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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배현주 WCC 중앙위원, 제11차 총회의 신학적 의미를 이야기 하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1.07.11 15:09
▲ WCC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현주 교수 ⓒ배현주 교수 제공

2022년 8월31일-9월8일까지 독일 바덴주 칼스루에(Karlsruhe)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Christ’s Love Moves the World to Reconciliationa and Unity)는 주제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총회의 자발적 참여를 준비하기 위해 구성된 ‘한국동행모임’의 첫 만남이 지난 6월 30일 오후 7시 30분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경동교회에서 개최된 바 있다. 이날 한국동행모임 시작 예배에서 WCC 중앙위원인 배현주 교수는 “사랑의 길”이라는 제목의 개회 설교를 통해 “한국의 선구적인 동행모임은 세계 교회 네트워크에 격려와 힘이 되고 있다”라고 언급하며 “WCC 역대 총회 주제 중에 ‘사랑’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WCC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현주 교수를 6월 25일 에큐메니안이 만났다. 배 교수는 같은 날 오전 개최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NCCCUSA(미국그리스도교회협의회)의 “제7차 한미교회협의회”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배 교수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한미교회 협의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배 교수는 한미교회협의회가 “한국전쟁에 대한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협의를 개시할 것을 촉구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5개의 공동행동도 제안했음을 이야기했다. 이날 회의에서 제안된 5개의 공동행동은 ▲ 한미 양국교회는 정전협정 70년이 되는 2023년 7월까지 세계 교회와 시민사회와 함께 한반도 종전화 캠페인에 적극 동참할 것, ▲ 남북대화, 북미대화의 계기 마련을 위하여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 캠페인을 전개할 것, ▲ 한미교회가 청년 지도력의 평화감수성과 평화의 영성 함양을 고취하기 위하여 “청년 평화 공동연수” 진행할 것, ▲ 한미교회협의회를 정례화하고 공동워킹그룹을 조직하며, 평화선교사를 워싱턴과 서울에 교차 파송 고려할 것, ▲ 2020년 예정되었던 참전 미군, 피해자 가족이 함께 드리는 노근리 치유와 화해 예배 2022년 다시 추진할 것 등이다. (‘한미교회협의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 촉구’)

사당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현주 교수는 바쁜 일정 가운데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환한 표정으로 에큐메니안과 대화를 나누었다. 언제나 활발하고 생기에 가득 찬 배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쁨이었다. 먼저 이번 총회의 주제,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사랑”(Christ’s Love Moves the World to Reconciliationa and Unity)에 관하여 물었다.

배현주(이하 배): 이번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입니다. 동사 ‘move’가 사용되었는데, 한국교회에서 ‘이끄신다’로 의역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운동 곧 ‘movement’의 동사형인 ‘move’라는 단어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운동’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운동이 있어야 화해와 일치가 가능하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뒤집어 놓고 보면, 우리 사회와 교회에 화해와 일치가 부족한 현실은 그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의 운동이 부족한 상황을 반증해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언어와 표현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다름도 있는 것 같습니다. 10차 총회에서는 lead(이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어찌 보면 수동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보는데, 11차 총회는 move(움직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배: 그리스도의 사랑이 화해와 일치로 세상을 움직여 간다는 표현에 관해서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들과 성찰들이 스태프 사이에서도 격렬하게 발생했었습니다. 이 주제를 현실 묘사적 측면에서 이해하면 현재 우리의 삶의 현장과는 전반적으로 괴리가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제기된 주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고백하는 종교들, 곧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중동에서 번번이 전쟁에 연루되고 있고 지금 한국에서처럼 교회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기억하시겠지만 지난번 미국에서 캐피톨(capitol)을 점령했던 극우 과격 세력들이 울부짖으면서 기도하는 장면을 우리 모두 목격했잖습니까. 이런 모습은 기독교가 화해와 일치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대중우매화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두려운 현실입니다. 11차 총회의 주제는 화해와 일치를 찾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화해와 일치를 이루겠다는 신앙적 고백과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참회와 정체성 회복의 노력을 전제하는 일이지요. 이 주제는 배타주의적이거나 교리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고백적인 의미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하나님 나라 운동·십자가·부활에서 드러난 신성한 사랑의 성격이 중요한 것이지요. 이번 주제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찬양과 신앙 고백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번 WCC 11차 총회 주제가 선정된 과정과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배: 2013년 제10차 부산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기도문이었습니다. 부산 총회 이후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세계가 더 희한한 세상이 돼 버린 만큼 우리의 기도도 더욱 간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갈등, 차별, 분열,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누적된 지구적 위기가 더욱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간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사태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와 계층을 넘어서서 집단지혜와 공동의 실천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특정 국가 혹은 정부와 관에만 맡겨둘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화해와 일치를 통해 지구촌의 유례없는 위기들을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는 유례없는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교회적 사회적 자각은 당연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때 총회준비위원회 측에서 ‘화해’가 담긴 주제를 제안했고, 정교회 측에서 ‘일치’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하니까 별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도 심각한 지구촌에서, 중층적인 구조적 억압과 지속적으로 싸울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그리스도의 사랑 즉 복음의 메시지에서 찾는 노력이라고 보입니다.

