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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표를 구입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삶을 비틀어야 합니다”(베드로후서 3:8-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7.06 00:06
▲ 변화를 위한 한발자욱이 중요하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누리고자 하는 것이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라면,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주어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저와 성도님들이 과연 어떤 평안을 누리길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잔고가 비워진 통장에 채워질 돈을 기대함으로, 약해진 건강이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불안한 환경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시 안정되기를 바람으로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의 환경과 육신의 변화 때문에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즉 마음의 변화가 이루어짐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도 않고, 채울 수도 없는 외부의 무언가를 늘 채우려다보니 초조하고, 조급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런 헛된 원함이 진정으로 누려야 할 평화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도 막아버립니다.

마가복음 4:14-20에 예수님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4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말씀이 뿌려질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16 돌짝 밭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18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달리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다른 일의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 비유에 나오는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다른 일의 욕심 때문에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부족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회개란 삶을 돌이키는 것이죠. 옛 습관을 따라 살았던, 말씀과는 다르게 살았던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하나님을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삶에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아무리 스스로가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목소리가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친다 한 들 이 행동은 그저 ‘난리부르스’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입니다.

회개는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옛 습관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다른 일의 욕심에서 벗어나 말씀으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으며 사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삶이 좀 달라지셨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같은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신다고 해서 안심하며 언제까지나 삶의 변화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12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결되지도 않고, 채울 수도 없는 돈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이 앞당겨지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성도님들께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삶을 한 번 비틀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마치 매일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돌아가게 되거나, 시간이 좀 더 걸릴지라도 다른 길로 가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중에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을 성도님들께 읽어드리겠습니다. “자기 계발의 세계에서도 이런 말을 흔히 하는데, 가령 ‘내일 파리에 갈 수 있다면 ...’ 하고 바라는 사람 중에 실제로 비행기 표를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내일은 일을 해야 하니까.’, ‘다음 주에 제사가 있으니까.’ 등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 표를 사지 않죠. 돈이 한 푼도 없으면 빌려서라도 싼 표를 구해서 갈 수 있어요. 불가능하지 않은데, 결국은 가지 않죠. 그러니 이루어 질 수 없는 거에요. 그건 스스로 틀을 정하기 때문이죠.

‘나는 뜬금없이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계획도 세우지 않고 외국에 갈 수 없다.’, ‘어머니도 그렇지 않았다, 할머니도 그렇지 않았다.’ 등등. 각자 틀이 있고, 그 틀과 비슷한 틀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있기 때문에 그 틀은 깨지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은 간단히 깰 수 있어요. 가령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다면? 아니면 싹 밀어 버린다면? 그러면 주위의 눈도 달라지고 자기도 달라지죠. 그 정도로 간단한 일이에요.

그 축적이, 꿈을 이루는 길로 이어집니다. 시도하고 도전할 때마다 뭔가가 움직여서 ‘자기 자신’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거잖아요?”
_ 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방금 읽어드린 책의 내용처럼 우리는 여러 가지 ‘합당한 또는 그럴듯한 또는 절박한’ 이유들로 하나님께 변명을 늘어놓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더 자세하게 일상을 관찰해보면 이런 이유의 원인이 인간관계나 돈과 관련된 경우들이 대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일에 일하다 말고 교회 가겠다고 일을 중단하고 일어나면 “미쳤냐?”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배타고 나갈 때 주일에 예배드려야 한다며 배 안 나가면 “너 혼자 잘난 척하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에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4-39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틀은 굉장히 촘촘하고 단단하게 짜여 있습니다. 성도님들께 읽어드린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이 되어있었죠. “각자 틀이 있고, 그 틀과 비슷한 틀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있기 때문에 그 틀은 깨지지 않는다.”

이런 틀을 유지하기 위해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니가 오늘 일 안 해주면 누가 해주니?”, “오늘 돈 많이 벌 수 있는데, 아깝지 않니?”, “오늘만 날이니? 교회는 다음 주에 가도 되잖니.” 이제 저도 제법 잘 따라하지 않습니까?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이런 인간관계와 돈의 문제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목사인 저도 이런 부분에서 자유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삶을 비틀어야 합니다. 한 번 일을 안 가 보는 거에요. 일 하다 말고 중단하고 일어서 보는 거에요. 그 다음에 내 삶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 보십시오. 부족함과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시편 23:1-6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내 힘으로 사는데 이런 은혜를 어떻게 경험하겠습니까? 나를 향하신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믿음과 신앙을 위해 단 한 가지도 기꺼이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바다에 나가지도 않는데 어떻게 문어를 잡겠습니까? 밭에 나가지를 않는데 어떻게 수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말씀대로 살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1-33)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스바냐 1:14-18 “14 주님께서 심판하실 그 무서운 날이 다가온다. 득달같이 다가온다. 들어라! 주님의 날에 부르짖는 저 비탄의 소리, 용사가 기운을 잃고 부르짖는 저 절규. 15 그 날은 주님께서 분노하시는 날이다. 환난과 고통을 겪는 날, 무너지고 부서지는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먹구름과 어둠이 뒤덮이는 날이다. 16 나팔이 울리는 날, 전쟁의 함성이 터지는 날, 견고한 성읍이 무너지는 날, 높이 솟은 망대가 무너지는 날이다. 17 "내가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니, 그들은 눈먼 사람처럼 더듬거릴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나 주에게 죄를 지은 탓이다. 그들의 피가 물처럼 흐르고, 시체가 오물처럼 널릴 것이다. 18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이 그들을 건질 수 없다." 주님께서 분노하시는 날, 주님의 불 같은 질투가 온 땅을 활활 태울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눈 깜짝할 사이에 없애실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말씀에 명확하게 나오듯, 은과 금이 그들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삶,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비틀 때 이런 축적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길로 이어집니다. 이런 믿음의 경지에 저와 성도님들이 올라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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