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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은 우등상을 줄 수 없다”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자전적(自傳的) 고백(告白) ⑴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 승인 2021.07.29 23:04
▲ 오강남 교수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신학책이나 종교학 책을 보면 서문에 저자의 자전적 고백을 싣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신학은 자전적이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다. Paul Knitter라는 신학자는 책을 쓸 때마다 자기가 어떻게 그런 신학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자기의 삶을 반추하면서 풀어준다.

나도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보면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정신적 눈뜸의 순간들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 중 열 개를 적어 자전적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풀어 본다. (지금 대선과 올림픽 열기가 대단한데 이런 글을 올려도 되는가 망설이다가 용기를 낸다. 양해 있으시길...)

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가?

호적등본에 의하면 나는 일본 동경(東京都 品川區 北品川 3町目 282番地)에서 8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동경의 공습 때문에 피란을 가야했는데, 우리 식구들은 한국인들이 많이 살던 히로시마(廣島)로 갈까 하다가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때 원폭 세례를 받은 히로시마로 갔으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내가 네 살 때 식구들과 한국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부산에 정착하려고 집까지 샀는데, 부산에도 미국의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인 안동으로 와서 정착했다. 안동읍에서 남쪽으로 13km 떨어진 동네. 이름은 ‘머물’이고 한문으로는 원호동(遠湖洞). 지금은 원호리라 바뀌어 있다. 나는 초등학교를 우리 동네에 있는 일직(一直)국민학교에 다녔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북쪽으로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우리 동네는 백성촌이라고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 중에는 부자들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 가난했다. 우리 집은 그래도 동네에서 유일하게 펌프가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난리 통에 어떻게 가지고 올 수 있었던지 일본에서 가지고 온 망원경, 자전거, 커다란 둥근 밥상, 오동 장롱, 아코디언, 유성기 등이 있어서 꽤 잘 사는 집으로 알려졌던 모양이다. 그 덕택으로 큰 형님은 의성군 단촌에 있던 고운사(孤雲寺) 주지의 미녀 맏딸과 결혼할 수 있었다.

동네가 거의 가난했지만 특히 6.25 이후는 가난이 극심했다. 동네 사람들이 우루루 산골로 들어가 송기(松肌)라고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와 물에 담궜다가 부드러워지면 송기떡이든 송기죽이든 해 먹었다. 그러나 보릿고개를 맞으면 부황(浮黃)인가 하는 것으로 굶어 죽는 이도 있었다. 요즘 많이 부르는 유행가 ‘보릿고개’,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하는 것을 실감하면서 산 셈이다.

거의 모든 집이 아침에는 보리밥을 먹고 점심은 아침에 해 놓은 보리밥을 물에 말아 마늘이나 마늘쫑이나 고추를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서 먹고 저녁에는 보리죽을 먹으며 연명했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놀다가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발로 고무신을 공중으로 올려 보내고 떨어질 때 엎어지면 저녁으로 밥을 먹고 똑바로 자빠지면 죽을 먹는다고 일종의 점을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말할 나위도 없이 고무신이 엎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똑바로 자빠지기 마련이었다. 우리 집은 그래도 보리죽 대신에 수제비 국을 자주 먹기도 했는데, 그 때 먹은 것에 질렸는지 지금도 나는 수제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때 먹은 고추 부각이나 호박잎, 피마자잎은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라 생각된다. 우리 집은 신작로 옆이기 때문에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고무신을 하늘로 올려 보낸 다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 중에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가?  왜 다 같이 사람인데 이렇게 달라야 하나? 우리 동네 옆으로 중들(주들이라 불렀다)이라고 하는 꽤 큰 평야가 있었는데, 우리 집을 거기 논과 밭 몇 마지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땅을 고르게 나누어주면 안 될까? 지금도 그 때 해질녁 남쪽에서 북쪽으로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에 골똘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 때 이런 생각이 씨앗이 되었는가. 캐나다에 와서도 선거 때마다, 한국 사람이 입후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캐나다 무상 의료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신민당(New Democratic Party, NDP) 후보에게 언제나 표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투표권은 없지만 미국 대선에서도 언제나 민주당(Democratic Party)이 이기기를 바라는 입장이었다. 지난 두 번의 미국 대선에도 민주당의 Bernie Sanders가 당선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읽을 것이 못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어머님의 손을 잡고 안동읍에 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걸어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머님이 가시니 동행한다는 의미로 따라 간 셈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교회 학교를 다니던 형님이 방학 때 내려와서 아담, 하와니 엘리야, 엘리사 하면서 성경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나도 중학교 갈 때 그 교회 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당시 두꺼운 『전과지도서』를 몽땅 다 외운 것 같다. “태정태세문단세...”, “빨주노초파남보, 보남파초노주빨”, “수금지화목토천해명”(지금은 명왕성이 퇴출되었다고 하지만 그 때는 함께 외웠다.)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사라가바나마”까지 입에서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다사라가...’는 악보에서 올림표(sharp)나 내림표(flat)가 없을 때는 다장조, 올림표가 하나 있으면 사장조, 두 개면 라장조, 세 개면 가장조, 내림표도 하나면 바단조, 둘이면 나단조, 세 개면 마단조 하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 안동사범 병설 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이것은 일직초등학교의 체면을 위한 것일 뿐, 처음부터 서울 교회학교로 가기로 한 것이어서 미련 없이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교회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일 년 동안은 모르던 성경 이야기, 특히 예수님의 생애를 배우면서 신이 났다. 그러나 조금 지나서 성경의 이야기들이 문자적으로 맞을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성경 첫머리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에서부터 하느님이 세상을 6일 만에 지으시고 7일째는 쉬셨다고 했는데, 하느님도 쉬어야 할 정도로 피곤하실 수가 있는가? 선악과를 두고 아담 하와를 시험해 보셨다고 하는데, 전지전능, 무엇이나 다 아시는데, 구태여 시험해 보실 필요가 뭔가?  선악과를 먹고 숨어있는 아담 하와에게 오시면서 너희가 어디 있느냐 물어보셨다는데, 다 아시는 분이 물어보시다니? 선악과를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큰 벌을? 그러면 먹으려 했다는 것으로 시험 결과를 아셨다면 이제 먹지 못하도록 말리셨어야지. 세상 아버지도 아이가 낭떨어지에 떨어지려 하면 가서 붙잡는데... 이런 식으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었다. 성경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니까 성경 선생님이 “오강남은 믿음이 없으니 비록 성적으로 수석이지만 우등상을 줄 수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의 주장으로 우등상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James Fowler 교수가 말하는 신앙의 6단계 중 사춘기에 이르는 제3단계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호에 계속 …)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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