▲ 11차 총회의 주제가 그리스도의 사랑, 화해와 일치로 결정하게 된 동기와 배경을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간 총회 주제에 대해 부유한 서구 교회들과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 교회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총회 주제 선정 과정에서 그런 면은 없었나요.

배:  10차 총회 주제 선정 과정에서도 “일치”라는 주제가 후보로 강력하게 대두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남반구 교회들이 생명과 정의의 주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그 주장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번 주제 결정과정에서는 정교회 쪽의 강한 제안이 있었고 11차 총회의 개최지인 유럽교회의 호응이 존중되었다고 느낍니다.

처음에 총회 주제 핵심 성서 구절로 고린도후서 5장 14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를 연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urge라는 영어 단어나 drängen이라는 독일어가 뭔가 강요한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돌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강권이라는 표현보다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moves”(움직이다)라는 표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기독교 신앙의 ‘운동성’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movement(운동)에 mover(운동가)들이 없어지면 machinery(기계)가 되고 machinery가 조금 더 운동 기운이 빠지게 되면 monument(기념비)로 변하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시체들을 화려하게 모신 mausoleum (왕릉)이 된다는 말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 표현을 어느 필리핀 주교로부터 들었는데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예수운동’과 ‘하나님 나라 운동의 모체로서의 교회운동’에 관해 연구하고 가르치는 신약학자인 저로서는 11차 총회의 주제에서 신앙의 운동성을 재발견하고자 합니다. 교회나 기구가 자신의 토대요 목표인 이 운동성, 즉 변화 받고 변화시키는 힘을 상실하면 기계 같은 제도로 경직됩니다.

▲ WCC 제11차 총회를 앞두고 자발적 참여를 준비하기 위해 마련된 ‘한국동행모임’ 첫 만남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배현주 교수. ⓒ‘한국동행모임’ 제공

▲ 화해와 일치라고 하는 개념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 데요. 화해와 일치를 어떻게 ‘moves’ 다시 말하면 운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배: JPIC(정의·평화·창조질서의 보전,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JPIC는 한국교회와 관계가 깊습니다. JPIC 대회가 1990년 한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산 총회 때도 JPIC가 주제에 포함되어 나타났습니다. 이번 총회 주제를 상당히 싱겁게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WCC 창설 배후에는 분열과 파괴와 자멸로 치닫던 세계대전 기간 적국에 속했던 교회들이 화해와 가시적 일치를 통하여 인류의 평화와 일치라는 비전을 추구하고자 했던 노력이 놓여 있습니다. 이 창립 초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유럽교회에게 화해와 일치는 정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치유적이면서도 운동적인 개념이라고 보여집니다. 독일교회는 11차 총회 준비과정에서 역사적 기억을 새롭게 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 태동기의 강력한 주창자였던 본회퍼 목사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세상, 화해, 일치 등이 본회퍼의 신학과 삶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항목이었다고 지적하며 제11차 총회의 주제를 오늘의 현실에 영감을 주는 통로로 사용하고자 노력합니다. 우리가 화해의 직분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야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해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화해의 진정한 힘이 나오는 거잖아요.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앙적 성서적 신학적 기반을 견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값비싼 일치’와 ‘값싼 일치’를 구분해야 합니다. 현시대에 교회가 추구하는 일치는 JPIC 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일치라는 미명 아래 현실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하달하는 상명하복 문화, 교권적 획일주의, 여성과 청년을 타자화 하는 가부장주의가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치 개념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성서적 교회론을 숙고해야 합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씀처럼 일치 권고에는 하나님의 행위가 전제되어 있잖아요. 우리들이 원주에 서 있는 점들이라고 상상해보시지요. 원 가운데 초점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그런 원주 말입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중심을 향해 나아갈 때 자연스럽게 그리고 저절로 서로 가까워지지 않겠습니까. 일치에 대한 죄더블룸의 이 생각이 저는 기독교적 영성에 바탕을 둔 ‘값비싼 일치’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자리에서. 각자의 독특성과 진정성을 지니고, 갈등을 포월(包越)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할 때 이루어지는 심오한 일치 말입니다.

