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m Lovell, 「Burial of Sarah」 ⓒin 『Everyday Life in Bible Times』 (National Geographic Society, 1967), 104-105.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성조로 비정된 아브라함은 물질과 물량 중독증 환자인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보잘 것이 없는 사람이다. 초라한 그가 세 개의 유일신교에서 성조와 예언자로 추앙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아랍의 조상으로 숭배 되고 있다는 사실이 현대인들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대왕, 대부호, 대 발명가, 대 장군, 대 재상, 대 석학, 대 화가의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애굽의 바로나 함무라비 왕처럼 나라를 세웠거나 왕족으로서 나라를 다스린 적도 없는 보통사람으로 현대인들이 추구해 마지않는 부귀영화,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그를 <하나님과 동행한 자>,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부러워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권하시며 약속한 말씀에 나오는 <큰 민족>, <이름의 창대> 등과 롯이 떠난 후에 그가 받은 약속, <동서남북의 보이는 땅을 받음>과 <자손의 번성>, 할례 시 받은 약속, <여러 민족의 아버지 됨>과 <후손들이 왕이 됨> 등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면서 약속하신 내용을 언뜻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 세상이 좋아하는 복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 땅을 많이 소유하고, 권력을 잡고 자손을 많이 낳아서 권력과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어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낸 이유가 아브라함이라는 특정한 인물과 그 후손들에게 부귀영화를 몰아주고 싶어서였을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그 하나님은 세속적인 인간과 다름없는 하나님이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같은 신일 것이다.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를 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백년의 히스토리

창세기 12장에서 25장 11절까지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백년의 스토리가 간략하게 적혀 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한 동안 머물렀던 하란은 기후도 좋고 철 따라 비가 내려서 땅이 참으로 비옥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하란을 떠나라고 하신 것인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하란이 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자손이 번성할 수 있는 곳이며 열 왕이 나올 수 있는 땅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란보다 더 살기 좋은 비옥한 서쪽 땅, 유럽으로 인도하지 않고 바위와 가시덤불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도 비교적 살기 좋은 갈릴리호수 또는 요단강 지역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였다면 현대인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그를 생존 자체를 위해 허덕여야 하는 사막으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사자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라가며 제단을 쌓고 기도하며 순종하였다.

창세기 13장 2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한 부자였지만 땅을 사지 않았다. 그는 나그네로 살기 시작한지 62년 만에 아내 사라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장지를 조금 샀을 뿐이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함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바로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불행과 치욕과 고통을 겪었다.

그는 도시문명에 사로잡혀서 더 이상 자기를 따르지 않는 조카 롯을 꾸짖지 않고 편히 떠나가게 해주었고 그가 전쟁 포로로 잡혀갔을 때는 생명을 걸고 구출해주었다. 또한 조카와 그의 재물을 구하고 다섯 왕이 빼앗긴 재물들과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 왔으나 자신을 위하여 그 탈취물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

그는 또 롯이 소돔의 죄악으로 함께 멸망당하게 될 위기에 빠졌을 때 그를 위해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용서를 빌었다. 또한 하나님의 요청으로 암소와 암염소, 숫양을 잡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쪼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장차에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과 자신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들었다.

그는 86세에 아내의 몸종을 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아내의 투기를 감당하지 못하여 비정하게 그들 모자를 내쫓았다. 그는 99세에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시행하라고 요청한 할례를 행하였다. 그는 이삭이 태어난 후에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긴 우물을 되찾았다. 그는 약속한 아들을 25년 만에 얻었지만 15년 후에 번제로 드리기로 결심하고 모리아산에 갔고 거기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그의 나이 137세에 아내 사라가 죽자 후처 ‘그두라’를 얻어 6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는 하나님의 요청으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산 지 100년 만에 ‘브엘세바’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이삭에게 유산 상속을 하였고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이삭이 사는 곳을 떠나 동방으로 가게 하였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그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

순례자, 혁명가의 원형 아브라함

성서는 짤막한 기록 속에서 악한 체제와 병든 문명에 저항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에의 순종과 순례자적인 유랑의 삶으로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된 첫 사람 아브라함을 보여주고 있으나 현대 교회는 큰 울림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4천 년이나 앞서 있는 시대의 왕과 강자의 문화와 관습, 우상숭배의 상황과 경향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외롭게 사랑의 길, 의로운 삶, 저항의 삶을 살아온 순례자, 혁명가 아브라함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상당한 부와 힘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그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며 탐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양심이 명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대로 자진하여 스스로 행하였다. 그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례의 삶을 산 것이 새로운 문명, 하늘의 문명, 진리의 문명, 생명의 문명의 창시였음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권력과 돈의 피라미드 지배구조를 유지시키는 혈연주의와 종교체제에 저항하는 혁명가로서 우상과 거짓 신으로부터 인간 해방의 길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서는 그를 순례자나 개혁자, 저항가, 혁명가라고 호칭하지 않지만 그는 순례자이자 저항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 ‘할례 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새로운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해방신학자들보다 더 혁명적이었고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치열하였으며 반전론자들보다 더 평화를 사랑하였다. 그는 참으로 탐욕과 죄악으로 죽음의 늪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고자하는 모든 시대의 순례자와 혁명가의 모형으로서 <복의 근원>이며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신념으로 하지 않은 일

아브라함은 부자이며 자기 휘하에 잘 훈련된 무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군벌이었다. 창세기 13장 2절에 보면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한 부자였으며 창세기 14장 14절에 의하면 집에서 양육하고 훈련시킨 318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있는 지방의 세도가였다.

