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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은 일상을 떠나게 하지 않는다“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마가복음 1:29-3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8.09 23:48
▲ John Bridges, 「Healing Peter's mother-in-law」 (1839)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사랑으로 본때를 보여주는 한 주를 사셨나요? 시도를 해보신 성도님이 계신가요? 존 스토트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우리의 이해 차원을 넘어선 분이시다.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성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그렇기에 먼저 판단하기 보다는 말씀을 실천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타인과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랑의 동기로 기도하려는 시도, 내 안에 있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 기도하려는 시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계발서나 성공 관련 책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왔는데, 왜 성공하는 사람은 적은가? 하는 것에 대해 어떤 분이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저는 이 진단에 대해 공감합니다.

지난주일 설교 시간 사도행전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던 수건, 두르고 있던 앞치마만 환자에게 가져다 대어도 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수건과 앞치마를 통해서도 은혜가 흘러갈 수 있었던 비결은 2년간 사도 바울이 말씀대로 살고자 한 실천, 기도의 눈물과 헌신의 땀이 수건과 앞치마에 배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우리의 헤아림을 넘어서서 계십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실천해 보십시오. 미리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의 삶에 놀라운 은혜와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말씀대로 살아야 함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나는 어떤 존재인지, 나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시려고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고, 문 앞에 모인 온 동네 사람들의 온갖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도 말씀을 선포하시던 예수님이 배고파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제자들과 헤어지셔서 산에 올라가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기적을 행하시고, 기도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이런 패턴은 반복해서 성경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삶이 전부 기록되지 않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패턴이 예수님의 일상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치유하고, 말씀을 먹이고, 기도하는 삶 이런 ‘사랑하는 삶’이,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의 삶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8-20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요한복음 21:17-19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너는 다 이해하지 못해도, 나를 먼저 따라오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어쩌면 너는 어차피 다 이해할 수 없으니 먼저 나를 따르라는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듯이 마찬가지로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8:28-2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곧 나”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의 통로가 되어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따를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성도님들과 함께 읽은 야고보서 본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22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보서 1:21-22)

야고보 사도는 이 말씀에 이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27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1:27) 이처럼 예수님을 우상화 시키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따르기 위합니다.

지난주일 사도행전 본문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사도 바울이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변하고, 지역과 문화가 변하여져 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도 보시면, 예수님의 사랑이 점점 더 확장되어 감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로부터 동네 사람으로 그리고 가까운 어려 고을로까지 예수님의 사역이 확장되어 갑니다. “39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치유사역, 귀신축출사역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이는 병, 귀신으로 부터의 치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존재의 회복’에 중점이 있습니다. 병으로 인해 귀신들림으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시선들과 논리들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치유를 입은 자들은 다시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30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정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3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자신의 열병이 떠나갔을 때, 베드로의 장모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합니다.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자신의 열병이 낫고, 자기가 살고 싶은 목적대로 살았다. 자신의 열병이 낫고, 이전에 살던 삶으로 되돌아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이전과는 다른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장면입니다. 마치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서 자신의 존재가 회복되어 이전의 삶을 벗어던지고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준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주 짧게 기록하고 있지만, 이름도 거론되지 않고 그저 시몬의 장모라고 여겨지는 여성의 모습이지만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통해 사랑의 확장이 일어나도록 살아갑니다. 더 세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처럼 타인의 존재와 생명을 회복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 

제가 요즘 진절머리나게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거미줄입니다. 집과 온 동네에 왜이리 거미줄이 많은지 가는 데마다 몸에 거미줄이 걸리더라구요. 그 느낌이 너무 싫은 거에요. 그래서 집에서 거미가 보이기만 하면 무언가로 내려쳐서 죽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친구 가족이 놀러왔는데요. 거실에 시커먼 거미가 나타난 거에요. 그래서 늘 그렇듯이 거미를 죽일만한 물건을 들고서 내리치려고 하니까 친구가 말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구요. “거미 죽이지마, 거미는 좋은 절지동물이야.” 사실 거미가 있어서 집에 모기도 잘 들어오지 않고, 여러 벌레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거미 스스로가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알리는 것도 아니고, 딱히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잊어버리게 됩니다. 게다가 당장에는 거미줄도 귀찮고, 보이는 모습 자체가 좋아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죽이게 되더라구요. 그렇더라도 거미가 저희 집과 가족에게 주는 유익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기적을 베풀어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더라도, 존재를 회복시키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당장 눈에 보이기에는 해롭게 보이고, 여러 모양으로 못마땅하게 여겨질지라도 그 사람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선함과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형상이 있음을 기억해주고 바라봐 줄 수 있다면, 분명히 성도님들 앞에 있는 사람의 존재는 회복되고, 생명이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존재의 회복과 생명 살림을 위해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자신이 앞서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물으셨습니다.

시편 5:3 “주님, 새벽에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새벽에 내가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기도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내가 지금 가는 길이, 판단이, 행함이 틀리지는 않았는지를 묻고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재조정하기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움직이실 수 있었습니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온갖 병을 치유해 주셨는데, 하루가 지나고서는 예수님의 태도가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시는 삶을 따르셨기에 변경 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사셨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이 닿아 자신을 바라본 이들이 자신처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저와 성도님들은 오늘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목적은 무엇이고, 무엇을 통해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려고 하십니까? 치유하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산다면 성도님들의 삶에 축복은 따라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와 성도님들도 “저도 이 일을 하러 왔습니다.”라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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