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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 아니다하나님을 찾으라(이사야 55:5-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7.18 15:54
▲ Eduard Bendemann, 「Die trauernden Juden im Exil」 (1832) ⓒWikimediaCommons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번 주일에 나누려는 말씀은 지난 주일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신명기에 나타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잠시 언급하기는 했습니다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은 바벨론 포로기 전후에 사용되었던 관용적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보자면, ‘하나님을 찾으라’는 표현이 관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바벨론 포로기 전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사용되었던 표현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라고 말할 때 히브리어 ‘다라쉬(דרשׁ)’가 사용됩니다. 성경에서 ‘다라쉬’가 하나님과 함께 연결되어 나타날 때, 그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번역됩니다. ‘하나님을 찾는다,’ 또는 ‘하나님께 여쭙는다’입니다. 어쩌면 번역의 차이일 뿐이지 안에 담긴 의미는 같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로 보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전까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찾는다’라고 말할 때는 예루살렘 성전 또는 지방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예언서 이외의 책에서 ‘하나님께 여쭙는다’라고 번역된 경우는 거의 예언자가 있는 성소나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다’라는 표현은 ‘성소에 간다’와 거의 같은 의미의 표현이 됩니다.

성전이나 성소가 있던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던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 아모스입니다. 아모스 5장 4절을 보면,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당시 아모스의 선포를 들었던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방 성소를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바로 이어지는 5절에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선포를 합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세 곳 모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왕국의 성소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려면,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당연히 성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그 성소들 어디로도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6절에서 다시 반복해서 선포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아모스가 이런 예언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아모스 4장 4-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서 제사를 지내며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축일을 선포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그 모든 예배 행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이 기뻐하는 일”이었을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는 지금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때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십일조라던가 무슨 무슨 헌금을 하면 돈 아깝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은 헌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다시 채워주시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이런 믿음이 있어야 좋은 신앙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그런 생각을 비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제사를 지내며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페이백(payback) 받으려고 이런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기만족일 뿐인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성소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모스는 5장 14절에서 그 답을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선을 찾으라” 우리 성경에는 “선을 구하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때도 히브리어 ‘다라쉬(דרשׁ)’가 사용됩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에서 사용되었을 때와 똑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성소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선을 찾고, 선한 일을 행함이 하나님을 찾는 일이며 생명을 구하는 길이라고 아모스는 외쳤습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본문은 제2 이사야로 불리는 인물의 선포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사야는 3명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1-39장의 말씀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제1 이사야, 40-55장은 바벨론 포로기에 활동했던 제2 이사야, 56-66장은 포로기 이후에 활동한 제3 이사야로 구분합니다.

제2 이사야의 선포 마지막 장인 55장에서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 선포는 지난주에 봤던 예레미야의 선포나 신명기에 나타난 말씀과는 조금 다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와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해석 방법에 따라 오늘 본문에 대한 상반된 해석을 내놓습니다. 이사야를 1·2·3 이사야로 구분하지 않고 한 권의 책으로 읽으면서 최종 편집 의도를 찾을 때, 오늘 본문은 앞·뒷장과 연결되어 바벨론 포로기 이후 제2 성전이 건축된 상황을 전제에 둔 선포로 해석됩니다. 이제 제2 성전이 건축되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에 지금이 ‘하나님을 만날 때’라는 해석입니다.

반대로 이사야를 1·2·3으로 구분해서 해석할 경우, 제2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따라서 그의 시대에는 아직 성전이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과도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서 예언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그가 말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성전이 없는 상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제2 이사야가 예레미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는지, 신명기를 기록한 이들과 교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아모스의 예언을 알고 있었는지도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들의 선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선포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포를 본래 ‘성소에 간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표현인 ‘하나님을 찾는다’를 사용하여 전달합니다. 성소가 없더라도 하나님은 만날 수 있다는 의미를 더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이사야의 예언은 아모스의 예언과 닿아 있습니다. 아모스는 선을 찾고, 악을 찾지 말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일은 악을 버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는 언제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 됩니다.

지금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민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음성을 바벨론에 있던 이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이사야의 예언이 선포되고 있는 순간이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해석 모두 생각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제2 이사야가 외쳤던 선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듣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시고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저 ‘믿습니다’라는 음성으로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돌려 받을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삶의 인도자 되시며 내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악함을 버리고 선함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선한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다가와 주시며 그 길을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을 만나시게 되고, 선을 찾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던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주시고 여러분의 길에 함께 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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