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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씨앗다시 살아남(요한복음 12:24-2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1.07.25 15:18
▲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는다는 결과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과정은 여전히 신비이다. ⓒGetty Image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오늘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복음성가 가사에도 자주 사용되는 한 알의 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씨앗에 관한 말씀은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서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마가복음 4장에는 오늘 본문과 유사한 비유의 말씀들이 몇 가지 나타납니다. 땅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 자라는 씨의 비유, 겨자씨 비유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에 나타난 비유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한 소재이면서 항상 목격하게 되는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자라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런 현상을 알기 때문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의 씨앗에서 어떻게 생명이 만들어져가고 큰 나무가 되는지 지금과 같은 과학적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도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씨앗을 소재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말씀은, 그 씨앗에서 생명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고, 그 과정에서 작은 씨앗이 큰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곳이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공동체도 예수님께서 씨앗을 소재로 비유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공관복음서에 비해 조금 더 확장되고 변화됩니다. 땅에 심겨진 씨앗은 예수님과 연결되어 죽음과 부활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런 의미의 변화는 요한복음 공동체 안에서만 일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로 인해 초대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며 정리했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이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을 부활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재해석 과정 속에서 씨앗에 담긴 의미가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렇게 재해석된 의미는 초대교회 안에서 널리 퍼졌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6-38절을 보면, 사도 바울도 육신의 부활에 대해 말하면서 씨가 죽어야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는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이 가진 의미와 거의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선포하셨던 말씀을 추구하는 분들은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씨앗의 비유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연결되었다 하더라도 그 본질적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죽음과 생명은 맞닿아 있는 개념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 나타난 땅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에서 좋지 않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결국 생명을 잃게 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생명을 잃지 않고 결실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좋은 땅에 심겨진 씨앗입니다. 씨앗의 종류마다 결실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땅속에서 얼마의 기간을 보내게 될진 몰라도 우리는 분명 싹이 트고 가지를 내며 열매 맺게 됩니다.

죽음과 생명이 맞닿아 있다는 개념은 예수님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구약성경에도 이런 개념이 나타납니다. 심판과 구원입니다. 심판이 죽음과 연결된다면, 구원은 생명과 연결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심판이 일어나는 순간은 구원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과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씨앗이 자라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도 죽음과 생명이 연결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 이 신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도 있고, 멈추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 어려움과 고난 자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 속에서 자신의 역사와 섭리를 드러내신다는 점입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나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 고사를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속담이나 고사성어는 많은 사람의 경험에 따라 만들어진 말들입니다.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언젠가 좋은 일도 있다는 사실은 모두 경험을 통해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에 따라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죽음과 생명이 연결되어 있듯이 어려운 순간에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것은 경험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다 믿어야 합니다.

땅속에서 한 알의 밀이 죽음의 시간을 겪은 후 많은 열매를 맺는 일도 우리 안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날마다 생명이 성장하고 움트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섭리하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 속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경험에 따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믿기에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모임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섭리하신다면, 지금 이 순간은 교회가 멈춘 순간이 아니라 교회가 새로운 생명을 움트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이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함께 하시며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시고, 그 섭리하심이 있기에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여 큰 나무를 이루시고, 많은 열매를 맺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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