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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의 사후관 - 죽음과 죽음 이후 (1)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㉔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1.07.2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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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퓨리서치 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 가운데 72퍼센트가 사람이 죽으면 가는 문자 그대로의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고, 58퍼센트가 문자 그대로 실제로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앞선 시대에 비하면 현저히 낮아진 수치이지만, 그래도 놀라운 수준입니다.

약간 오래 된 통계이지만,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가 2005년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46.7%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고, 35.2%는 없다고 믿고 있으며, 18.1%는 모르거나 무응답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기독교인은 75.6%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으며, 없다고 믿는 사람은 15.3%, 모르거나 무응답은 9.2%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천국과 지옥이 있고, 생전에 착하고 의롭게 산 사람은 죽자마자 천국으로 가고, 악하고 불의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죽자마자 곧 지옥 불의 심판을 받는다고 믿으시는지요?

오늘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보지 않고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다만 성경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천국과 지옥으로 생각하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린다면, 고대 그리스도교에도, 그리스도교의 기반이 된 유대교에도 단일한 사후 세계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 종교는 물론 당대의 다른 종교들도 모두 사후 세계에 관해 놀랍도록 다채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역사적 종교들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사후 세계관도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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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문헌 기록이나, 서구 문화를 보면, 사람이 죽으면, 모두 똑 같은 운명을 맞는다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전 8세기 고대 그리스의 유랑 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하데스’(Hades)라고 불리는 곳에서 무미건조하고 보잘것없고 지루한, 영겁의 시간을 보낸다고 믿었습니다. ‘하데스’는 공간 이름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후 세계에 받을 고문에 대한 두려움이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충만한 삶을 살면서, 삶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모두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고, 죽은 후에는 고통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음산하고 황량하고 재미라고는 하나도 못 느끼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죽음 그 자체도 끔찍하지만, 죽은 후에 아무도 제대로 장례를 치러 주지 않아, 아예 망자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 사이의 무인 지대에 갇히는 것을 더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가면서 그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묘사된 상상 속 저승 개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요. 상류층이건 하층민이건, 올바르게 살았건 악하게 살았건, 용감했건 비겁했건, 모두 죽고 나서 똑같은 운명을 맞는다면 세상에 정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기원전 8세기 활동했던 호메로스보다 400여년 늦게 등장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년-기원전 348년)은 이 세상에서 신실하고 선하고 고결하게 산 사람은 저세상에서 상을 받고, 악하게 산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아는 대로 영과 육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한 철학자인데, 그는 의로운 영혼은 상을 받고 악한 영혼은 벌을 받기 때문에, 육신의 쾌락이 아닌 영혼의 선함을 추구하면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파이돈’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후 세계관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중립적 삶, 다시 말해 과하게 의롭지도 과하게 악하지도 않은 삶을 살다간 사람은 정화의 장소인 아케론 호수로 가서, 지은 죄에 대해 벌을 받고 선행에 대해서는 상을 받는다. 구제불능으로 판명된 대죄인들, 예를 들어 살인자 같은 이들은 타르타로스로 보내져 영원히 풀려나지 못한다. 비교적 정도가 약한 죄를 지은 자들은 타르타로스로 보내져 1년 동안 지내다가 다시 아케론 호수로 토해 내져, 자신이 죽이거나 해친 사람에게 목이 터져라 용서를 구한다. 오직 피해자가 동의할 경우에만 그들은 고문에서 해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달리 경건한 삶을 살다 간 자들은 죽은 순간 해방되어 저 높이 순결한 세계로 올라간다.’

▲ 히브리인들이 생각했던 ‘스울’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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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에서도 비슷한 전환이 있었습니다. 히브리 성경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집트에서 크게 발달한 사후 영혼의 긴 여행을 상세히 묘사하는 신화를 완전히 거부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의로운 자든, 악한 자든 죽은 후에는 모두 ‘스올’(Sheol)이라는 곳에 머물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음부’, ‘보이지 않는 세계’, ‘암흑에 싸인 칠흑같이 어두운 땅’으로 번역되는 ‘스올’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65번 나옵니다. ‘스올’이라는 명칭은 구체적이고 간결한 동시에 사실적이어서, 신화적인 상상을 촉발할 어떤 여지도 없습니다. 히브리적 사유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었던 것이지요. 히브리인들은 천수를 다하고 죽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이자 은총의 표시로 이해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죽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창 25,8)고 표현한 것이지요. 이삭이 죽었을 때에도 ‘이삭은 늙고,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다하자, 죽어서 조상들 곁으로 갔다.’(창 35,29)고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자,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는 길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스올’이라는 단어가 17세기, 영국의 제임스 왕이 편찬에 관여하여 영어로 번역한 ‘흠정(欽定)역’ 성경에서, ‘무덤’, ‘지옥’, ‘구덩이’ 등으로 번역되면서부터 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지옥’으로 번역된 ‘스올’이 문맥과 전체적인 의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고, 그래서 ‘무덤’이 가장 적합한 번역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현세의 삶에 대해 복수를 하는 지옥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훨씬 뒤 헬레니즘 시대에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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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후 세계에서의 심판과 특히 지옥에 대한 생각은 주로 신약성경 시대에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세 개가 있습니다. ‘하데스’(hades), ‘게헨나’(gehenna), ‘타르타루스’(tartarus)가 그것입니다. ‘하데스’는 구약의 ‘스올’에 해당하는 말로, 사실 무덤 혹은 죽음 자체를 의미하지, 지옥으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옥’으로 번역된 ‘타르타루스’도 사실은 ‘어두운 구덩이’가 올바른 번역입니다. ‘지옥’으로 번역된 ‘게헨나’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2번 등장하는데, 야고보서 3장 6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님이 친히 사용하셨던 표현입니다. 원래 ‘게헨나’는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사람의 이름인 ‘힌놈’(Hinnom)이 합성되어 생긴 ‘힌놈의 골짜기’라는 의미의 지명인데,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을 가리켰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힌놈의 골짜기’는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를 원했던 우상 몰렉 신에게 자식을 불살라 제사한 저주와 살육의 장소였습니다(대하 28,1-3; 렘 7,31-33).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게헨나’ 곧, ‘힌놈의 골짜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차 메시야를 거절하는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게 될 장소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골짜기에는 항상 처형당한 죄인의 시체와 죽은 동물의 시체와 쓰레기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뿌연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아신 예수께서는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 날에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막 9,48; 마 25,41). 그리고 ‘영원한 불’이라는 표현도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고 타는 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으로 영원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단어들은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혼백이 영원토록 불 가운데서 고통 받는 곳을 뜻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죽음 후의 세계가 천당과 지옥으로 구별되고, 착하게 산 사람은 곧바로 천당에 들어가고, 악하게 산 사람은 곧바로 영원한 지옥불의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이 발생했으며,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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