다른 돌격대 지도자들의 동성애적 경향이었다. 1931년 “뮌헨 포스트”는 룀의 편지를 몰래 입수해 그의 동성애적 경향을 폭로했고, 이는 국가적 스캔들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이러한 사건들을 무시하고 집권 안정에 도모하며 룀을 제거하는데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1934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취임하고 나치가 집권한 후 드디어 룀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6월 30일 일명 “장검(長劍)의 밤”이라고 일컬어진 숙청이 진행되었다. 돌격대에 소속되어 있던 2천 여명이 일거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렇게 진행된 숙청 작업 이후 히틀러는 본격적으로 성소수자 멸절을 시도하게 된다. 1934년 게이들이 드나들던 바가 폐쇄되고 일련의 동성애 서적들이 폐기된다. 1937년부터는 성소수자들을 절멸수용소에 강제 수용하기에 이른다.

분홍색 삼각형에 노란색 삼각형이 더해졌다면

▲ Heinz Heger(하인츠 헤거) ⓒGetty Image

이렇게 수용된 성소수자들에게 나치는 왼쪽 가슴에 거꾸로 된 삼각형 모양의 분홍색 헝겊을 덧대 이들을 분류했다. 정치범은 빨간색, 반사회적 성향의 수형자들은 검은색, 여호와 증인 교인은 보라색, 이민자들은 파란색,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분홍색은 성소수자였다. 유대인은 노란색 삼각형을 달게 했다.

나치는 동성애자를 극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이 ‘Pink Triangle(분홍색 삼각형)’은 다른 색깔보다 2~3㎝ 더 컸다. 멀리서도 잘 식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크게 했다고 한다. 핑크 트라이앵글에 유대인을 뜻하는 노란색 삼각형이 겹쳐진 표식을 단 수형자들은 최하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1972년 멸절수용소 생존자인 오스트리아인 ‘Heinz Heger(하인츠 헤거)’가 『Die Männer mit dem rosa Winkel(분홍색 삼각형을 단 남자들)』이라는 회고록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하인츠 헤거는 필명이고 본래 이름은 ‘Josef Kohout(요세프 코후트)’이다. 하인츠 헤거라는 필명은 요세프 코후트와 15차례의 인터뷰를 나누어 책을 출판했던 ‘Hans Neumann(한스 노이만)’이 사용했던 필명이었다.

코후트·노이만의 이 책은 멸절수용소 내에서의 야만적 상황을 설명하는 것 외에도 종전에 따른 해방 후 멸절수용소 생존자들의 처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수용소에서 해방된 후에도 코후트는 다른 성소수자 수형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범죄자로 간주되었다. 이는 나치 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동성애는 불법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코후트는 보상받을 자격이 없었으며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독 정부로부터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다른 많은 성소수자들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수용소에 보낸 시간은 감형되지 않았다.

이 책은 나치에 의해 수감된 성소수자들의 경험을 기록한 극소수의 책 중 하나로 남아있다. 대학과 유대인 신학교를 포함, 국제적으로 대학 과정에서 필수적인 책으로 가르치고 읽고 있다. 에릭 옌센은 Journal of the History of Sexuality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1960년대와 1970년대 활동가들이 지난 세대의 관점을 고려하고 성소수자 정체성의 상징으로 분홍색 삼각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성소수자 공동체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코후트의 회고록 출판을 지목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까지 5~6만명의 성소수자가 나치에 의해 멸절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이 중 60%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성애를 중죄로 처벌했던 나치 시절 법은 종전 후에도 독일에서 24년간 바뀌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2002년에야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 하인츠 헤거의 책, 『Die Männer mit dem rosa Winkel(분홍색 삼각형을 단 남자들)』 ⓒGetty Image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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