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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 골짝에서 격은 위수령파동인생의 변곡점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온다 ⑴
이해학 목사(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 | 승인 2021.08.08 17:27

어린 시절 섬진강에서 곧잘 헤엄치며 놀았다. 큰 각시바위 밑은 아주 깊은 소(沼)여서 물가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소 가운데로 감겨 들어갔다. 순간 몸이 붕 뜨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강한 물살에 휩쓸려 빠져나오려고 허둥대곤 하였다. 그러고도 나는 다시 버릇처럼 그곳을 찾았다. 어린 나의 목숨을 삼킬 수 있었던 그 沼는 나의 인생 여정에서 변곡점의 상징과 계시가 되었다.

제적처분 알림 /  한국신학대학장 / 1971년 10월 21일 신학대학 228호/ 

-알림-

다음의 학생을 제적처분 하였음. 
김성일 추요한 황주석 이해학

학장 김정준

이 결정을 하고서 농성하던 교무실 창문이 열리더니 교수들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아무런 체면도 없이 비통한 통곡 속에는 권력에 대항하지 못한 부끄러움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 잊어버릴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교수들이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고 자기 책무를 다하려 노력하고 있는지가 확인되었다. 나는 이런 선생님들의 제자가 된 것에 자부심을 품게 되었고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을 평생 품게 되었다.

71년 10월 21일. 지루한 결정이 내려졌다. 아침부터 여기저기에서 듣는 라디오에서 같은 중계를 하고 있다. 고려대를 점령한 군인들이 총장을 강제하여 항복을 받듯 제적 학생 결정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쓰나미같이 연세대를 향하더니 학생징계를 받아내었다. 다시 아현동 고개를 넘어 마지막 고지 같은 한신대를 향하고 있다. 모두가 가슴을 조이고 있다.

그때 학교 서무과 총무가 나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지금은 학생이 결단하여 학교를 도울 때다. 자퇴서를 써라. 교수들은 학생을 자기들 손으로 쫓아낼 수 없다. 만일에 이렇게 군인들이 학교로 진입해서 서류 다 가져가고 학교 비리를 캔다면 안 걸릴 학교가 어디에 있겠나. 이 난국을 학생이 자퇴로 결단하여 교수도 풀어주고 학교도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나는 자퇴서를 써 주었다. 나중에 이병린 변호사가 부당한 제적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운동을 하였다. 나도 혹시나 해서 갔다가 왜 그걸 써 주었느냐며 야단만 맞고 돌아왔다. 내 자퇴서가 교수들 결단에 촉매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교수들은 제적으로 결정하였다.

그날 라디오 뉴스는 온통 위수령으로 제적처분 되는 과정을 상세 보도하고 있었다. 전국대학에서 학생 데모를 주도하는 177명을 학교에서 내쫓으라는 문교부의 지시는 그렇게 해야만 사회가 안정된다고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 봇물 터지듯 터져오는 항거를 막아야만 하는 상황에서의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던 때이다. 군인들이 오기 전 한신대 교수들은 학생징계를 발표해 버렸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신대는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16일부터 문교부 지령으로 한신대 교수들은 총 비상이 되었다. 처음으로 교수 전원 교무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항의성 투쟁을 일주일간 하였다. 그때 나는 성북경찰서에서 취조형사와 실갱이를 하고 있었으며 그 기록은 교수들에게 고스란히 복사하여 전해지고 있었다.

교수들도 문교부 억지명령에 항거하는 지루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이것은 교육에서 정의도 상식도 아니다”였다. 이것은 엄연한 교권침해로 규정하고 매일 문교부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당시 교수회의록이다.

때: 1971년 10월 16일, 오후 1시/ 곳: 식당 (교수휴게실)

김정준 학장의 사회로 제433회 교수회를 아래와 같이 모이다. 

출석 교수 : 김정준, 안병무, 박봉랑, 안희국, 문동환, 정웅섭, 황성규, 장일조, 김경재
결석 교수 : 오인수(선교사)

A. 결의사항
 (1) 학원 질서 확립에 대한 지시사항 (문교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답하기로 하다.
본 대학 학생들이 10월 13일 기독교인 국회의원 조찬기도회 장소에서 벌인 일에서는 학원 질서를 파괴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 학칙에 의한 제적 사항이 없음.
B. 회록 받고 폐회.

회장 김정준
서기 정웅섭

교수들은 문교부 지령을 10월 13일에 세종호텔에서 있었던 기독교인 국회의원 조찬기도회에서 소란을 피운 학생들에 대한 응징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이미 제적시켜야 할 명단은 만들어져 있었고 거기에 대한 자료들도 확보되어 있었다. 당시 한신대는 교내 민주화 때문에 학장 퇴진을 요구하는 저항으로 학기를 거듭하며 학교가 소란스러웠다. 당시 전국 대학교는 교련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반민주 정부에 대한 항거를 교련을 통해 군사훈련을 제도화하고 전 국민을 군사문화에 감금시키는 정치적 술수에 학생들은 거센 반발을 한 것이다. 문교부 지시가 떨어지자 이미 지방대학들은 학생 제적을 단행하였고 고려대(총장 김상협), 연세대(총장 박대선), 한신대(총장 김정준)만 버티고서 지시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수유리에 있는 한신대는 작아도 북간도 독립운동 하던 기질을 이어받은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또 교단은 전라도의 항거 정신에 기반 되어 있었기에 독재 정부의 지시에 호락호락 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71년 10월 16, 17, 18일 교수회의록은 문교부에 학생 제적 불가를 상신하고 그에 대한 회답은 재지시의 반복이었다. 19일 연속토론 후 결론을 짓고 다음과 밭은 별지를 내었다.

(1) 문교부에서 반려되어온 학원 질서 확립에 대한 재지시에 대한 회답의 건.
장시간에 걸쳐 토의한 후, 해당 학생을 처벌할 수 없다고 결의, 별지(    )와 같이 응신키로 하다.

수신    문교부장관
제목    학원 질서 확립에 대한 제 지시의 회답
(학사 1010_123 과 관련)

본 대학은 학원 질서 확립에 대한 지시에 대해 수차례 걸쳐 지시 촉구를 하게 하여 송구하게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응신합니다.
학원 질서 확립에 대한 특별 지시사항(학사 1010_421)에 관련한 학생으로 당국이 제적 요청한 본 대학 학생 추요한(4), 김성일(3), 이해학(3), 황주석(3)에 대해 당국이 제적 조치할 수 있다고 제시한 각 개인의 신상 자료를 검토한 결과 본 대학 학칙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서 제적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고 보아, 보고합니다.

1970년 및 1971년 1학기 상기 학생의 교내, 교외 활동은 대체로 학생 신분 한계 내의 활동이며,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당국과 학교에 의해 이미 합당한 조치를 받은 자입니다.
상기 학생들의 이번 학기 학생 생활은 제적에 해당하는 학칙 위배 사항이 없다고 보며 앞으로 이 학생들의 생활은 학칙을 보강하여 (대학 학칙 보완지시 대학 1010_2756에 의거) 본 대학 교수단이 책임 선도하겠습니다.

한국신학대학장 김정준

즉 교수 양심상 학생을 죄없이 제적시킬 수는 없으며, 학교 당국은 앞으로 학칙에 근거하여 문제 학생에 대한 선도와 책임을 지겠다고 문교부에 보고를 하는 것으로 제적 문제를 결말을 지으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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