▲ 화해와 일치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배 교수: 우리나라는 ‘화해와 일치’를 필요로 하는 세상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유산을 아직도 극복하니 못하고 분단피로 아래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는 화해가 필요한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수없이 많은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한국 개신교는 일치를 향한 대화를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교회 문화와 교계 정치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분단과 냉전 의식, ‘패거리 문화’ 등을 자각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깊은 영성적 신학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에는 2000년 동안 전개된 세계기독교사의 큰 흐름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정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라는 한 지붕 세 식구가 다 모여 있고 자생적인 교회도 있습니다. 정말 다이내믹 코리아입니다.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는 우리 개신교가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의 의미,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의미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자신의 모교회인 프러시아 연합교회의 에큐메니칼 신앙정신을 종종 인용하고는 합니다.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그리고 매사에는 사랑.” 부산 총회의 일치 성명서는 ‘교회의 일치는 인류의 일치와 피조세계의 일치를 예시하는 일치’라고 선언했습니다. 초대교회는 갈등과 분열의 세상 속에서 인종과 계층과 성을 뛰어넘어 화해와 일치라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새로운 인류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 오래된 미래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연합운동이 교단연합에만 머물지 않고 이러한 심오한 일치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도록 노력할 수 있을 때 에큐메니칼 운동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에서부터의 실천이 중요한 때입니다.

▲ 이제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죠. 한국의 중앙위원은 누구신가요? 그리고 한국 교회의 WCC에 대한 인식과 총회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배: 다음 총회까지 중앙위원은 장상 아시아 회장님과 저입니다. 대륙별로 회장이 있습니다. WCC 제11차 총회 준비를 위해서는 NCCK에서 ‘한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풀뿌리 에큐메니칼 운동인 ‘한국동행모임’은 다음 주에 출범하고자 합니다.

한국 교회의 WCC 인식이 부정확하고 불충분하고 가짜 뉴스들도 많아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WCC 헌장 1조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서에 따라 하나님이자 구세주로 고백하고 공동의 소명을 함께 완수하고자 하는 교회들의 친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회원교회들의 신학교육에 에큐메니즘이 필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교단이 무슨 가치 때문에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신학교에서도 잘 배우지를 못하니 목회자들조차 질문을 던지는 교인들을 가르칠 역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일하면서 한국 에큐메니즘이 한편으로는 ‘탈식민주의적 파라다임’을 지향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교회운동의 정신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전자는 특히 세계시민, 지구시민으로 성장하는 청년 세대의 리더십 양육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민간외교적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과제입니다. 후자는 한국의 지역교회와 교류하고 싶어 하는 세계교회를 의식할수록 그런 문제의식을 지니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와 JPIC에 대한 관심과 함께 앞으로 지역교회의 견실한 글로칼 에큐메니즘에 관심을 지녀야 합니다.

11차 총회의 주제를 JPIC의 토대와 근원으로서 사랑의 힘을 우리가 다시 확인하고 회복하자는 관점에서 보면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이 다 연결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이 소비문화의 상품으로 둔갑한 시기, 사랑의 힘(the power of love)이 잘 보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사랑(the love of power)이 압도적인 시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각종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교회가 자신의 토대인 거룩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첫사랑을 회복하여 세상 만민과 지구의 풍성한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교수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만일 배 교수가 이후의 일정이 없었다면 이야기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시종일관 에큐메니컬 운동과 한국 교회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배 교수의 모습은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왔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배 교수가 남긴 기도와 같은 말이 나의 귀에 머물고 있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신앙운동이지요. 단단한 음식을 소화해야 하는 신앙운동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성령의 발현이라면,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하네요. 우리 땅에는, 또 한국 기독교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보배 같은 분들이 참 많이 계십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우리의 저력이 함께 엮여져서 세상을 위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공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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