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 Murer, 씨를 뿌리는 사람: 종교개혁 시기 설교는 “말씀의 사역”이라고 칭해졌다(1600-1614). ⓒWikipedia

교회가 ‘에클레시아’, 곧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교회는 결코 어떤 특정한 계급 또는 신분과 동일시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교회는 에클레시아, 모든 신앙공동체이다. 모두가 선택된 민족이며, 왕다운 사제들이고, 거룩한 백성이다(벧전2:9)이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성령에 의해 성화된 사람들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들 모두는 교회 안에서 동등하다.

로마가톨릭의 “두 신분론”

그러나 교회 안에서 교회의 성직주의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오로지 특정한 직무 담당자만이 ‘사제’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중세에 들어와서 “두 신분론”이 완전히 고착되게 되었다. 이 “두 신분론”에 의하면, 성직자들은 “영적 신분”에 속하고, 평신도들은 “세속적 신분”에 속했다.

이 두 신분, 권위의 영역은 서로 매우 다른 것이었다. 영적 신분은 세속적 신분의 일들에 간섭할 수 있지만, 세속적 신분은 영적 신분의 일들에 간섭할 수 없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교회의 개혁은 순수하게 교회 그 자체의 문제이며, 평신도들은, 농부이든 황제와 같은 세속적 지배자이든 간에, 교회의 개혁을 이루는데 필요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로 이것이 루터가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1520)란 그의 유명한 개혁 논문에서 지적한 바 있는 로마 교회가 쌓은 “삼중의 벽들” 가운데 첫 번째 벽이었다.(1) 교회가 이 삼중의 벽 안에 틀어박혀 있다고 확신한 루터는 독일의 영주들과 귀족들에게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만인사제직’의 교리를 발전시키고 있다:

루터의 이 견해에 따르면,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직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영적 신분에 속한다. 단지 교회의 직분은 영적인 전권을 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교육적인 전제조건을 다 갖춘 사람들에게 주는 신앙공동체의 위임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만인사제직 교리에 의하면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개혁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만약 교회의 직분자들이 교회의 개혁을 거부한다면,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곧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인 세속정부는 당연히 교회의 개혁에 관여해야 한다.(3)

루터의 만인사제직에 대한 오해와 이해

그러나 루터의 교훈 중에서 이 만인사제직만큼 오해되는 교리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 이것은 단순히 교회에는 더 이상 사제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성직자의 세속화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된다. 보다 일반적으로 만인사제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성직 임명을 통하지 않고도 스스로 사제나 목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오해와 왜곡은 모두 루터가 만인사제직을 통해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의 교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만인사제직 안에서 그리스도인 각자는 모든 자매와 형제들에 대해서 사제이다. 따라서 만인사제직 교리는 종교개혁 전통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어떠한 임무라도 넓은 의미에서 사역으로 이해했다. 이 만인사제직의 존립근거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증언하고 세상에 대한 봉사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데에 있다.(4)

그러므로 만인사제직 교리는 모든 소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넓은 의미의 사제임을 말하지만, 그러나 모든 소명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필요한 공적 기능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지도력을 갖는다는 것을 말하는 교리는 더욱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례를 포함하여 교회의 봉사에서 동등한 몫을 갖지만, 모든 사람들이 설교자, 교사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같은 신분이지만, 맡은바 직분과 기능은 다르다. 그러므로 만인사제직은 일부 개인들이 교회 안에서 특별한 직분을 맡기 위해 부름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교회의 최고의 사역으로 간주했다. “거룩한 말씀의 종”(minister verbi divini)이란 칭호는 본질적으로 직능적인 역할을 함축하는 말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직분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 또한 루터가 목사직의 철폐를 추진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루터는 분명히 세례를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제들이라는 것을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적절하게 부름을 받지 않았다면 안수 받은 목회자가 없을 때의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목회 기능을 수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6)

칼빈의 로마가톨릭교회 직제 비판

칼빈은 루터와 달리 만인사제직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교회의 직분을 중요시하고, 그 이유를 우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계시는 하나님이 교역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7) 칼빈에게 교회의 교역자는 마치 “신자들을 결속해서 한 몸을 이루게 하는 힘줄”과도 같은 것이었다.(8)

