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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만 할 때 찾으라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신명기 4:29-3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7.11 15:03
▲ Chapel of Geneva’s Ecumenical Center ⓒLWF/Albin Hillert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코로나 확산에 따라 네 번째로 대면 예배를 멈추게 되었습니다. 지난 세 차례 비대면 가정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가 왜 모임 예배를 멈추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모임 예배가 아닌 가정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주일, 가정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들과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려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또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정말로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의 연설 중 일부인 신명기 4장 25-40절 말씀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출애굽을 모두 마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훗날 일어날 일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5-28절은 경고의 말씀이고, 29-40절은 회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말씀은 먼 미래를 내다보신 하나님의 경고와 약속이 됩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하나님의 미래 예지가 아니라 남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를 겪은 이들이 첨가한 말씀일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 이들은 남왕국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 자신들이 왜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고민했습니다. 이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외교 정책 실패, 군사 작전 실패와 같은 현실적인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에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대상이 2인칭 복수 형태인 ‘너희’로 나타나 있는, 신명기 4장 26-28절은 하나님의 경고가 아니라 포로기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반성입니다. 자신들은 우상을 숭배해 왔고, 포로로 끌려온 상황 속에서도 나무와 돌일 뿐인 우상을 섬기고 있음을 고백하며 반성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보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멸망 전까지 남왕국에서는 분명 우상숭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또 다른 우상들도 섬겼습니다. 이런 우상숭배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스스로 우상을 섬겼다고 말할 때, 그것이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은유적 표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 지금의 교회들을 보고 물신주의, 확장주의에 빠져있다고 지적하면서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맘몬을 섬긴다고 비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을 받는 교회들도 실제로는 맘몬이 아닌 하나님을 믿습니다. 교회가 잘못된 신앙 자세를 가르쳤기 때문에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지, 그들이 실제로 우상숭배 행위를 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우상숭배의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저희가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뭔가 잘못되어 왔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들이 고민 끝에 찾은 대답이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30절에 나타난 ‘돌아옴’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2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리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는 구문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으로 말씀하신 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열왕기에도 나타나는데,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연설 속에 나타나고(왕상8:48),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선포한 말 속에 나타납니다(왕하23:3). 열왕기에 나타난 본문, 특히 솔로몬의 연설은 신명기와 마찬가지로 후대의 첨가일 것입니다.

이 구문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책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에는 같은 구문이 최소 9번 등장합니다. 어찌 보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씀은 신명기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문은 예레미야 29장 13절 말씀인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라’는 선포가 바벨론 포로기 직전 남왕국 내에서 널리 퍼진 관용적 선포였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을 향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29장을 보면, 바벨론에 있던 이들은 예레미야의 권고를 듣기 싫어합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편지를 보내 예레미야가 말하지 못하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바벨론 포로 초기,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고민했던 것은 자신들이 언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성전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제사를 지낼 수 있을지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벨론에 오래 있게 될 것이니 그곳에 정착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라는 예레미야의 말은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포로민이 예레미야의 말을 거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의 권면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던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신명기 안에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려던 이들, 특히 신명기를 편집한 이들은 구체적인 제의의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성전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제의를 드려야 한다는 가르침에 중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의라는 형태보다는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라고 말합니다. 온 마음과 온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 교회가 모임 예배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고민했습니까?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화상통화 프로그램을 통해 예배를 드릴지, 유튜브나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예배를 진행할지 고민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배의 형식에 쏠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집중해 있었습니다. 종교에서 제의는 중요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향한 중요한 신앙 행위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신앙은 제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신명기 말씀은 그 점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4장 25-28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비대면 예배를 진행하게 되었는가를 고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개신교가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작년에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지금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노력하는지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신명기를 남긴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이후에, 성전 제의 자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바벨론 포로민의 이런 변화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변화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자신들을 향해 오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어느 곳에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는 신앙의 발전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32-39절의 말씀은 온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지금 각 가정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님들도 이런 마음을 품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어디에서 예배드리던지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또다시 비대면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런 상황이지만, 오히려 이 기간 중에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시며, 그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시게 되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날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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