고대사회는 힘센 영웅들의 세상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웅, 족장, 왕을 위해서 종사하였다. 왕은 법이고 신의 아들이었으므로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실로 영토 안에 있는 신민들은 다 그 발아래 엎드렸으며 엎드린 자들은 다 그의 것이었다. 폭군과 야망이 큰 자들은 전쟁을 통하여 영토를 넓혀갔으며 재산과 노예를 늘렸다. 총신들은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잡아다 왕에게 상납하였으며 그에게 성적 노리개를 공급하는 것으로 충성 경쟁을 하였다. 왕들은 노예를 마소처럼 부려 자기 이름을 붙인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전쟁을 위해 무기를 만들고 청년들을 잡아다 군인으로 훈련시켜 전쟁터로 내보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당시 세상의 제왕과 족장들과는 전혀 다른 삶, 순례와 혁명의 삶을 살았다. 당시 족장들이나 제왕들은 더 큰 권력과 영토와 돈을 만들기 위해서 책사, 참모들과 함께 전략을 세우고 음모를 꾸미며 전쟁에 전력투구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첫째, 그는 여느 부호들이나 세도가들처럼 땅을 사지 않았다. 농경사회의 부는 문자 그대로 토지였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에 거주하는 100년 동안 딱 한 번 땅을 구입하였는데 그것도 아내를 묻기 위하여 장지를 산 것 뿐이었다. 그는 성공한 자들이 흔히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짓는 고대광실 대저택도, 성채도 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재산의 보전과 확대 재생산을 위하여, 토목공사를 벌여 도로와 수로를 건설하는 등  자기 이름을 붙인 직속마을과 도시를 건설하지 않았다. 그는 땅을 소유하기를 거부하였으며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최초의 순례자이며 혁명가이다.

둘째, 그는 여느 족장이나 왕들처럼 전쟁으로 영토를 확보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도 세력다툼을 벌이지 않았다. 그는 일단계로 먼저 작은 왕국을 세워 기틀을 다지고 기회를 엿보다가 외교와 동맹, 전쟁으로 천하를 제패하려는 무력정복의 야욕을 갖지 않았다. 그는 아내를 두 번이나 왕에게 빼앗겼을 때도 전쟁을 불사하지 않았으며 우물을 빼앗겼을 때도 다투지 않고 오히려 양을 주고 양도를 받았다. 그는 권력 다툼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순례자였으며 권력의 허구를 아는 혁명가였다.

셋째 그는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겼어도 피로 보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비멜렉에게 자신들이 판 우물을 빼앗겼어도 무력을 동원해서 우물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전쟁과 타협 중에서 언제나 타협을 택하였다. 그런 그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평화주의자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를 빼앗긴 분노와 상처가 컸을 것이고 아내의 수치를 덮어주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택하여 자존심을 세웠어야 하지만 그는 자신과 가속들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 생각하여서 일까 보상을 받고 순순하게 떠나왔다.

하나님의 보복에 모든 것을 맡겨서 일까? 순례자로서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일에 익숙해서 일까? 아무리 싸워도 힘으로는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일찍이 내려서 일까? 하나님의 인도함이 없이 인간적인 계산으로 애굽으로 내려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책임감 때문일까? 그는 무능한 평화주의자 모습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헤브론에 이르러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넷째 그는 부유하고 힘이 있었지만 여성들을 재산이나 노리개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고대의 어느 부호나 왕들처럼 많은 아내와 첩을 거느리지 않았다. 그는 85세에 아내의 권유로 아내의 몸종을 첩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마저도 아내의 질투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내쫓았다. 그는 아내 사후에 ‘그두라’라는 여성을 후처로 맞이하였을 뿐이다.

다섯째 그는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지 않았다. 그는 보통의 군주들처럼 정치적인 목적으로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여 우상숭배를 제도화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게 만드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당시 제왕과 족장들은 신의 이름으로 하늘과 땅의 권력을 독차지하고 신민들의 생사여탈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타락한 종교의 우상숭배 행위에 일체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고대 근동에 가득한 우상숭배와 정치 협잡에 회의하고 저항하며 천지를 창조하신 참된 하나님을 찾아 오랜 시간 동안 방황하였다. 결국 그는 하란에서 우상의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바벨탑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 전쟁과 폭력, 부정과 불의를 기뻐하시지 않는 하나님, 홍수 이전의 타락하고 부패한 병든 세상과 문명을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마침내 그는 우상과 거짓신과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례자가 되어 가나안에 들어가며 자기 삶 전체를 하나님께 의탁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순종의 사람이지만 그의 순종은  철저하게 체제 저항과 혁명을 위한 것이었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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