1541년 칼빈은 목사와 교사 이외에 교회에 언제나 있어야 할 직분으로 장로와 집사직을 설치하였다. 이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은 『기독교강요』 1543년판에서 찾을 수 있다.(9) 그러나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에서 그는 목사직과 교사직을 하나로 간주하여 목사, 장로, 집사의 세 직분만을 언급한다.(10)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직분들 가운데 목사의 직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목사가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목사는 성경을 해석하며, 성례를 집행하고, 권징을 시행하는 이 모든 의무를 겸한다.(12) 칼빈에게 ‘감독’, ‘장로’, ‘목사’, 그리고 ‘교역자’라는 성경의 용어들은 모두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직무를 가리킨다.(13)

칼빈은 로마서 12장8절에서 다른 두 개의 직무를 확인한다.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다스리는 자는”에서, 칼빈은 장로회의에 그의 동료와 함께 앉아 권징을 시행하는 장로를 생각한다. 여기서 칼빈이 말하는 장로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장로가 아니라 다스리는 직무를 맡은 장로이다.

칼빈은 사실상 신약성경에 두 종류의 장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발견을 위한 본문의 증거는 다음 구절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바로 이 다스리는 일을 맡은 장로들이 교회 안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감독하며 열쇠의 권한을 사용하도록 임명된 사람들이었다.(14)

다른 또 하나의 직무는 집사의 직무이다. 초대교회의 집사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위임받은 교회의 공적인 직무였다. 그러나 중세 후기의 로마교회는 집사의 직무를 예배의식에서 사제를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제한했다. 집사 직무는 그 본질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사제가 되기 위한 과정의 한 단계가 되었다.(15) 칼빈은 이러한 관습이 사도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 “매우 영광스러운 직무”를 불쾌하게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16) 집사는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려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직무이다(행 6:1-3).

칼빈은 “나누어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롬 12:8)는 말씀을 따라서 집사의 직무를 두 종류로 구분하고, 한 부류의 집사들은 빈민 구제금을 관리하고 구제물자를 분배하는 일을 맡게 하고, 다른 한 부류의 집사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직접 보살피는 일을 맡게 했다. 여자 집사들은 주로 후자의 일을 맡았다.(17) 집사들은 성도의 교제가 사회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영적 연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경제적 재화가 교회의 모든 지체들 가운데 고루고루 흐르게 재확립할 책임을 맡은 자들이었다.(18) 그러므로 칼빈은 사도적 기원을 갖는 집사 직분을 신약성경에서 되찾아내어 교회가 세상에서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인 경제질서를 사회 안에서 실현하도록 한 것이다.

칼빈은 다시 신약성경을 기초로 하여 교역자들의 임명에 관하여 네 개의 규칙들을 규정한다. 첫째 규칙은 선택될 수 있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건전한 교리를 믿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그들이 선택되는 방법이다: “금식과 기도” 후에. 세 번째는, 누가 그들을 선택할까 하는 것이다: 목사들이 주관하는 모음들에서 전체 공동체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로는, 공동체가 새로 선출된 교역자들을 받아들이는 의식이다: 안수.(19)

이 “제네바 모델”은 로마 가톨릭 모델과 뚜렷한 반대를 나타낸다. 칼빈은 가톨릭 모델이 교회의 합법적인 형태를 뒤엎고, 점차 본래의 질서를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가톨릭 모델에서는, 네 개의 규칙들 가운데 어느 것도 존중되지 않았다. 감독들은 성직 서품식들에 관한 독점권을 자신들에게 주었고,(20) 게다가, 각각의 교직에 의무로서 주어지는 그 기능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사제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고 미사를 거행하기만 한다. 집사들은 본질적으로 예배의식적인 역할을 하며, 그들의 직무는 단지 “사제가 되기 위한 단계”로 보일 뿐이다.(21)

그러나 칼빈에게 가장 나쁜 위법자는 가톨릭에서 가장 높은 교직인 교황직이다. 여기서 그의 비판은 두 가지 문제점에 초점이 맞춰진다. 첫째는 교황의 수위권이며, 둘째는 그에게 부여된 교회권력이다. 첫째 문제점에 대하여,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보편적 감독은 단지 그리스도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이유로 비판한다.(22) 두 번째 문제에 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가톨릭의 입장을 요약한다:

칼빈이 문제 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 권력이 교황에게 집중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지, 교회가 그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쟁점은 교회의 영적 권위에 대한 논의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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