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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기쁨이 아니라 나눔의 기쁨을내가 지키리라(출애굽기 34:22-2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7.04 16:36
▲ 추수를 통해 많이 가지게 되었음을 기뻐하지 말라고 성서는 말씀하신다. ⓒGetty Image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이번 주일은 절기상으로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과거에는 농경이 중심이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당연하게 맥추감사주일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도시화 되었고 저희 교회 성도님 중에는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없으시기 때문에 저희는 맥추감사주일을 따로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 월급을 받거나 자영업을 통해 수입을 얻는 도시 사회에서, 1년간 하나님께서 주신 소득의 일부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는 추수감사주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절기를 지키냐 안 지키냐의 문제는 교회마다의 상황이 있고, 교회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생각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절기들을 지킨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이 절기들이 단지 소득을 주셨음에 대한 감사의 의미만 담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절기에 관한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다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3대 절기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칠칠절), 수장절(초막절)입니다. 이 절기에 대한 명칭은 출애굽기 23장과 34장, 신명기 16장에 나타납니다. 또 절기가 조금 더 확장된 형태로 레위기 23장에도 나타납니다.

3대 절기는 농사와 연관된 절기들입니다. 무교절은 보리를 처음 수확했을 때에 지키는 절기이고, 맥추절은 보리 수확이 끝난 다음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아마 포도와 올리브를 수확하는 절기인데, 고대 유대인들의 달력은 가을에 한해가 바뀌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진행되는 절기가 수장절입니다. 한해의 추수를 모두 마쳤다는 의미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절기들은 오경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출애굽 중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농경 사회를 이룬 이후에 생겨난 절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던 초반에는 출애굽과 연결고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초기의 절기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은 출애굽기 23장 14-19절로 보입니다. 이때 사용된 절기의 명칭들은 출애굽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농사 자체에 중심을 둔 명칭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5절에서 무교절에 대해 설명하면서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는데, 이는 후대의 첨가문으로 보입니다. 이 점은 출애굽기 34장 18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교절에 대한 추가 설명을 뺀다면, 출애굽기에 나타난 3대 절기는 출애굽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절기의 이름들은 신명기 16장에서 모두 바뀌어 나타납니다. 무교절은 완전히 출애굽과 연결되어 유월절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맥추절은 유월절로부터 7주 후에 갖는 절기라는 의미로 칠칠절이 됩니다. 수장절도 초막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실제로 이 절기들은 하나님보다는 가나안 토착 종교들로부터 받아들인 절기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설명을 불편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께 농경과 관련된 절기를 명령받았고 그대로 지켜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여기에서 대단한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나안 종교의 영향 속에서 농사의 수확물을 기뻐하고 내년에는 더 많은 수확물을 얻기를 바라던 절기에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라는 의미가 붙여졌습니다. 이는 가나안 정착 시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과 34장에서도 이런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매년 세 번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보이라는 명령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 나타난 ‘여호와의 전’이나 오늘 본문 24절에 나타난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온다’는 표현은 예루살렘 성전을 암시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암시되어 있는 점을 본다면, 절기의 의미 변화는 사사 시대가 아닌 왕정 시대에야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늦게 의미가 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종교에서 유래된 농경과 관련된 절기들은 그 해 농작물의 풍요를 바라면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올해의 풍작을 기원하며 무교절이 시작되고, 내년의 풍작을 기원하는 수장절로 마무리되었을 것입니다. 맥추절은 보리 수확을 끝낸 후에 다음 농작물의 풍작을 기원하는 역할로 보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초기의 절기들은 물질적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당시 사람들을 물질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이들이라고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흉작은 결국 자신들의 삶과 목숨으로까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은 풍작을 바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절기를 보내는 마음은 초기에 유대인들이 3대 절기를 보내던 마음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올해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고 바라는 마음, 내년에도 더 많이 벌 수 있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절기를 보내고 있지 않나 돌이켜봅니다. 성경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절기를 보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16장에 나타난 절기의 설명을 보면,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구원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순간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고 지금 보리를 수확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이를 감사하자고 말합니다.

칠칠절과 초막절에 관한 설명에는 출애굽기에는 없는 명령이 덧붙여집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는 명령입니다.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게 되었음을 즐거워하거나 내년에도 더 많은 재산을 쌓기를 바라며 절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며 함께 기쁨을 누리라고 명령합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절기가 아닌 이웃을 생각하는 절기를 보내라는 명령입니다.

또 출애굽기를 보면, 절기에 대한 설명이 뒤에 ‘매년 세 번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을 3대 절기 뒤에 붙여놓음으로 절기 기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말씀으로 읽게 됩니다. 출애굽기는 풍요를 기원하는 절기로 끝내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굳게 다지는 기간으로 보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절기를 지키고 보내는가의 문제는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점은 어떤 마음으로 절기를 보내고 있는가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이나 추수감사주일을 그저 감사의 절기로만 보낸다면, 우리는 초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행하던 절기의 수준을 따르는 것입니다.

분명 왕정 시대 이후에 생긴 변화겠지만, 유대인들은 절기가 그런 의미로 지나가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절기를 보내는 마음가짐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 절기들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나누며 기쁨을 누리는 절기라는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더욱 굳게 세우는 절기로 지키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더 붙어있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나타난 3대 절기는 자신의 땅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축제를 벌이는 절기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하는 절기입니다. 일반적 축제 절기가 아니라 순례 절기가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 24절에는 순례 절기를 지킬 때 사람들의 걱정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순례를 위해 집을 비운 사이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 재산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지경을 넓히리니,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오는 이들의 집을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 약속입니다. 그들의 여정을 지키시고, 그들이 놔두고 온 집을 지키신다는 약속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포함한 3대 절기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인하는 순간이 됩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것처럼 하나님께 향하는 여정을 지켜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지키심을 확인하며 확신하는 순간이 됩니다.

맥추감사주일로 보내는 이번 주간,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다시금 생각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그저 나의 소산이 늘어나길 바라는 감사절이 아니라 나눔의 기쁨을 누리시는 절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님과의 관례를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을 확신하시는 절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주셨음에 감사하는 절기, 주실 것을 바라는 절기보다는 그저 함께 하셨음에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그러셨던 것처럼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지키시고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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